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 Cassandra C.J. Cherryh 윤태원 옮김 대부분의 예비 작가들은 단편에서부터 시작하여 뒤에 더 골치아프고 복잡한 소설 형태로 넘어간다. 그러나, 캐롤린 체리(Carolyn Cherryh)의 경우는 이와 좀 다르 다. 그녀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소설을 써왔지만, 몇권 의 책을 출간하여 주목받는 작가가 되기 전에는 단편소 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것이 이 소설-예지에 대 한 문제를 심도있게 파헤친-이 그녀의 두번째 단편인 이유이다. 불. 이제 여기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앨리스는 아파트의 문을 더듬어 진짜인지 확인했다. 불길에 휩 싸인 손잡이를 쥐자 차가운 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비치는 아래층으로 이어진 층계를 바라보며, 그녀는 이 층계가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 였다. 미친 앨리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불은 끊임없이 타올랐 다. 그녀는 불길을 헤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계단을 하나씩 밟 으며 변하지 않는 땅을 향해 내려갔다. 바닥이 없는 듯 수직으로 떨어지는 밀폐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 다. 그녀는 열기없는 붉은 화염을 외면한 채 1층으로 내려갔다. 유령 하나가 그녀에게 인사하였다. 널름거리는 화염속에 선 마 르고 투명해 보이는 늙은 윌리스. 그녀는 눈을 깜박거리곤 답례인 사를 하였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갈 때 윌리스가 고개를 젓는 모 습이 언뜻 눈에 비쳤다. 불꽃과 거리를 덮치는 거대한 화염, 그리 고 떨어지는 벽돌들을 본 척도 않고 차들이 지나갔다. 아파트가 무너져 내렸다. 녹색의 허깨비같은 나무들 사이에 우 뚝 선 지옥으로 검은 벽돌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언제나처럼 윌리스가 달아나다 불꽃에 휩싸여 쓰러졌다. 그는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다 축 늘어져 시꺼먼 시체가 되었다. 앨리스는 이제 울지 도, 움찔거리며 놀라지도 않았다. 그녀는 주위에 벌어지는 무서운 광경을 무시하고, 실체가 없는 벽돌들이 떨어지는 거리를 급히 달 아나는 유령들을 헤치며 걸어갔다. 킹슬리의 카페는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안전하게 서 있었다. 그 녀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벨이 딸랑거렸다. 단골 손님들이 그녀를 쳐다보곤 서로 속삭였다. 미친 앨리스다. 그 속삭임들이 신경에 거슬렸다. 그녀는 그들의 눈을 피해 구석 진 곳에 자리잡았다. 신문 자판기에 '전쟁 발발'이라는 표제가 큼 지막한 특대 활자로 붙어 있었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샘 킹 슬리의 앙상한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커피와 햄 샌드위치요." 그녀가 주문하는 것은 언제나 그 순서까지 똑같았다. 미친 앨리 스. 그녀의 고통이 그녀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한달에 한번씩 수표가 배달되었다. 매주 그녀는 지금은 사라 져버린 의사와 상담하러 병원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들은 건물과 함께 모두 불타버렸다. 연기가 방부처리된 푸른색 병실에 넘쳐 흐 르고 병자들은 불이 붙은 몸을 이끌고 달아났다. 찻잔들이 덜컥거리는 소리를 냈다. 샘이 탁자에 커피를 내려놓 고, 잠시 돌아갔다가 다시 샌드위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반쯤 부서진 도기와 금이 가고 불에 그슬린 투명 한 손잡이가 달린 컵에 든 음식물을 먹었다. 그녀는 이제 일상화 되어 버린 두려움에 개의치 않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수백번이나 보아왔기 때문에 그녀는 끔찍한 광경에 만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이제 그림자를 보아도 울지 않았다. 그녀는 유령들에게 말 을 걸고 때론 손을 대기도 하며, 공복을 달래기 위해 음식을 먹었 다. 그녀는 유일하게 진짜처럼 보이는 커다른 검은색 스웨터와 파 란 셔츠 그리고 회색의 헐렁한 바지만 입고 다녔다. 밤이 되면 그 것들을 빨고 말려서 매일 매일 다시 입었다. 옷장 속에 든 옷 중 에서 그 세가지만 진짜 옷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의사에겐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병원 안팎에서의 경험 덕 택에 그녀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말해도 좋은 것이 무엇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의사가 작성하게 될 진단 서와 소견서를 조심스럽게 계산하면서 유령의 얼굴을 향해 미소지 었다. 그녀는 늦은 오후가 되어 그을린 폐허 속에 앉아 있었고, 병실에는 검게 탄 시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움찔 거리지도 않은채 기분좋은 미소를 의사에게 지어보였다. 그들은 약을 지어 주었다. 그 약은 꿈을 꾸지 않게 해 주었고, 사이렌의 비명과 그녀의 아파트 옆을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를 멈 추게 하였다. 약 덕택에 그녀는 폐허 위에 놓인 유령 침대에 누워 넘실거리는 화염과 비명 소리에 개의치 않고 잠들 수 있었다. 그 녀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보낸 수년의 세월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비결이다. 그녀는 단지 악몽과 불안감 만을 호소했고, 그럼으로써 붉은 알약들을 얻을 수 있었다. "전쟁 발발" 하고 신문 표제는 외치고 있었다. 손이 떨리자 접시와 부딪힌 커피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 다. 그녀는 뒤틀린 금속 뭉치들이 연기를 내뿜는 거리를 내다 보 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마지막 빵조각을 삼키고 커피로 씻어 내렸 다. 언제나처럼 기다리자 샘이 투덜거리며 그녀의 잔을 다시 채워 주었다. 그녀는 가능한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다시 한 잔을 더 주 문했다. 