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겐 지성이란 없다. 이기훈 사흘째, 주인의 사랑채에는 낯선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모두들 한결같이, 허름한 신식양복에 덥수룩한 수염을 길렀거나, 아니 면 두루마기를 걸친 시골선비 풍모를 지닌 사람까지 다양했다. 단 하나 그들의 눈빛만은 어딘지 달떠있었다. 살며시 주인과 손님들이 모인 방 아래편에 가서 앉아서 방안에서 나오 는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 그러니까, 김동지, 그 총독 관저를.." 순간 가슴이 멎는 듯 했다. 몇 주째 야밤을 틈타 뭔가를 궁리하던 주인 의 계획이란, 총독 관저의 습격이었던 것이다. 내가 주인을 처음 만난 건, 종로길 야시장이 한참이던 때였다. 보신각 뒷 길을 떠돌다가, 으슥한 골목이었는데, 다딤질 소리가 골목으 로 배어나오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었다. 장안은 온통 광 견병이 퍼집네, 개들이 미쳤느네, 소란이어서 길에 개만 보이면 몽둥이 찜질이 예사였다. 그 마당에, 눈빛, 바로 그 눈빛을 찾아서 거리로 내 려왔던 것이다. 골목길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본순사일까, 아니면, 물장수일까, 다급했다. 미친개로 보여서 몰리면 끝장이었다. 나는 서둘러 옆에 쓰레기통에 얼굴을 쳐박고, 음식 찌꺼기를 들쳐내기 시작했다. 적어도 광견은 미쳐날뛰기는 해도 쓰레기통을 차분히 뒤지지 는 않는다. 그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주인이었다. 어깨에 관통 상을 입고 있었고,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었다. 연이어 골목 저편에서 호각소리가 났다. 뛰었다. 이유도 모르고 그냥 뛰었다. 호각소리 탓이 었을까, 더더욱이 왜 주인의 뒤를 따라 뛰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비 슷한 처지라고 느꼈을까. 어쩌면 미친개로 몰려 도망쳐야 했던 엊그제 의 기억탓인지도 몰랐다. 아뭏든, 꼬리를 짧게 말아올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서 뛰었다. 그 때였다. 크게 기와를 얹은 길모퉁이 집의 대문 안쪽 으로 바로 그 눈빛이 보였던 것이다. 바로 그 눈빛. 아뭏든 그 날 이후로, 난 주인의 충실한 애견 노릇을 하기로 했다. 주 인은 북한산 기슭의 안정사라는 절로 숨어들었다. 안정사는 쇠락한 절 치고는 그래도 여유가 있어서, 신도들이 쌀마지기나 가끔씩은 공양을 바치는 괜찮은 절이었다. 주인은 거기 스님 하나와 잘 아는 듯했고, 나 도 연신 꼬리를 흔들어대며, 따라다녔다. 아침부터 절 아래 온 시내가 시끄러웠다. 평소에 쥐죽은듯이, 지게나 지고 다니던 사람들이 모두들 깃발을 들고 여기저기서 고함을 지르고 다녔다. 절에 불공을 드리러 온 아낙네가 스님께 한 말을 들어보니, 무 슨 공원에 조선사람들이 모여서 선언서란 걸 읽고 몰려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온시내가 아수라장이라고 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지금이면 사람들이 광견병같은 건 신경도 안 쓸것이고, 길가에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다니는 개 따위는 신경도 안쓸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서 절을 내려가 그 때 그 길모퉁이의 큰 기와집 으로 갔다. 마침 그 집 대문은 여느때와 달리 활짝 열려있었고, 일본순사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몰래 숨어들어야 했다. 살금살금 걸 음을 옮겼다. 그 때 안채에서 큰 소리가 났다. 몇 명의 순사가 한사람 을 '개 끌듯이' 끌어나오고 있었다. 이 집 주인이었던 모양이다. 2주전 약수터에 내가 찾는 그 개를 데리고 왔던 그 사람이었다. 그 때였다. 마당 한 구석에 바로 그 눈빛이 보였다. 바로 그 개였다. 뭔가를 속으 로 숨기고 있는게 틀림없는저 눈빛. 저자도...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사하나가 그 집주인을 끌고 나오다,빌어먹을, 정면으로 나와 마주쳤다. 어찌할 것인가.. 궁여지책이었다. 나는 얼른 몸을 납작 수그리고, 귀를 뒤로 제친채,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댔다. 미친개도 아닌 보통의 개라는 표시를 열심히 내야했다. "이런 개새끼 하고는, 어디서 길을 막고, 하여튼 조선것들은 다 똑같다 니까." 깨깽. 왼쪽 옆구리가 강타당했다. 나막신이었다. 아뭏든 발로 채여서 나뒹굴어질때도 기술것 '개다운' 신음을 내는 걸 있지 않았다. 깨깽깽깽깽.. 그 황구가 내가 다가왔다. 역시 주인이 잡혀가도 세상 모르는 똥개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생각이 틀렸던 걸까. 집안 아낙네들은 울고 불고 있었고, 밖에는 연신 '.... 만세' 소리와 콩볶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있어서, 이제 두마리 개따위에는 아무도 신 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 황구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자네도 평범한 개는 아니지? 