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최현준(sigma) @제목: 별에게 향한 삶 @날짜: 11/10 08:15 제목 : 별에게 향한 삶 (The Call of the Stars) 지은이 : 아서 C.클라크 (Arthur Charles Clarke) 1917년 영국 서머셋주 마인헤드 출생.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SF작가이자 미래학자,과학평론가. 휴고상,네뷸러상,마르코니상 등등 수많은 SF문학상 및 과학상 수상. 대표작 [라마와의 랑데 뷰],[유년기의 종말]등. 저 아래 지구에서는 지금 20세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시야에서 태양과 별들을 가로막고 우주공간에 떠 있는 거대한 지구, 어둠 운 그늘에 싸인 반구를 나는 지금 굽어보고 있다. 잠자고 있는 수 백 개의 반짝이는 도시들 불빛이 보인다. 나 역시 저 도시의 군중들 틈에 섞여서 활기차게 노래하며 거리를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런던에서, 케이프타운에서, 로마에서, 파리에서, 베를린에 서, 마드리드에서,...그래, 그렇지만 지금은 그 도시들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온다. 어둠에 싸인 행성 위에서 마치 반딧불처럼 깜 박거리고 있다. 이제 유럽은 막 자정에 접어든 참이다. 지중해 동쪽 구석에선 작지만 아주 강렬한 빛 하나가 반짝이고 있다. 아 마도 유람선의 서치라이트가 하늘을 향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리 라. 일부러 내가 있는 이 우주정거장을 향해 빛줄기를 비추는 건 지도 모른다. 지난 몇 분 동안 그 빛은 아주 규칙적으로 깜박거 렸기 때문이다. 통신본부를 호출하여 그 배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나도 곧 무선통신으로 답장을 보낼 수도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최근의 백 년간은 지나간 인류 역사에서 가 장 놀라운 시대였다. 비행기를 발명하여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것을 시작으로, 원자 핵분열의 발견이 시대의 신기원을 이룩했 다. 그리고 그 다음 대미를 장식한 것이 바로 우주여행인 것이 다. (지난 몇 분 동안 아프리카의나이로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매우 밝은 불빛들이 나타났다간 사라지고 했다. 화학연료를 사용하는 로켓들은 이미 구시대의 낡은 골동품 이나 다름없지만, 아마 오늘 밤 저 아래 지구에선 그런 로켓들을 쏘아올리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한 세기의 끝이다. 그리고 서기 1천년대라는 천년왕국의 끝이 다. 눈 앞에 닥친 새로운 천년왕국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서기 2천년대에 인류는 물론 태양계 행성들에 널리 퍼져 살게 될 것이다. 저기 일 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지금 최초의 화성 탐사선단이 우주공간에 떠있는 채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저 우주선들이 궤도상에서 조립되어 차츰 모양을 갖추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우주정거장도 이미 한 세대 전에 마찬가지 방법으로 건설된 것이다. 저 화성 탐사선단의 열 척의 우주선들은 지금 승무원들까지 모 두 탑승을 마치고 마지막 최종점검과 출발신호만을 기다리고 있 다. 21세기의 첫번째 날이 밝아 정오가 지나면 마침내 저들은 지 구의 인력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먼 훗날 인류의 제 2의 고향이 될지도 모를 낯선세계로 향할 것이다. 미지에 도전하는 저 용감한 탐사선단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 은 4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아직은 달나라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염원으로 남아있던 시절,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되던 때 를. 그리고 난 기억한다. 아버지가 나를 지구에 붙잡아두기 위해 서 그토록 애쓰셨던 것을. 정말이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여러가지 방법을 쓰셨지만 제일 처음은 조롱이었다. " 그래, 네 말마따나 언젠가는 사람들이 달나라에 가게 되겠 지." 아버지는 비웃으셨다. " 그렇지만 그래서 어쩐다는 거냐 ? 이 지구상에서도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누가 우주로 나가려고 하겠니 ? 사람이 살도록 정해진 행성은 태양계에 오직 하나, 이 지구뿐이야. 달은 그저 식어빠진 흙덩어리일 뿐이고 다른 행성들은 더 말 할 것도 없지. 우리가 살 곳은 이 지구 뿐이라구." 그 당시 나는 열 여덟 남짓한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얘기에 논 리적인 반론을 펼칠 수 있었다. 난 이렇게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 한다. " 우리가 살 곳이 지구 뿐이라고 어떻게 단정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 ? 인간도 원래는 물에서 10억년이 넘도록 살다가 육지로 올라와 진화한 생물 아닌가요 ? 이제 인간은 두 번째의 위대한 도약을 하려는 거라구요. 물론 그 도약이 어디로 향할지는 저도 모르지만, 물고기가 처음으로 육지에 기어 올라왔을 때도 마찬가 지였어요. 지금처럼 눈부신 문명을 이루리라고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낯선 공기를 킁킁 들이마셨던 거에요." 아들이 이처럼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으므로, 당신께서는 좀 더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셨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우주 여행이 얼 마나 위험한 것이며 로켓을 탄다는 것이 얼마나 생명을 단축하는 일인지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엔 운석이나 우주선 (cosmic rays)의 위험이 사실보다 과장되어 알려졌기 때문에 사 람들은 그런 것을 두려워했다. 옛날 지도를 보면 '여기엔 불을 뿜는 용이 나타남'이라고 쓰인 곳이 있듯이, 미지의 우주공간에 서 운석 따위는 신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불안한 존재였던 것이 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우 주를 향한 내 꿈을 더 부풀어오르게 했을 뿐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동안에는 아버지도 잠잠하신 편이었다. 