그녀는 커피의 맛을 음미하며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노 력했다. 벨이 약하게 딸랑이는 소리를 냈다. 사내 하나가 문을 닫고 카 운터 앞에 앉았다. 그의 모습은 완전하고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놀라서 두근거 리는 가슴을 안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커피를 주문하곤 자동판 매기에서 신문을 샀다. 다시 자리에 앉은 그는 커피가 완전히 식 을 때까지 신문을 읽었다. 신문을 읽는 동안은 그의 등밖에 볼 수 없었다. 그는 갈색의 낡은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으며 갈색 머리 카락이 칼라에까지 약간 늘어져 있었다. 결국 그는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돈을 카운터에 내려놓은 다음, 표제가 밑을 향하 도록 신문을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유령들 사이의 실체가 있는 젊은이. 그는 유령들을 모두 무시하 고 문으로 향했다. 앨리스는 자신의 자리에서 뛰쳐 나왔다. "이것봐!" 샘이 불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뛰쳐 나가며 지갑을 꺼내 5달러 지폐를 카운 터로 집어 던졌다. 그녀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가 가버렸을 지 도 몰라. 카페에서 달려나와 모퉁이를 돌아서자 유령들 사이로 사 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유령들을 밀어붙이고 불 꽃 사이를 달려갔다. 파편이 쏟아져 내리자 비명을 질렀으나, 고 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유령들이 놀라서 돌아다 보았다. 그도 비 슷한 행동을 보였다. 그녀를 보고 놀라는 그의 표정을 보자 몸이 굳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하고 그가 물었다. 그녀는 그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초조한 듯 다시 걷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 뒤를 따랐다.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적 셨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 았다.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린 그는 파편과 화염 사이를 더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벽 하나가 무너져내리자 그녀는 자신도 모 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가 획 돌아섰다. 그의 뒤로 먼지와 검댕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매우 화가 난 듯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엄마 들은 아이를 재촉하여 그 자리를 피했다. 젊은애들이 모여들어 킥 킥거리며 구경했다. "잠깐만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가 욕이라도 할 듯 입을 열자 그녀는 몸 을 잔뜩 움츠렸다. 눈물이 불길 속에서 차갑게 느껴졌다. 그의 얼 굴이 당황한 동정심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주머니를 더듬어 돈을 꺼내더니 그녀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젓고 눈 물을 그치려고 노력하며 위를 바라보았다. 또다른 빌딩이 화염속 으로 쓰러져가자 그녀는 다시 몸을 움츠렸다. "왜 그러시죠?" 하고 그가 물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제발.."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는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하는 유령들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를 뒤따라 걸으며 폐허의 모습, 타버린 빌딩의 잔해 사이를 방황하는 희미한 그림자, 차량으로 붐비던 거리에 흩어진 뒤틀린 시체의 모습을 보 고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름이 뭐죠?" 그가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였다. 함께 걸으면서 때때로 그는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가 얼 굴을 찡그리며 바라볼 때는 이마에 주름이 잡히곤 했다. 그의 얼 굴은 젊은이치곤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보였고, 입가엔 작은 흉터가 나 있었다. 그는 그녀보다 나이들어 보였다. 그의 눈이 그 녀를 이리저리 �도센咀릿�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참기로 했 다. 실체를 지닌 사람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그녀에겐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그녀는 혐오스런 마음을 꾹 참고 손을 뻗어 그의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그의 낡은 가죽 자켓을 꼭 붙들었다. 그는 팔을 빼지 않았다. 잠시후 그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자, 그들은 마치 연인처럼 보이게 되었다. "전쟁 발발" 가판대의 신문 표제가 외쳐댔다. 그는 텐 하드웨어사가 있는 거리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리의 모습을 보곤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의사를 알아차린 그 는 불타는 거리를 뒤로 한 채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가지 말아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그녀는 몸을 움츠리고 반대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그녀의 두려움을 농으로 얼버무리려 했다. 그는 마치 아이 를 어르는 것처럼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동정심의 발로이다. 전에 도 그녀를 이런 식으로 다루려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보다 더한 대우도 받아 보았었다. 