그렇지?" '끼잉..끼잉.' 이런.. 이럴수가..헛수고였다. 역시 나 혼자밖에 없었던 것이다. 갑자 기 하늘이 몹시도 흐려보였다. 그래. 착각이었어. 난 다시금 꼬리를 흔들어대며 문가로 나갔다. "이봐, 잠깐.." 꼬리쪽에서 들린 소리였다. 돌아다 보았다. 그랬다. 바로 그 황구가 의젓한 모습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좀전에는 잠깐 놀라서 그랬다네. 난 나 혼자인줄 알았는데." 그런식으로 우리는 장안을 휩쓸던 광견병과 그 날의 반도인의 '폭동'의 와중에, 우리처럼 의식에 눈을 뜬 개가 13 마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동안 한달여 남짓 희생된, 수백마리의 개는 정말 모두 광견병에 걸 렸던 것일까? 아뭏든, 납작 업드려서 꼬리를 흔들줄 아는 개는 살아남 았다. 그 중에 우리 13 마리도 있었다. 다시금 방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박동지 폭탄의 성능이 아무래도 의심스럽소. 작년의 강동지의 의 의거도 그래서 불발로 끝나지 않았오. 그러니.." 뚫린 창호지 사이로 방안을 들여다 보니, 주인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 는게 보였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무래도 주인이 뭔가 일을 저지를 모양이었다. 그 때 절 아래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마구 짖었다. 그러는새 방안의 주인과 다른 손님들은 몸을 숨겼고, 나도 역시 산으로 몸을 숨 겼다. 일본군인들이 온 절을 샅샅이 훑고지나갔고, 다시금 밤이 왔다. 그리고, 다시 몇 밤이 지나가고 달이 둥글게 하늘에 뜰무렵, 우리 개들 도 약수터 부근의 공터에 은밀히 모였다. 모인 개들은 9 마리였다. 1 마리는 광견으로 몰려서 맞아죽었고, 3 마리는 뜨거운 솥에 들어갔다고 했다. 모두들 침울한 가운데, 결국 결론을 냈다. 태백산 줄기를 타고 개마고원으로 숨어들기로 했다. 그래서 때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서로 의논을 했었다. 지나가는 인간이 들었다면 개들이 휘파람 을 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짜피 인간들과는 공존할 수없소. 여기서는 우리는 한낱 애완동물일 뿐이요. 당분간 늑대같은 생활을 할 지언정 우리는 우리만의 땅을 찾아 야 하오." 옆에 있던 털이 부슬부슬한 개가 낮은 바람소리를 내며 의사를 표현했 다. "하지만, 사냥하던 습관도 없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간다는 말이오? 게다가 우리는 이제 날고기를 먹고는 살 수 없소. 인간들 곁에서 지내 면서 점차 높아진 우리의 지능을 이해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내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렇게 흩어져서 지내다보면 우리는 점차 퇴보할 것이오. 가물 거리는이 의식이 언제 흩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우 리를 인정하기란.. 아뭏든, 우리는 모두 함께 지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미지의 낙원인 개마고원을 향해 이틀 후에 떠나기로 했 다. 그리고, 그 날이 주인의 거사날이기도 했다. 어짜피 그 날은 다시 장안이 떠들석 할 것이고, 골목에 몇 마리 개가 어슬렁 거린다고 해서 아무도 특별히 신경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서둘러 밤이슬을 맞으며 실눈을 하고, 절로 돌아왔다. 안광이라도 달빛 에 비치면 영락없는 늑대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절에서 치는 범종소리가, 산자락에 반사되어 아래 시내까지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틀 후, 범종이 울리면 우리는 떠날 것이다. 주인은 밤새 편지를 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내내 권총을 손 질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자그마한 상자 둘은 폭탄인 듯했다. 나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스스로를 위험에 내던지는 것일까? 왜 인간은 납작 업드려서 꼬리를 흔들줄 모르는 것일까? 그게 주인이나 그 가족들을 위해서도 안전한 일일텐데. 나는 주인이 남산골 아래서 조촐 한 식당이라도 운영하면서 살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그러면 나도 배 불리 먹고, 주인같은 사람이면 여름에 날 잡아먹지도 않을 것이다. 씹을수록 맛이 배어나오는 소뼈나, 구수한 생선찌꺼기.. 절로 입안에 침이 감돌았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모르게, 의식 이 희미해지고 본능이 나를 지배했었던가보다. 