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최현준(sigma) @제목: 오오 지구여, 내가 만일 그대를 잊더라도 @날짜: 11/20 21:54 제목 : "오오 지구여, 내가 만일 그대를 잊더라도..." ("If I Forget Thee, Oh Earth. . . ") 지은이 : 아더 C.클라크 (Arthur Charles Clarke) 마빈이 열 살이 되던 날, 그의 아버지는 마빈을 데리고 동력통 제실로 통하는 긴 복도를 지나 상층부에 있는 고속 생장 식물 재 배 농장으로 올라갔다. 마빈은 그 곳이 좋았다. 둥근 플라스틱 지붕을 통해 내리쬐이는 햇빛을 받으면서 거의 눈에 뜨일 만큼 쑥쑥 자라고 있는 날씬하고 멋진 식물들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기분좋은 일이었다. 생명력으로 가득 찬 기운이 마빈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다. 또 농장의 공기는 매우 신선했다. 차고 매마르며 톡 쏘는 오존 냄새 외에는 무미건조하기만 한 거주층의 공기와 완전히 달랐다. 마빈은 좀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아버지 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계속 앞으로 걸어가 마침내 관 측소 입구에 다다랐다. 관측소는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앞 으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마빈은 이제 갈 곳이 한 군데 밖 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넓은 대기실에는 커다란 고무 풍선 바퀴와 기압을 일정하게 유 지시킬 수 있는 객실이 달린 차가 십여 대 있었다. 그들은 마빈 과 마빈의 아버지를 이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왜냐 하면, 그들이 대기실로 들어서자마자 커다랗고 둥근 기갑문 옆에 서 기다리고 있던 작은 정찰차로 안내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시동을 걸고 제어장치들을 점검하는 사이에 마빈은 긴장과 기대 가 뒤섞인 기분으로 비좁은 객실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앉았 다. 기밀실의 안쪽문이 미끄러지듯 열리더니 잠시 후 그들 뒤에 서 다시 닫혔다. 기압이 0으로 떨어지면서 커다란 펌프가 천천히 공기를 빨아들이며 우르릉거렸다. 이윽고 [진공]표지에 불이 들 어오고 바깥문이 열렸다. 이제 마빈 앞에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그림에서 본 적은 있다. 텔레비젼 화면으로는 수백 번도 더 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 광경이 칠흙같은 하늘에서 이글거리 는 태양 아래 실제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마빈은 눈부시게 빛나 는 태양에서 고개를 돌려 반대쪽 하늘을 바라보았그런데 그 하늘에는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정말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던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작은 것들이 그렇게 밝은 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마빈은 오랫동안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불빛이라곤 하나도 없는 지독하게 깜깜한 하늘에서 빛 을 발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빈은 아버지의 책에서 읽었던 시가 떠올랐다. 반짝 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치네 마빈은 별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누구든 그걸 모른다면 아마 바보일 것이다. 그런데 '반짝인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 는 걸까? 한 번만 봐도 별모두 흔들림없이 똑같은 빛을 내 고 있다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는데. 그는 그런 골치아픈 생 각은 그만 두기로 하고 주변에 펼쳐진 광경으로 주의를 돌렸다. 그들은 거의 시속 100마일로 평평한 평지를 가로질러 질주했 다. 커다란 고무 풍선 바퀴가 그들 뒤로 먼지를 마구 피워내고 있었다. 잠시 별들을 바라보는 동안에 라디오 탑과 둥근 지붕이 지평선 너머로 숨어버렸기 때문에 마빈은 식민지가 어느 방향인 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또다른 표시를 발견했다. 