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니 윌리스의 'Fire Watch'를 읽고. - 이기훈- Fire Watch 는 코니 윌리스가 1983년에 휴고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화재 감시'라고 이름 붙일만한 제목인데, 과학소설 분야에서는 특이하면서도 친숙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단편입니다. 자. 최근에 한참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코니윌리스라는 작가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마침 주인공이 여기 와있으니 한번 얘기나 들어봅시다. " 여러분, 저는 Bartholomew라고 해요. (흠 이름을 보면 제가 남자인줄 아시겠죠.) 휴. 전 Fire Watch라는 소설에 출연했다가 거의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제가 오늘날 진정한 역사학도가 된 것도 다 그 빌어먹을 St. Paul's 성당 덕분이죠. 그때가 9월 중순쯤이던가요. 도서관에서 한참 St. Paul.(미국의 주 이름) 에 관해서 마지막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참이었죠. 곧 졸업을 앞두던 때라 '전공 실습'을 갈 때가 되었으니까요. '전공실습'이 뭐냐구요? 아하. 그거야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의 역사적인 현장으로 직접 날라가서 생생한 실습을 하는거죠. 그런데, 세상에.. 그 망할놈의 컴퓨터가's를 덧붙이는 바람에 미국의 한 주가 아니라 영국의 St. Paul's 성당으로 가라는 게 아닙니까? 아. 고집불통인 Dunworthy 교수는 막무가내였어요. 그 사람 St. Paul's성당에 관해 책까지 낸 사람이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생각을 좀 해보세요. 4년 준비한 것도 부족한 판에 이틀안에 어떻게 1940년대의 영국 준비를 어떻게 합니까? 게다가...으.. 그때 거기는 집중적인 대공습으로 폭격을 받던 런던 한가운데라고요. 엄청난 화재로 다 타버리게 될 그 곳에 내가 가있다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휴. 아뭏든 갔습니다. 하기야 네 룸메이트 Kivirin은 14세기 흑사병이 나돌던 영국이 '전공실습' 대상이니까요. 그럭 저럭 준비도 했죠. 명석한 두뇌라고요? 하하. 아닙니다. '역사보충판 옥스포드 영어사전' 마이크로 필름책을 도서관에서 슬쩍했거든요. 그리고, 약을 먹고 장기간 기억으로 그당시 영국 지식을 집어넣었죠. 그게 제 때 떠올라 줄런지는 모르지만.. " 하하. 이렇게 해서 주인공 Bartholomew는 1940년대의 영국으로 시간여행을 갑니다. 물론, 학교에서 준비해준 당시 영국돈 얼마간이랑, 가상의 삼춘이 성당측에 써준 소개장을 가지고요. 하지만 장기기억이란게 많은 지식을 강제로 기억시킬순 있어도 그게 제때 떠올라주는 놈이 아니니 얼마나 고생이 많겠습니까? 처음부터 당혹스럽습니다. 성당문을 처음 열어준 Langby가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 ayarpee요?" 황당하지요. 같은 영국사람이라도 시대가 다른 탓이니 어찌 알겠습니까? 알고보니 A.R.P.(Air Raid Precautions) 즉 공습대비단원을 얘기였습니다. 아뭏든 이렇게 시작해서 그 성당에 들어간 이후로, 화재감시원일을 하는데, 갖은 고생을다합니다. 잠은 납골당에서 간이침대로 자고, 하루에도 몇번씩 계속되는 공습때마다 지붕에 떨어진 소이탄이나 불발탄 같은 것을 모래를 끼얹거나 물을 뿌려서 꺼야 합니다. 목재 건물이라서 조금만 늦어도 성당이 몽땅 타버릴테니까요. 그 얘기를 한번 주인공에게 다시 들어보죠. "참. 죽을 맛이었죠. 역사학도가 웬 불끄깁니까? 그것도 공습만 되면 피하기는 커녕 지붕위에서 죽어라 불발탄 끄랴, 미리 모래뿌려두랴 중노동이란.. 하지만, 가장 힘든 건 그 수상한 Langby란 놈이었습니다. 그 자가 미심쩍은 어떤 노인하고 첩보영화에 나오는 바로 그런 촌스런 방법으로 접선을 하는걸 목격했거든요. 