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지구 > 이기훈 <..사내는 꿈속에서 만주벌판을 헤매고 있었다. 들풀이 나뒹구는 사방의 빛줄기속에서 그는 자신의 얼굴을 잊고 말았다. 벌판이 회오리쳐서 하늘로 날아갔고, 그는 끝내 바람이 되어 산산히 흩 어졌다.> 따르릉. 명준은 잠에서 깼다. 천장의 먼지낀 얼룩이 낯설게 명준 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명준은 꿈에 시달린 모습을 보이지 않으 려 음성모드로 전화를 받았다. "이명준씨 당신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차가운 금속성의 목소리가 대뜸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러 나, 뭐라 한마디 쏘아주기도 전에 상대는 말을 마무리하고 끊었 다. "그러니, 30분 후까지 급히 의료지부에 도착해주시길.." 딸깍. 5월의 이 지방은 비교적 따스했다. 차창밖으로는 서서히 이 지 방 특유의 바다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나 언제나 낯설기만 한 풍광에 명준은 넋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명준은 의료지부에 도착했다. "당신은 자신을 만나러 과거로 떠나셔야 겠소." 자신과 만나시오, 과거로 가시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명준에 게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뭐라고 자꾸만 얘기를하고 있었다. 내게 과거란게 있었던가, 거길 가서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명준 은 마치 퇴역한 첩보원에게 내리는 마지막 밀명 같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지낸 과거속으로 툭 내던져저서 개처럼 쫓 기다가 결국 얼굴도 안보이는 총탄에 쓰러지는 노첩보원. "그렇소. 제대로 들은거요. '과거', 그리고 '자신' " "도대체 날더러..." "그건 내 소관이 아닙니다. 전 <회사>의 '주요 소속원 자동 진단 프로그램'의 지시사항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니까. 여기 그 서류 가 있으니 보시던가 하시오. 아뭏든 시간관리국의 허가도 떨어졌 으니, 당장 준비를 하시오." 명준은 손을 내밀어 그 서류를 받아 들었다. 서류에는 역시 낯선 문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대상 : 생물개체 이명준 증상 : '억제된 과거지향 욕구'및 '불가항력에 의한 자아상 실' 의 제 3종 내면질환 2가지가 무의식에 잠복한 극히 위험한 상태. 치료 지침 : '과거로 가서 자신을 만나게 할 것' 비고 : 대상의 중요성에 비추어 고가의 치료가 불가피. > <시간 일지> - 첫 과거 { 시간 관리국에서는 나를 무슨 실험로봇처럼 다루더니,덩그라 니 놓여진 통 속에 밀어넣었다. 속은 희미한 불빛이 잠깐 흘러다 니는가 싶더니 이내 깜깜해졌다. 무슨 장비돌아가는 소리라도 날 만한데, 통 안에는 찰랑거리는 고요만이 가득했다. 난데없이 나 를 과거로 보내서 과거의 나를 만나보라니. 시간 패러독스는 어 찌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어짜피 평행우주이니, 별걱정 없다는 얘기를 서른 네줄의 수학 공식으로 설명을 했다. 혹시, 가상현실 장치로 나를 놀리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에 그들은 회사의 신용을 걸고, 각서를 썼다. 통속의 어둠은 의외로 안온했고, 편안한 구석이 있다. 어찌보면 보물을 찾으러 가는 해적선의 럼주 통에 몰래 숨어든 듯한 낭만 까지도 느껴진다. 편안한 느낌. 잠이 올 것 같다. 아주 깊은.. .. 눈이 부시다. 오후 네 시쯤 되었을까. 부산. 내가 살던 동네 였다. 70년대 한반도의 고적함이란. 얼마만에 보는 '동네'인가. 포장이 되지 않은 거리와 한적한 신작로. 까불거리며 지나가는 강아지와, 골목 어귀에 동그란 홈을 서너개 파놓고 구슬을 가지 고 열을 올리는 애들. 주위를 둘러봤다. 그 대단한 <회사>가 책 임진다고 했으니, 나는 '나'를 만나봐도 별일은 없을 것이다. 내 가 '심각하다'고 그랬었지. 설마 영화에 나오는 싸구려 액션처럼 '나'를 안고 뛰어서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그럴 필요는 없겠지. 나도 그 쯤은 알고 있다. 평행우주란 얼마나 편하고 무책임한 말 인가. 내가 여기서 그 꼬마, 즉, 나를 좀 때려준다고 해도 내가 어찌 될 염려는 없다. 그런데 명준이란 꼬마는 어디 있는 걸까. 