약 1마일 앞쪽에섶 어귀에 밀 집해 있는 이상한 모양의 건물들이 보였던 것이다. 그 곳에서는 이따금 자그마한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가 이내 흩어지 곤 했다. 아버지는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칠게 운전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옛날에 식민지가 세워졌던 고원 가장자 리에 도달했다. 눈길이 닿는 앞쪽에는 분화구와 산맥, 협곡으로 뒤죽박죽된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다. 낮은 해를 물고있는 산봉우 리들은 어둠의 대양에 있는 불꽃 섬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 고 그 위에는 변함없이 별들이 빛나고 있었 그들이 있는 곳의 아 래쪽은 땅이 가파르게 깎여서 그 끝이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 을 정도로 현기증나는 비탈면이었느 로 더 나아가는 길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차를 계 속 앞으로 몰았다. 비탈면을 내려가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마빈 은 차가 그 비탈로 들어가 기나긴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나서 산 아래로 나 있는 희미한 바퀴자 국을 보고서야 약간 마음을 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전에 이 길을 내려간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그림자 지대를 넘어가자 갑자기 깜깜한 밤이 되었다. 해가 고원 너머로 떨어진 것이다. 대신 앞쪽 바위에서 푸르스름 한 빛을 드리우고 있는 탐조등 두 개가 나타났으므로 차의 속도 를 줄일 필요는 없었다. 꽤 오랫동안 그들은 골짜기를 따라 달렸 고, 별들을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산봉우리들의 기슭을 지나갔다. 때때로 차가 좀 높은 곳을 지날 때에는 잠시동안 햇빛 을 보기도 했다. 한참 뒤 그들은 오른쪽에는 주름진 먼지투성이의 평야가 펼쳐 져 있고 왼쪽에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 큼 줄지어 있는 산맥의 가장자리 지역을 지나갔뉜層岾 그 지역을 탐험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차는 어느 추락한 로켓 의 잔해 옆을 지나갔는데, 그 금속십자가가 꽃혀있는 돌 무더기까지 있었다. 마빈에게는 그 산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였 다. 그러나 수시간 뒤에 한 무리의 작은 언덕들로 이루어진 지역 이 나왔는데, 바로 그 곳이 산맥이 끝나는, 혹은 시작되는 지점 이었다. 그들은 그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지점을 향해 커다란호를 그리며 낮고 구부러진 골짜기로 차를 몰고 내려갔 다. 그 즈음 마빈은 앞에 보이는 풍경에 매우 이상한 점이 있다 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해는 이제 오른쪽 언덕 뒤로 완전히 넘어갔으며, 따라서 그들 이 달리고 있는 골짜기는 완전히 어둠에 묻혀 있어야 했다. 그런 데 그 골짜기는 차가운 느낌의 흰 빛을 받고 잇었던 것이다. 그 낯선 빛은 울퉁불퉁한 바위산들을 하늘에서 비추고 있었다. 시동을 끄자 작은 객실안은 매우 조용해졌다. 들리는 소리라곤 산소공급기의 희미한 속삭임과 차가 열을 방출할때 바깥쪽에서 가끔씩 들리는 딸깍거리는 소음뿐이었다. 멀리 지평선 위에 낮게 떠서 땅을 온통 진주빛으로 뒤덮고 있는 커다란 은빛 초승달로부 터는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빛은 매우 찬란퓌빈 이 눈부심에 익숙해지고 그 이상한 초승달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있게 되는 데에는 한동안 시간이 걸렸다. 잠시 뒤 마빈은 그 초 승달에서 대륙의 윤곽과 안개가 자욱한 대기권, 그리고 뭉게뭉게 떠있는 하얀 구름들을 식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멀리에 서도 극지방의 얼음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을볼 수 있 었다. 그것은 우주의 심연을 넘어 그의 가슴에 곧장 와 닿을 정도로 아름다왔다. 빛나는 초승달에는 그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저녁 놀에 물든 하늘의 색조, 조약돌이 가득한 바닷가의 파도,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축복처럼 내리는 눈송이 등 온갖 신기한 것들 이 있었다. 