그 놈은 공산주의자였던 겁니다. 아. 그시대 영국사람이 공산주의자가 얼마나 교활하고 악독한지 어찌 알겠습니까? 장기기억에 저장해둔 화재날짜만 떠올라 줘도 그 놈이 성당을 불태우려는 음모를 막을수 있으련만... 그래서 저는 그 놈을 밤낮으로 감시했던 겁니다. 그 놈은 그 놈대로 틈만 나면 나를 화재감시원에서 쫓아내려 하고.." 네. 참 성당을 구하려는 똑똑하지만 맹랑한 성격의 Bartholomew의 노력은 눈물겹더군요.밤마다 성당이 불타는 악몽을 꾸기도 하고. 그러나, 역사와 시간여행이라는 것의 결말이 대개 그렇듯이 성당을 공습과 화재에서 구하는 게 쉬울런지 싶었는데, 주인공도 그러더군요. 시간여행으로 '전공실습'을 갖다온 선배들은 왠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고. 아뭏든, Langby와 Bartholomew 간의 성당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 와중에 사랑스런 룸메이트 Kivirin과 꼭 닮은 Enola라는 연약한 처녀가 찾아와서 성당에서 매점을 엽니다. 둘은 친하게 지내다가, 어느날에는 다툼끝에 그녀는 런던 지하철역으로 가버립니다. 전쟁때라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노숙을 하곤 했죠. 그런데, 성당이 며칠에 불탈지 기억해내려 애쓰다가 Bartholomew는 장기기억에서 갑자기 '런던지하철 대폭격'이라는 사건 기사를 생각해 냅니다. Enola가 위험한 거지요. Bartholomew는 미친듯이 지하철역으로 달려갑니다. " 그래요. 정말 미칠것 같았죠. 나때문에 그녀가 죽게 된거죠. 지하철역에는 정말 사람이 많았어요. 그들 모두 죽게 될 운명인데 내 말을 믿기나 하겠습니까? 안타까웠죠. 아무튼, 그녀를 찾지도 못하고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성당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을 끄러 미친듯이 성당지붕으로 올라갔죠. Langby 그 놈이 기어이... 그런데, Langby가 한다는 말이, '이 나쁜 자식, Bartholomew. 난 애초부터 네가 나찌 첩자인줄 알았어. 기어이 성당에 불을 질렀군.' 아. 오해였던 겁니다. 그 때 Langby는 지붕 틈새로 빠진 소이탄을 끄기 위해 뛰어들어 몸으로 불을 끄고, 전 그를 구했죠. 그러나, 그는 결국 죽었고, 다음날 삼촌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전 아무일도 못하고 성당을 구해내지도, Langby,Enola와 지하철역의 시민들도 구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다시 미래,아니 현재로 가야했던거죠. 돌아왔더니 화상투성이인 저한테 시험을 치라더군요. 문제가 뭐였나고요? 1. 지붕에 떨어진 소이탄,폭발물의 수는? 2. 근처에 설치됫던 지뢰수는? 3. 화재감시원수는? 4. 잡역부의 수는? ...등등. 제가 어찌 참을 수 있겠습니까? Langby는? Enola는? 그리고 성당을 화재에서 구하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다 어쩌고 역사학과 시험이란데서 고작 폭발물 수나 묻고 있다니, 빌어먹을숫자와 통계들이라니.. 그래서 물었죠? 그런 건 어딨냐고요. 그랬더니 그 잘난 Dunworthy(이름 부터 가치없다 아닙니까?)는 맨 아래칸에 그 항목도 있다더군요. '<기타사항>' 그래서 한방 갈기고는 나왔습니다. '역사란게 이런거라면 때려치우겠소.' 당당하게 한마디 하고말입니다." 하하. Bartholomew는 학교에서 날라올 최후 통첩을 기대하고 기숙사방에 앉아 있었죠. 통지서가 왔습니다. 그 내용은.. "귀하는 전공실습에서 최고점수를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관심이 있으실 것 같아 다음 기록을 알려드립니다. " .. 여러분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시간여행과 역사학도의 전공실습. 그리고, 헌신적으로 성당을 지키던 1940년대의 런던 사람들. 그 와중에 코니윌리스는 꽤 성숙한 '역사관'하나를 보기좋게 엮어넣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