그의 이름은 짐이었다. 그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어제 이 도시에 왔다. 그는 직장을 찾고 있었다. 그는 이 도시에 아는 사 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그의 어색한 중얼거림에서 그의 심중을 알아차렸다. 그가 말을 마친 뒤 그녀는 조용히 그를 - 그 의 얼굴이 당황하여 굳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난 미치지 않았어요."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서드버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그만은 알지 못하리라. 그의 얼굴은 진실해 보였고 진짜였으며, 그가 생각에 잠길 때면 입가의 작은 흉터때문에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다른 때라면 그를 두려워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유령들 가운데서 그를 잃어버릴까봐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전쟁 때문이죠." 하고 그가 말했다. 그녀는 불길을 외면하고 그를 바라보려 애쓰면서 고개를 끄덕였 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팔을 부드럽게 건드렸다. "전쟁 때문이에요." 하고 그는 반복했다. "미쳤죠. 모두가 돌아버렸다구요." 그런 다음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푸른 잎이 검게 탄 뼈대 위에서 흔들리는 공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들은 호숫가를 따라 걸었고, 그녀는 오랜만에 처음으로 그녀 옆에 진짜 정상적인 존재가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옥수수를 사서 호숫가의 잔디에 앉아 유령 백조들에게 던져주었다. 지나가는 유령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전 쟁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늙은이들 뿐이 었다- 그 장소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회색의 마른 사람들이 보이나요?" 그녀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그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피곤 함을 느낀 그녀는 질문을 그만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저녁을 드시겠습니까?" 하고 그가 물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기다렸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 부끄러운 듯 미 소를 지어보였다. "네." 하고 말하면서, 그녀는 그가 무엇을 제안하든 그가 떠나지 않기 만을 바라며 응낙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가 자신이 미쳤음을 알게될 날 그가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어떻 게 해야할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의 부모조차 참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매일 병원을 방문했고, 나중에는 휴일에만, 그리고 결국은 전혀 찾아오지 않게 되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부모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의 옆집에 사는 소년이 물에 빠져 죽은 일이 있었다. 그녀 는 그가 빠져 죽으리라 예언했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그 아이를 물에 밀어넣었다 며 수근댔다. 미친 앨리스. 의사는 환상이라고 말했다. 위험하지는 않지요. 그들은 그녀를 퇴원시켰다. 주립 특수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때때로 병원에 들르기도 하고. 진정제. 그녀는 붉은 알약을 집에 두고 왔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녀의 손에 땀이 맺혔다. 알약을 먹으면 잠을 잘 수 있다. 그리고 꿈을 꾸지도 않는다.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닫고 그녀에겐 알약이 필요하 지 않다고 다짐했다 - 적어도 혼자있지 않는 동안에는. 그녀는 자 신의 팔을 그의 팔에 끼운 다음, 그와 함께 걸었다. 공원의 계단 을 올라 거리로 향했다. 그리곤 멈추었다. 불이 꺼졌다. 유령 빌딩들이 뒤틀리고 유리창이 빠진 껍데기가 되어 서 있었 다. 유령들이 희미하게 변한 채 파편 더미 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그가 끌어당겼지만 그녀는 비틀거리기만 했다. 그가 이상한 눈초 리로 쳐다보다 그녀를 다독거렸다. "떨고 있군요." 하고 그가 말했다. "추운가요?" 그녀는 웃어보이려 노력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불이 꺼졌다. 그녀는 이것을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악몽은 끝난 것 이다. 그녀는 그의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 의 미소가 환희의 웃음으로 변하려 했다. "배고파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그래븐 식당에서 오랫동안 저녁 식사를 즐겼다. 그는 자 신의 낡은 자켓을 입고 있었으며, 그녀는 스웨터를 아무렇게나 걸 치고 있었다. 훨씬 더 좋은 옷을 입고 있는 유령 손님들이 흘끔거 리며 쳐다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실체가 없는 탁자 위에 금이 간 크리스탈과 부서진 자기 그릇이 놓여 있었고, 부서진 샹델리아가 창백하게 반짝이는, 무너 진 지붕 사이로 별들이 반짝였다. 폐허, 차갑지만 평화로운 폐허. 앨리스는 조용히 자신의 주위를 둘러 보았다. 불만 없다면 폐허 속에서도 살 수는 있다. 그리고 짐이 있었다. 이제 동정심없이 그녀를 향해 웃어주는 사 람. 그의 능력 밖의 돈을, 안으로 들어와 볼 날이 있으리라 상상 도 못했던 그래븐 식당에서 거침없이 쓰면서 그녀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했다. 