이것들 뿐만 아니라 그 밖에 수없이 많은 다른 것들을 마빈은 마땅히 물려 받았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그것들을 책과 오래된 기록들을 통해서만 들었을 뿐이며, 그런 것들에 대해 알 게 될 때마다 오히려 그리움과 안타까움만을 더하게 되는 것이 다. 왜 사람들은 돌아갈 수 없을까? 떠다니는 구름 밑은 평화스러 운 것 같았다. 빛에 눈이 익숙해진 마빈은 어둠속에서 어쩐지 기 분나쁘게 희미한 인광빛을 내고 있는 초승달의 전체 모양을 둥근 윤곽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억해냈다. 온 통 폐허로 만들었던 최후의 전쟁을, 그리고 그에따라 세상을 온 통 뒤덮은 방사능 영향에 대해 곰곰히 떠올려 보았다. 차츰 소멸 하고 있는 원자들이 여전히 파멸로 치달았던 과거를 생각나게하 며 25만 마일의 우주공간을 건너서 끊임없이빛을 발하고 있었 다. 그 재앙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지고 생명체가 다시 돌아와 적 막하고 고요한 세계를 활기차게 만드려면 아직도 몇 세기를 기다 려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단지 옛날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이 제야 비로소 모두 마빈에게 들려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가 결코 보지 못했던, 지구에 살았던 인간들의 현란하고 아기자기했던 삶들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 다. 또한 외딴 곳에 떨어져 있었던 달 식민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군인들도 이해할수 없었다. 그러나 마빈은 고 향으로부터 물품들을 실은 보급선이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을 때 달식민지가 겪었을 종말론적인 고뇌를 어설프게나마 공감할 수는 있었다. 하나 둘씩 방송국들은 송신이 끊겼고 그림 자로 뒤덮인 지구의 도시들은 불빛이 희미해지다가 이윽고 사라 져 버렸다. 전에는 혼자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인류의 미래를 고 스란히 떠맡은 채 달식민지는 결국 홀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절망의 세월이 잇달았다. 황폐하고 적막한 달나라 에 혼자 남겨진 식민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 쳤다. 희망은 갈수록 점점 바래져갔다. 그러나 그대로 사라질 수 는 없었다. 우주에 홀로 남겨진 이 작은 생명의 오아시스는 강인 하게 생명을 이어갔다. 기대할 미래가 없다면 식민지는 살아갈 의지를 상실할 것이고, 그때는 어떤 기계나 기술이나 과학도 그 들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마빈은 아버지가 이 순례의 길에 자신을 데리고 온 것 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저 잃어버린 전설의 땅 에서 물이 흐르는 강둑을 걷거나 그것을 둘러싼 언덕 위에 올라 가 우렁차게 울리는 천둥 소리를 듣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언 젠가는 -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 그의 후손들 중 누군가 는 그들의 유산을 찾으러 돌아 갈 것이다. 비와 바람이 불타버린 땅으로부터 방사능 독을 씻어내려 바다로 깊은 바다는 아 무 생물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때까지 그 독물을 정화시킬 것이 다. 그 때가 되면 여기 조용한 평원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커다란 우주선들이 인류의 꿈을 새롭게 피우고자 고향 지구를 향 해 날아 갈 것이다. 그것은 아직 꿈이었다. 그리고 마빈은, 앞으로 자신의 아이들 에게도 하늘에서 비치는 저 낯선 은색 별을 보여주면서 잃어버린 과거의 사명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마빈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했을 때 뒤를 돌아보 지 않았다. 이윽고 식민지에 도착하여 이제는 오랜 유랑 신세에 있음을 알게 된 이웃들과 다시 만나게 되자, 이미 초승달 모양의 지구에서 나오는 차가운 빛은 주위의 바위들 너머 지평선으로 사 라져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쩐지 견딜 수 없게 슬퍼졌다. 런던 1950년 12월 == 끝 == 옮 긴 이 : 김성희 다듬은이 : 팽동국,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