나중 에 내가 무슨 직업을 택하든 어차피 공부는 필요한 것이었으니 까. 단지 내가 틈만 나면 사 모았던, 우주비행에 관한 각종 책이 나 잡지들에 대해서는 이따금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불평하시곤 했다. 나의 대학 성적은 썩 훌륭한 편이었고, 아버지도 흡족해 하셨다. 아마 아버지는 그게 내 스스로의 길을 찾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못 하셨을 것이다. 대학의 마지막 학년 동안에는 나의 진로에 대해 아버지와 대화 나누는 것을 되도록 기피했다. 심지어는 우주로 나가려는 나의 오랜 꿈을 포기한 듯한 인상까지 주기도 했다. (나는 이 점에 대 해 지금까지도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 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우주비행학교에 입학원서를 냈고, 졸업 과 동시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우주비행 기술연구소]라고 큼지막하게 돋을새김이 된 파란색 봉투가 우편함에 배달된 날, 아버지는 대노하셨다. 배은망덕한 아들녀석이라시며 나를 책망하셨다. 그렇지만 우주비행학교는 우 주여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으므로 나는 결 코 양보할 수 없었다. 우주비행학교에선 방학기간에도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어머 니에겐 몹시 섭섭한 일이었지만 나는 일년에 한 번 정도밖엔 집 에 가지 않았고, 그나마도 며칠 있다간 곧 학교로 돌아가기 일쑤 였다. 아무튼 우주비행사로서 착실하게 훈련을 쌓아나가는 아들 을 보면 아버지도 마음이 누그러지고 결국 이해하실 것으로 기대 했다. 그러나 당신께선 마지막까지도 고집을 굽히지 않으셨다. 아버지와 나는 결국 우주공항에서도 어색하고 딱딱한 분위기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말았다. 잔뜩 찌푸린 회색빛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그 빗방울들이 우주공항에 정박한 우주선 선체 를 때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우주선은 어서 빨리 날아올라 이 어두운 비구름을 뚫고 태양이 비치는 높은 하늘로 올라가기를 갈 망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외동아들을 싣고 하늘로 솟 아오르는 우주선을, 그토록 싫어하시던 우주선을 바라 볼 수 밖 에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이 헤아려지는 것 같다. 나 역시 그 동 안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오늘에 이르러 한꺼번에 마 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는 그 때 우주공항에서 작별하면서 그것이 아들과 의 마지막임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늙은 아버지의 완고한 자존 심은 끝끝내 아들을 붙잡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때에도 이미 나는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얼마 나 악화된 상태였는지는 아버지 외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버 지는 그 때 우주공항에서 그 말씀을 하심으로서 아들을 잡을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난 지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신 아버지를 존경한다. 과연 그 때 아버지의 건강상태를 알았더라면 나는 떠나지 않았 을까 ? 이런 생각은 부질없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 해 이리저리 생각해 보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그려보는 것 이상으로 소용없는 일이다. 난 그저 괴로운 결단을 내리지 않 도록 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할 뿐이다. 아버지는 마지막에 가서 나를 보내주셨다. 당신은 아들의 야망에 대항하는 것을 포기하시 고는, 결국 내가 최초의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에 돌아가시고 말 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구에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아들을 사랑하면서 도 끝까지 그런 마음을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셨던 아 버지에게도. 그 분은 지금 내 한 손으로도 가릴 수 있는 저 작은 행성에 누워계시다. 저 지구에 살고 있는 수십억의사람들은 모 두 나처럼 몸의 구석구석을 흐르는 뜨거운 피를 갖고 있다. 그런 데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고향별을 떠난 사람은 바로 나인 것이 다.... 아시아 쪽으로부터 새 날이 밝아오고 있다. 태양빛의 가느다란 테가 지구의 동쪽을 감싸며 다가들고 있다. 태양이 점점 떠오르 면서 빛의 테는 초생달 모양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저 태평양 에도 햇살이 내리쬐게 될 것이다. 아직 유럽은 캄캄한 한밤중이 다. 밤새 마시며 놀다가 새벽을 맞을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들 곤 히 자고 있을 것이다. 지금 화성 탐사선단의 사령선에서 연락선이 출발했다. 그 연락 선은 탐사사령선을 방문할 마지막 손님을 태우기 위해 이곳 우주 정거장으로 날아오고 있다.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탐사단장 스티븐으로부터 우주정거장 사령관에게 : 앞으로 90 분 안에 출발함 : 그 전에 우주정거장 사령관의 방문을 맞을 준 비가 되어 있음] 아버지, 이제 당신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완전 히 한 세대가 흘렀으니까요. 그렇지만 지난날 아버지와 제가 나 누었던 어색한 작별은 되풀이하지 않으렵니다. 제가 탐사사령선 에 발을 디디는 순간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것 같군요. 그리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당신의 손자에게 웃으면서 잘 가라는 인사 를 해 줄 참입니다. < 끝 > == 박상준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