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거일씨의 '파란 달 아래'를 읽고- 이 원 창 복 거일씨의 소설은 '역사속의 나그네'에 이어 이 '파란 달 아 래'가 두번째로 읽는 것이다. 좀 지루한 면이 없지 않던 '역사속의 나그네'에 비해 '파란 달 아래'는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 다. 탄탄한 구성과 매끄러운 전개가 돋보이긴 했으나, 그에 못지 않게 아쉬운 면도 많은 작품이었다. 더우기 그러한 단점들 중에는 '역사속의 나그네'에서도 똑같이 드러났던 것이 있어서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았다. 제목과 책의 앞표지 그림에서 눈치빠른 분들은 아실 수있듯이, 이 작품의 배경은 달이다. 제목에 나타난 '파란 달'이란 달에서 바 라본 지구를 의미한다. 달에 세워진 남반부와 북반부의 두 기지가 하나로 통일되면서 새로운 우주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며 북반부의 '김 일성 혁명기지'의 요리사 리 명순은 보수 적이고 수동적인, 평범한 일개 요리사에 지나지 않았으나, 기지내 의 동료대원인 리 명규를 만남으로 인해, 새로운 눈을 뜨게되고, 남반부와 북반부의 두 기지를 통합하는데 한몫을 하게 된다. 주인공과 주요등장인물들이 북한측 사람들이므로 이 글에선 북한 말이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점은 '역사속의 나그네'에서 이조시대 로 간 주인공이 이조시대의 고어(古語)를 사용하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속의 나그네'를 보면 '파란 달 아래'에 나오는 달기지 에 대한 언급이 잠깐씩 나오는데,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는게 이 작품이다. '역사속의 나그네'에서 주인공 이 인오가 출발한 미래와 '파란 달 아래'의 배경은 그다지 멀지 않은 가까운 연대이다. 시대 적 배경이 거의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역사속의 나그네'를 보면 영어가 자주 쓰이는 미래상이 나온다. 하지만 '역사속의 나그네' 에서는 설정은 그렇게 하면서도 '황주'(핵 잠수함 이름으로 북한의 지명을 사용한 것이다)니, '시낭'(타임머신을 일컫는 말)이니 하는 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외국어 사용의 세태를 조심스럽게, 혹 은 의식적으로 거부하려한 데에 비해서 이 '파란 달 아래'에선 그 러한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생큐'니 '오케이'니 하는 말은 기본이고, '생큐 포 더 라이드, 캡틴.(Thank you for the ride, captain)', '유아 얼웨즈 윌컴(You are always welcome)', '이펙트(effect)' 등등 외국어가 흔하게 사용되며, 그것이 사용하 는 사람이나 듣는이에게 별 무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외국어와 '애기장대', '가슴띠', '곧은박이' 등의 고운 우리말이 함께 사용되는 점은 묘한 기분을 준다.(순우리말인 북한말들이 사 용되는 것을 보는것도 이 작품의 큰 즐거움 중 하나라 생각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 리 명순의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져 있다. 일인 칭 시점은 변화나 개혁에 대해 아무런 의식도 가지고있지 않았으 며, 오히려 보수적이기까지 한 주인공의 생각이 변화하는 것을 역 동적으로 나타내기에 적합한 선택이었지만, 불필요한듯이 보이는 개인적 사변(思辨)이 지나치게 많아서 독자들로부터 생각할 여지를 빼앗아 버린 듯하다. 예를 들어 18장의 장례식 장면을 보면, 다음 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남반부의 아나운서 김 수형의 설명 후,) 나는 찬성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은 상황을 적절하 게 설명하고 있었다. 사령관님께서 ....(중략)....그러나 아 나운서가 그런 얘기를 미리 하는 것도 우스울 터였다, (다시 김 수형의 이야기) ...진지하면서도 냉정한 그녀의 목소리 밑엔 열정의 울림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의 예문에서 '김은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나 '진 지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와 같은 표현이 꼭 필요할까? 좋은 예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곳곳에서 이렇 게 어떤 사건이나 말, 상황등에 대해 이것은 어떻다, 저것은 어떻 다는 식으로 구구절절이 해석을 하는 식의 내용이 많이 나온다. 상 황이나 배경이 현재와는 조금 동떨어진 것이었으므로 그러한 해설 은 필연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꼭 그런 식으로 직접적으로 이야기 해야만 했을까? 작은 사건이나 대화, 분위기 등으로 대신할 수는 없었을까?(이 부분에 대해서는 글 뒤에 나오는 통신상에서의 독자 와의 대화 부분에 작가의 변명이 좀 나와있긴 하다.) 이러한 점은 '역사속의 나그네'에서도 느꼈던 점이었다. 단지 말 로 전달하는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듯 보여주는, 또한 독자에게 생 각의 여지를 주는 방법을 사용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주인공의 사고의 변화가 그 리 확연하지 않다는 점이다. 리 명순은 처음부터 자신의 의지가 아 니라 리 명규에게 끌리다시피 해서 '셀레나이트 무브먼트'나 기지 통합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리 명순은 리 명규와 사랑하는 사이이므로, 리 명순은 그의 의견에 동조하려는 경향을 띤다. 이러 한(연인의 말에 따르려는) 면은 작품을 읽는 중에 종종 볼 수 있 다. 즉, 자신의 생각이 바뀌어서라기 보다는 연인의 뜻이 그러하 고, 그 연인의 판단이 잘못일리가 없다는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 기 때문에 그쪽에 동참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한 다. 마지막 '사수대'의 반란에서, 사수대 요원들이 폭력을 사용한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령관과 리 명규 등을 설득시켜서 결국 기지통합에 반대하는 쪽으로 이끌었다 해도, 리 명순은 별 불만이 없었으리라.(따라서 그녀의 의식은 완전히 바뀐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매끄럽고 치밀한 전개에 옥의 티처럼, 눈에 낀 가시 처럼 씁쓸하게 남았던 한가지는 부실한 복선이었다. 차 가져갈 시 간을 알기위해 요리장에 회의실을 도청할 수 있는 TV 카메라를 설 치한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한복차림에 실크햇을 쓴 것 만큼이나 부 자연스러웠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이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하 게 될 것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사수대의 반란때 리 명순이 TV 카메라로 상황을 보다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게 했을 때엔 좀 씁쓰레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부족한면이 좀 보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은 작품 이었다. 재미라는 면에서도 그렇고 전달하려는 메세지도 그렇고 마 음에 드는 구석이 많은 작품이었다. 때문에 몇가지 사소한 점들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적인 SF란 어떤것인가 혼 란스러운 가운데 복 거일씨의 이 작품은 좋은 예를 보여주는 것이 라 하겠다. 소재나 어휘, 비유 등에서 이 작품은 많은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번역서만 많이 읽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번 역체, 이국적 비유를 사용하게 된 아마추어 작가들은 이 글을 꼭 읽어보고, 이 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을 반성해볼 일이다. 1993.12.22. Q.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