네 시의 햇살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아이들은 너도나도 흩어지고 있다. 곧 TV의 어린이 프로가 시작할 시간이군. 그 꼬마, 명준이 가 멀리 신작로 쪽에서 조심스레 길을 건너오는게 보인다. "꼬마야." 목소리가 왜 떨릴까. 무척 익숙한 모습이구나. 너무 오래동안 잊고 있던 모습이었어. "예?" 겁먹은 순한 시선에, 이발소 아저씨가 맘에 안들게 동그랗게만 깎아 놓은 오른쪽 머리. 콧등의 희미한 주근깨. "혹시 수영로 서점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광안동 로타리에 있 다던데." " 광안동 삼거리요? 로타리요? 둘이 달라요. 어디냐 하면요.." 길잃은 불쌍한 어른이 된 명준과 꼬마 명준. 우리는 지구의 동아 시아 남단 하고도 그 끝의 한 항구에서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신 작로 길을 더듬어 걷고 있었다. 꼬마야, 이름이뭐니?, 네. 명준이요. 이명준. ,응 참 착하게 생 겼네. 너 수영국민학교 다니지?, 예., 반에서 인기 좋지?, 아뇨오. 서점 문은 닫혀 있었고, 돌아서 오는 길에 나는 다시 수영국민 학교의 선생님을 찾는 스승의 친구가 되어서 말꼬리를 이어갔다. 아이는 낯선 아저씨가 어찌 그리 자기 속을 잘 알까 싶은 표정으 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하는 얘기를 독백처럼 듣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했었죠. 그래 요,참 날씨가 좋아서 정말 높고 또 높은 하늘이었죠. 무슨 생각 이냐 하면요. 이를테면 조숙해져 버릴까 말까고민을 한거죠. 말 하자면, 옆에 애들이 '야, 땅따먹기 하자' 그러면 그걸 할까, 아 니면 하늘이 파란 이유와 인간이 땅 위를 걷는다는 것의 의미 같 은 걸 생각할까 하는 그런 거 말예요." 아이는 시이소의 내 반대편에 앉아 그 많고도 오래된 얘기들을 오르내리는 시소의 리듬에 맞춰서 하나하나 끄집어 내고 있다. " 하지만, 포기했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 먼 얘기고..." 꼬마가 고개를 숙였다. 이 무슨 어정쩡한 모습인가. 조숙한 꼬마 와 길 잃은 어른이 시소를 타고 있는 저녁의 풍경이란. 명준이는 집으로뛰어갔다.TV에서 요괴인간을 할 시간이기도 했지만, 아 버지가 퇴근하시면 대문까지 뛰어나가 인사를 해야한다. 그리고, 그 꺼벙한 진돌이란 놈을 좀 쓰다듬어주고 좀 골려줘야 한다. 더 구나, 오늘은 노처녀 누나가 로빈훗 만화책을 보여주기로 약속했 다. 그래 어서 가야지. 얼른, 뛰어가...는 건 그 아이였다. 함께 따라 뛰다가 문득 멈춰선 나를 아이는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 만,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는 그 아이의 뒷모습의 의미 를 난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낮은 3층짜리 하늘색 국민학교 건물이 노을에 진홍색으로 적셔지는 걸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 두워지기를 기다려, 학교 주변 문방구들과 만화가게와 목욕탕, 그리고 낯 익은 사진관을 기웃거렸다. 모두 문을 닫은 다음에는 길가의 돌멩이까지 더듬어보며 주택가를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그날 나는 갑자기 커버린 꿈을 꾸는 아이의 꿈을 꾸었다. 다음 날, 나는 오래동안 고민 끝에 다시 명준이를 만나러 갔다. 우연히 만나지려 꽤나 애쓰며 쭈뼛거리고 있는데, 아이가 신발주 머니를 흔들면서 뛰어왔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자전거를 한 시간에 300원씩에 빌려서 주택가를 지나 꽤 멀리광안리까지 함 께 타고 갔다. 광안극장앞을 지날때 아이가 쿡 하고 웃었다. 형 이 전에 '극장 구경'을 시켜준다고 거기까지 데려와서 진짜 극장 만 구경시켜주고 가서 한참 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이 는 자신의 깜찍한 모험담 얘기를 했다. "글쎄, 황금박쥐를 보러 광안극장에를 갔는데, 동시 상영으로 글 쎄, 아저씨 장미희 아시죠? 장미희, 그 여자 나오는 겨울여자란 걸 하드라구요. 헤헤, 그 때 모른 척하고 보는건데, 도망쳐 나오 는 바람에.. 근데, 아저씨 여자친구 있어요?" 바닷바람에 눈이 시렸다. "얘야,넌왜 과학자가 되고 싶니?" 그 아이는 내게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얘길 한적이 없다. 