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모브르] 이기훈 < 이 글은 아시모프의 명복을 빌며 지어본 단편입니다.> 1992년 7월 ..아직 나의 몸은 내 의식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잠시 차가운 물에 뛰어든 느낌이었는데. 주위가 익숙해지고 파아란 물속에서 다시 물을 만진다고 생각한 순간. 은빛과 금빛으로 동시에 주위가 흔들리더니, 끝없는 녹색과 그 위로 끝없는 푸른 빛. 아! 나의 눈이 착시를 또 일으키다니. 비타민 병이 어디갔지. 여기 책상 근처인가.. 7월의 찬란한 태양마저도 바람에 흔들리는 드넓은 초원위로 끝없이 푸르른 하늘이 맞닿아 있다. 몽골의 평원은 그 위에 뿌리내린 종족의 성쇠와 관계없이 광휘에 가득차 있어왔고, 평원 한 모퉁이에 갓 태어난 아이의 혼란된 울음이 소박한 유목민 일가를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이 눔은 웬 손을 이리 바둥거리누.." 주름이 얼굴의 반을 채운 할머니의 눈길이 한편 시름에 잠겨간다. "자슥이 나올라카믄 훌훌 털어버리고 나올기지." ..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어디서 애 우는 소리. 아니 내 속에서? 나의 마비된 팔. 다리.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침착해야 한다. 블랙홀이 아닌 이상. 이런 터무니 없는 상황은 벗어날 수 있다. 침착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무어란 말인가? 내가 동면이라도 신청했었던가? 아니면, 내가 충격에서 갓 벗어난 로봇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닌데. 올해가 92년 아직 그런건 책에나 적어 놨던 건데. 그렇지! 이건 꿈이다. 어서 깨어야 겠다. 불편한 꿈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어서.. "아이구! 맙시사 애가 새파래 진다. 우짜면 좋노.""그래 말이시." "비켜들 나거래이." 허리가 반쯤 굳은 촌로가 소리친다. "야야 어멈아 애 왼쪽 발가락을 꼭 잡아라. 퍼뜩.애를 깨워야 한데이. 어서 깨워야 한데이." 주위에는 말똥태우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갑작스런 분만을 준비하느라 다들 서두른 통에 물도 못 끓이고, 타는 장작옆에 말똥만 연기를 뿜고 있다. .. 아아. 왼쪽 발가락의 통증. 그렇지 책상 모서리에 발가락이 끼였구나. 육체의 통증은 언제나 불편한 꿈을 깨우는 법이지. 어서 일어나자. 가만 눈 부터 떠야지. 아아 눈이 부시다. 마져 글을 써야지. 스탠드가 너무 밝다. 스위치가. 앗. 여전히 손이 움직이지를 않네. 가만. 여전히 밑도 끝도 없이 파아란 저 천장은. 꿈. 꿈이었던가? 앗 뜨거. 뜨거운 물방울이 천장에서. 짜다. 아. 생각이 힘이 든다. 의식이 희미해진다. 푸근한 이 느낌. 아. 춥다. 배가 고프다. 누가 나좀. 엉엉. 으앙. 앙앙.. "됐다. 에미야 울지 말거라. 애가 인자 깼다카이." "하이고. 다행이다 아임니꺼." "그라모." 몽골의 평원에 바람이 불고 있다. 막 꿈에 나타난 한사람의 중량만큼. 한 쪽 꿈속에서 사라진 그 사람과 이 쪽 꿈속에서 과거의 초원을 누볐던 한 영웅의 이름을 딴 그 아이의 이름은. "잔말 말거래이. 애 이름은" <아시모브르>. 촌로가 한마디 내뱉었다. 그리고는,몇걸음 비틀거리다가 평원에 이는 바람의 무게를 잠시 추스리는가 하더니 한 모금 빨아서 약간의 연기를 허공중에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