'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와 마사교. '안드로이드...'는 블레이드 런너의 원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블레이드 런너라는 영화가 워낙 걸출했던 탓인지, 영화와는 다른 원작의 부분에 대해서는 흔히들 쉽게 스치고 지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책을 읽는 이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 '공감박스'와 '마사교'이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는 전혀 등장이 되지 않을 뿐더러, 책에서도 그리 편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안드로이드..'라는 작품이 좁은 의미에서 사이버펑크 계열로 분류될 수 있다면, 바로 이 공감박스와 마사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공감박스에 접촉을 하면, 각 개인들이 가지는 감정이 '어떤 세계'에서 뒤섞이고 융합되며, 그 세계는 너무나 생생하여 현실과 구분할 수 없으며, 거기서 돌을 맞으면 실제로 상처가 생긴다. 이는 흔히 말하는 사이버스페이스와 아주 유사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도 원작도 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할만큼 평이하지 않은 상징인 만큼, '안드로이드..'에 나타나는 마사교의 의미하는 바를 하나로 규정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거칠게나마 뜻을 짚어볼까 한다. '안드로이드...'에서는, 바운티 헌터(블레이드 런너)인 데카드가 안드로이드들을 사냥다니는 것이 주된 뼈대를 이루고, 그 안드로이드들과 여러 인공동물들이 작품의 배경을 이룬다면, 마사교는 바로 주제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핵전쟁이 일어난 이 후 인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동물들이 멸종한 상태이다. 이 시기에 인간들은 동물들에 광적인 집착을 하고 있고, '천연 동물'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러한 배경아래서의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의 하나는 죄책감과 절망인 것으로 보인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즉 생명체를 모두 멸종하게 만들고, 곳곳을 사막으로 초토화시켜 버린 상황에서 인간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뭔가 잘못되었고,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서 ,이 것이 삶의 우울로 드러나고 있다. 이 때 나타난 것이 '마사'이다. 태양계의 모든 인류가 '공감박스'에 접촉하기만 하면 하나의 의식으로 융합되어가고 마사와 공감하게 된다. 마사라는 노인은 낮에도 달이 떠있는 흐릿한 하늘 아래 사막의 언덕을 끊임없이 걸어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돌맹이가 날아든다. 그래서 피투성이가 된다. 이 상징은 명백히 까뮈가 채용해서 의미를 부여한 시지프의 신화를 연상케 한다. 시지프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올리고, 정상에 도달하면 바위는 다시 굴러내려간다. 물론 까뮈의 길을 따라가면, '부조리한 세상'을 초극하는 '행복한 시지프'를 만나게 되지만, 필립 K. 딕의 마사는 보다 절망적인 색채의 상징이다. 그는 사막의 언덕을 굴릴 바위도 없이 힘겹게 걸어만 간다. 그리고 가장 주요한 차이는 어디선가 날아오는 돌멩이들을 맞아서 피투성이가 된다. 스스로를 자학하는 심정의 인류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 것은 핵전쟁을 벌여놓고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후 견딜수 없는 자책에 시달리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 아주 빈틈없이 구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작품의 말미에 가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얘기가 나온다. '마사'가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방송국의 호들갑스럽고 요란스런 저널리즘의 화살아래 건져지는실체란, '마사는 삼류 주정뱅이 배우이고, 흐린 하늘과 거기에 걸린 달은 모두 세트였다. 그리고, 마사가 맞는 돌맹이는 플라스틱인데다가, 피도 가짜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마사는 가짜인것인가? 소설이 끝나기 직전에 작가는 나름으로 아주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마사는 가짜가 밝혀지는 방송 후에 안드로이드들과 폐허가 된 건물에 있던 정신미숙자 이지도어에게 다시 나타나서, '그들의 말이 모두 옳다. 그리고 나는 사기꾼이다. 그런데 왜 무엇하나 변하는 것이 없을까. 그들은 아마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모두들 공감박스에서 느끼는 그 마사의 영상과 장면들은 '기계적'으로는 밝혀진 바와 같이 조작이고, 연극이었지만, 그러한 사기나 조작 자체가, 인류전체의 집단무의식이 형상화되려고 애를 쓰는 바로 그 장면에 우연히(어쩌면 필연적으로) 일치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No way out'같은 영화에서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가상의 소련스파이를 정보부에서 조작했는데, 알고보니 정말로 그 스파이가 정부부내에 있었더라 하는 식의 얘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스파이 사건의 경우는 흥미유발만을 노리고 있겠지만, 마사의 경우는 현실의 부조리성을 한번 더 기술적으로 부각시키는 효과를 함께 갖고 있다. ..그런데, 데카드가 안드로이드들을 모두 해치우고 사막으로 나갔을때, 거기서 갑자기 어디선가 돌이 날아와 이마에서 피를 흘린다. 즉, 마사와 같은 경험을 한다. 어찌보면, 스스로 마사가 된 듯한 장면이다. 이 부분은 무얼 뜻할까? 이 것은 비록 생명체는 아니지만, '과연 생명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안드로이드들을 '살해'한 다음이란 것을 주의하면 이해가 갈 듯하다. 즉, 데카드는 '생명체'를 살해한 것에 대한 죄의식을 느낀 것이다. 마치 인류전체가 '동물과 환경'에 느끼는 것처럼. 말하자면, 마사가 인류의 집단무의식을 대변했다면, '생명체 같은' 안드로이드들을 죽인 데카드는 또하나의 작은 '마사'가 되어 스스로를 학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작가는 안드로이드들의 '살해'후에 데카드를 그리고 인류를 한번 더 절망시키고자 한듯하다. 데카드의 사막에서의 '마사' 경험 후 아주 많은 두꺼비들을 발견하게 해서 '과연 어디선가 살아있었던 생명체'를 발견하게 했지만, 집에 그걸 가지고 가자마자 그 역시 인조동물이었음을 발견하게 만든다. 필립 K. 딕은 sf의 주인공이자 보다 절망적인 시지프를 형상화 시켰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영화에서 빠진 부분은 흔히 말해지듯, '핵전쟁 이후의 인류의 죄책감과 좌절'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 것까지 들어갔으면 영화는 아예 개봉되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누가 극장에 '실존주의 공상과학 영화'를 보러가겠는가. 禪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