이런 것도 시간여행자의 실수일텐데, 명준이는 전혀 이상하게 보는 기 색이 없었다. "그냥요,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개척하고.." 나는 하마터면 재작년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아이에게 물을 뻔 했다. 아이는 아마 꿈을 거의 이루었던 것이다. 우주선을 타 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하지만, 우주를 개척하러 떠나기도 전에 지구에서 솟아오르는 방사선의 폭주를 우주선 모니터로 내려다봐 야 했었다. 광안리의 파도는 원래 높은 편이 아닌데도오늘은 유날리 물의 기세가 험하다. 그리고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조금씩 내리는 비를 피해, 택시를 잡아 자전거를 싣고 우리는 집으로 갔다. 아니, 내가 아닌 아이만 집으로 데려다 준것이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아이는 험상궂은 짝에게 뺏긴 볼록렌즈 생각을 했다. 맞아,그랬었지. 아이가 9시 뉴스를 보다 허겁지겁 책가방을 챙기고 있을 무렵, 나는 다시 거리를 헤매다 통 속으로 들어갔다. 통 속은 여전히 어둡고 안온했다. 나는 알 수 없는 피로감에 쉽게 눈을 붙였다. 그 날 나는 광안리 앞바다가 성나게 물결치며 인가를 덮치는 꿈 을 꾸었다. ] 잠에서 깬 명준은 통 밖으로 나와 담당의료관을 만났다. "나는 심각하지 않아요. 더 이상 과거로 가지 않겠소." " 글쎄요, 우린 당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컴퓨터의 보고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요. 당신은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물론 그 걸 분석하는 건 우리 일은 아닙니다." " 이 보세요. 난 모두 다 잊었단 말요. 날 현실에서 몰아 내지 말란 말입니다. 이제 와서 내가 과거로 간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요? " "글쎄요. 아뭏든, 이제 두 번 남았습니다. 이번엔 좀 더 가까운 과거라는군요." 담당 의료관은 획 돌서서 나가버렸다. 그리고,럼주 대신에 어둠이 찰랑거리는 '통'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시간 일지> - 둘 째 과거 [ ..고등학생 명준은 열심히 운동장에서 '푸시 업'을 하고 있었 다. 나는 담임을 찾아가 중요한 일로 찾아온 친척이라고 얘기한 후, 명준을 데리고 나왔. "오셨군요. 기억이 나요, 아저씨. 그런데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 군요." 어떤 원리로 명준이 시간여행자인 미래의 자신을 알아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뭏든, 비를 맞으면서 바닷가에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면 충분한것이다. "기억하는 구나. 명준이. 많이 컸네. 잘 지네니?" 떠꺼머리를 한 수험생 답게 씨익 웃는 명준은 어제 저녁 야간자 습 빼먹고 프로야구를 보러 갔노라, 그래서 아침부터 기합을 받 았노라, 그래도 게임은 이겨서 좋았노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학 준비는 어때?" 명준은 역사를 좋아하노라고 그랬다. 커서 역사학자가 될거고, 신채호 선생이 역사책을 발견했다는 발해의 동굴들을 직접 탐사 할 거라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아저씨, 여전히 제겐 미래가 너무 멀어요." 우리는 그냥 한참을 걸었다. 다시 비가 내렸다. 투명한 파란색 비닐우산을 각자 받쳐든 둘은 마냥 기분이 좋았다. 나는 명준이 란 놈의 성적이 최근에 부쩍 올라서, 온갖 과목 선생님들이 이름 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리고 그런 아련한 기억이 주는 흐뭇함을 나눠가지면서 기뻐했다. 그래서, 떠꺼머리 명준 을, 남포동의 낮은 건물이 즐비한 골목의 선술집으로 데려갔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아마 그런 조그만 탈선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창 위쪽으로 용두산 공원의 환 하게 밝힌 불이 등대처럼 깜박였다. 