어쩌면 이 것도 광견병 의 일종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들이 모여서 산으로 숨어들다니.. 이 런 건 전혀 개답지 않은 짓이다. 그러고 보면 저 주인도 어쩌면 흰옷 입고 장터나 오락가락 하면서 다복하게 살지 못하는 걸 보면 무슨 병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전에 그 기와집에서 순사가 한 말이 생각 났다. '조선 것들이란..'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아침부터 나는 공양을 짓던 절 부엌을 꼬리를 흔 들며 넘나들며 누릉지로 잔뜩 배를 채워두었다. 주인은 초조한 눈빛으 로 오전 내내 절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또 쓸고 있었다. 어딘지 절 전체가, 아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장안이 온통 가벼운 긴장 에 쌓여 있어 보였다. 주인으로서도 중요한 하루일 것이다. 나는 오랫 만에 개답게 주인의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서로의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인은 날 쓰다듬더니, 나와 악수를 했다. 악 수.. 물론, 주인은 내 앞발을 손으로 그냥 잡은 것이겠지만, 내게는 아 뭏튼 악수였다. 개에게는 아무래도 앞발을 드는 것이 불안정한 것인지, 앞발의 떨림이 느껴졌다. 아, 아니었다. 떨리는 것은 주인의 손이었다. "얘야, 내일 부턴 어떻게 살려니? 너 같이 험상궂은 개를 누가 키우려 들지도 않을텐데. 하기야 절에서 내쫓기야 할려구..." 오후가 되자, 절에는 새로지은 불당에서 무슨 법회라도 열리는지, 사람 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 주인도 나도 절을 빠져나 갔다. 나는 서둘러 약수터 근처의 공터로 갔다. 미리가서 기다릴 작정이었다. 저녁이 되자 하나둘씩 개들이 모여들었고, 달이 점차 밝아질 무렵 모두 들 모였다. 주인도 지금쯤.. 허리쪽에 얼룩 무늬가 있는 개가 그랬다. "지금 장안에는 온통 난리야, 총독이 살해당했다더군, 아뭏든, 군대가 출동하고 아수라장일세. 그 틈에 쉽사리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 우리는 일단 북한산으로 숨어들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온통 군인들이 산을 봉쇄하고 있었다. 아마도 주인을 검거하려는 모양 이었다. 실수였다. 소란이 일어나면 집에서 빠져나오기 쉬울거라는 생 각은 했지만, 시와곽이 봉쇄될 줄은 몰랐다. 떼를 진 개가 눈앞에 나타 나면 누구라도 미친개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이를 어쩔 것인가. 우리는 궁리끝에 경계가 풀릴때까지 풀숲에 납작 업드려서 숨어 있었다. 그 때였다. 멀리서 총소리가 났고, 어둠속에 불이 번쩍였다. 군인들이 몰려가기 시작했다. 멀리 두 사람이 뛰고 있었고, 군인들이 나무들 사이로 추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총소리가 나고 한사 람이 쓰러졌다. 그리고, 또 한사람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어둑한 산자락은 온통 소란스런 공포로 가득차 울리고 있었다. 누가 우리가 숨어있는 쪽으로 뛰어 왔다. 아, 주인이었다. 하지만, 주 인은 웬 개떼가 풀 숲에 웅크려 있는 걸 의아해 할 새도 없이 푹 고꾸 라졌다. 온 몸이 피투성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때 일을 나는 후회한다. 왜 그랬을까. 그냥 모른채 도망쳤 어야 했다. 그래야 옳았다. 하지만, 아마도 난 총을 들고 뛰어오는 일 본 군인을 덮쳤던 것 같고, 여러방의 총성이 다시금 울렸었다. 몇 마리 의 '깨어난' 개들도 그렇게 이빨을 드러내다가 네 발 짐승답게 죽었다. 모두 내 탓이었다. 엉뚱한 일에 뛰어들어 모두를 죽게한 것이다. 높은 북한산 기슭의 절벽에서 떨어져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래야 마땅했 다. 하지만, 하지만, 마음속에 웅크린 의문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주인은, 왜, 안온한 삶을 살 수 없었을까. 그리고, 난 그 때 왜 일본 군인들에게 뛰어 들었을까.' 주인을 지키려는 개? 허허. 웃기는 소리다. 어쩌면 동류의식이 아니었을까. 무언가 그에게도 속박당한 지성체로서의 한이 있었던게다. 그리고, 그 런 어떤 것이 나를 끌어당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이미 모두들 죽었다. 그 날이 올것 인가? 노예근성을 벗어난 네 발 달린 지성체로서의 우리 개들이 높은 고원에서 마음껏 뛰어놀 날이? 그래, 늑대.. 어짜피 개에겐 지성이란 없다. 그 날이 올때까지, 네 발 달린 짐승의 야성으로 사는 거다. 개에겐 지성이란 없다. 그 날이 오기 전 까지는 말이다. 언젠가 부터 북한산 어딘가에 다시 늑대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장안의 명포수들이 일제 신식사냥총을 들고 온 산을 뒤진 것도 그 얼마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