다른 이들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신뢰 하기로 결심한 사람에게서 똑같이 케케묵은 말을 듣게 되자 기분 이 나빠졌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자신의 우울함 때문에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친 앨리스. 조심하지 않는다면 오늘 밤에라도 그는 알아차리 고 그녀를 떠나버릴 것이다. 그녀는 즐거운 듯 웃으려 노력하였 다. 갑자기 식당을 타고 흐르던 음악이 멈추고 손님들의 잡담 소리 가 뚝 그쳤다. 스피커의 공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피소로... 대피소로... 대피소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의자들이 뒤집혔다. 앨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짐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손 을 잡아끌었다. 그는 두려움에 찬 얼굴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더니, 그녀를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그녀를 엄습하자 폐허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유령들은 화재가 가장 극심했던 곳을 향하여 몰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안돼요!" 하고 그녀는 그의 팔을 끌며 외쳤다. "안돼요!" 그녀는 계속 고집부리며, 파멸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에 휩쓸 리지 않으려 버텼다. 그는 갑작스런 그녀의 고집에 굴복하여 그녀 의 손을 잡고 사이렌이 밤하늘을 미친듯이 울려퍼지는 속을 그녀 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군중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 다. 그리고 마침내 아직까지 음식물이 남아있는 고정된 테이블들과 부서진 문, 그리고 뒤집힌 의자들이 남아있는 킹슬리의 카페에 도 착했다. 그들은 뒤쪽의 부엌으로 들어간 다음, 화염을 피할 수 있 는 어둡고 싸늘한 지하실로 내려갔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땅이 크게 흔들렸다. 사이렌 소리가 멎고 다시는 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속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떨었다. 위에서는 수시간 동안이나 엄청난 불이 휩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연기가 스며들어와 눈과 목을 자극했다. 멀리서 벽돌이 깨지는 소리가 들 리고 땅을 흔드는 소음이 가까워져 오기도 했으나, 그들의 피난처 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아침이 되자 그들은 아직도 불냄새가 나는 음울한 대지로 기어 나왔다. 폐허는 고요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껍질만 남은 유 령 빌딩은 이제 진짜가 되었다. 유령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일부 는 진짜고 일부는 가짜인 이상한 불이 차가운 검은색 벽돌 위로 피어올랐으나, 대부분 그 세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희미한 목소리로 계속 욕을 하던 짐은 결국 눈물을 흘리기 시작 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녀의 눈물은 이미 오래전에 말라버렸다. 그가 식량과 이 도시를 떠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 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괜찮아요."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을 보고는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 다. 다시 눈을 떠도 갑작스럽고 투명한 피투성이 얼굴은 여전했 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고, 그는 유령 얼굴을 걱정스럽 게 찡그리며 그녀를 붙잡았다. "왜 그래요?" 하고 그가 물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그녀는 대답할 수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익사했던 소년을, 그리고 다른 유령들을 기억해냈다. 갑자기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이제는 진짜가 된 파편들의 미로 사이로 도망쳤 다. "앨리스!" 하고 외치며 그가 뒤따라왔다. "안돼!" 돌아선 그녀는 불안정한 벽, 폭포처럼 쏟아지는 벽돌들을 보고 비명질렀다. 그녀는 돌아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멈추어 섰다. 실체가 된 벽돌들을 본 그녀는 경고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벽돌들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렸다. 먼지가 피어올라 일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손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서있다 눈물진 얼굴을 훔치고 돌아서 죽음의 거리의 중앙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머리위로 짙은 비구름이 모여 들었다. 그녀는 이제 평화스럽게 방황하며, 보도에 쏟아지는, 그러나 아 직은 느껴지지 않는 비를 보았다. 얼마 안있어 실제로 비가 쏟아졌고, 폐허는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죽어버린 호수와 타버린 나무들을 둘러보고, 그래븐 식당 을 방문하여 크리스탈 목걸이와 입을 것을 찾아냈다. 하루가 지난 뒤 한 약탈자가 식량 저장소에서 그녀를 쫓아냈을 때,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유령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 리고 그가 어떤 장소에 올라가려 들지 않자 그녀는 비웃으며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이 실현되자 그녀는 자신의 식량 저장소를 되찾았고, 더 이상의 위협과 악몽이 없는 황폐한 폐허속에서 크리 스탈 목걸이를 한 채 자리 잡았다. 이제 내일도 오늘과 똑같을 것 이다. 불만 없다면 폐허속에서도 살 수는 있다. 그리고 유령들이 보이지 않는 과거에만 존재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