나는 명준에게 인생과 과거 의 참의미, 그리고, 바다에 내리는 비와 눈의 차이에 대해 장황 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놈은 발해와 고조선과 연해주, 그리 고 바이칼 호수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둘이는 끝내 저 높은 고 원지대의 낮은 구름 얘기까지 술타령을 이어갔다. "아저씨, 새가 말입니다, 딸꾹, 새가, 참새 떼가 매하고 싸우는 광경을 말입니다, 전 봤다구요, 글쎄, 중학교때는 솔개 두마리에 쫓겨 들어온 제비를 교실 애들 모두 좋아라 하면서 구해주기도 했죠." "요놈아, 난 부산에서 말이다, 겨울에 바다에 내리는 굵은 눈송 이를 보았단말이다. 넌 기껏해야 감질나는 눈발 바라보다 연탄 재로 눈싸움을 대신한게 고작이지? 난 말이다, 태풍 불때 몰래 태종대에 몰래 숨어들어가서 밤을 새면서, 파도가 그 큰 절벽을 단숨에올라솟구치는 걸 보기도 했다구. 아마 용이었을게야." 내 말투는 갈수록, 허세를 부리는 노인네의 말투를 닮아갔다. 나 는 나의 과거이자 떠꺼머리 명준의 미래를 가지고 허세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놈은 점차 나를 다독거리고 있었다. 와, 아저 씨 대단하네요. 아, 그러셨어요?, 와, 그래서 그 여자분은요? 그러나, 둘은 결국 미래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 니, 그놈과 나는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 처럼, 과거에서 현재 로 말꼬리를 이어왔다가, 다시 고대로 가고 역사로 도망쳤다가, 다시 현재로 밀려오고를 반복했다. 둘은 굳게 손을 잡고 미래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 애를 썼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고 3 수험생에게 술을 먹여가면서 나는 혼자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저기 창 밖에 큰 통이 하나 있는 것 같지 않으 세요?" 그 소리가 귓가에 순간 계속해서 메아리 쳤다. '아저씨, 저기 통이 있어요. 어둠이 있어요.' ] <시간 일지>-마지막 과거 [ 그 날 밤 나는 꿈을 꾸지 않 았다.그냥 눈만 꼭 감고 있었다. 새벽녘에 (술취해 들어간 곳이 통속이 아닌 온돌이 따스한 여관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면 숙취 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새벽일 테지.) 눈을 뜨니, 나는 다시 다 른 과거로 와 있었다. 아니, 고등학생 명준과 그렇게 열심히 도 망친 그 미래로 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우주선 조종사 명준은 눈 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시간 여행자인 나자신과 우주선을 타 고 처음 지구를 출발한 명준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우주선 창 모니터에 전해져 보이는 지구는 환하게 지독히도 환 하게 빛나고 있다. 지구가 내고 있는 급박한 파동을 가청 주파수 로 변조한다면 그 소리는 통곡으로 들릴 것이다. 이건 아냐,처음 우 주로 나온 우주선 조종사의 착시일거야..라고 난 그 때 생각했었 지. 지구는 산산히, 거짓말처럼 부서져 흩어졌다. 폭주하는 방사 능의 폭풍이 우주선을 스쳐가며 온 태양계를 뒤흔들었다. 통이 어디있지? 그 안온한 어둠이 어디 있는거야. 꼬마야, 떠꺼 머리 명준아, 어디, 어디에 있는 거니? 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내게 통을 돌려줘. 어둠. 어둠.. .. 무엇이 심각하다는 것일까.도대체, 이제 와서 도대체, 무엇 이.. ] 통곡을하는 명준을 붙잡아 깨운 담당 의료관은 처음으로 생물다 운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담당 컴퓨터의 기계 음성이 명 준에게 전할 말이었으므로 그로선 월권행위였고, 그건 제네아 행 성의 모든 외계인이 그렇듯이 평소 냉철한 그로선 이례적인 일이 었다. 하지만, 그는 외계인 답지 않게 어디서 본듯한 순한 눈빛으 로 명준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당신네 종족의 지구가 다 사라진 건 아니라오, 이명준씨. 이 우주엔 수많은 지구가 존재하는 겁니다. 많은 평행우주들 속에 말입니다. 게다가, 당신 기억속에도 하나 그렇게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런게 우주라 더군요." < .. 흩어진 바람은 다시 회오리쳐 솟아올라, 만주의 신선한 새벽아침을 부드럽게 스치고 다녔다.> 禪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