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sf와 문학성 이기훈 '문학성이 풍부한 하드 sf' 라는 말에는 아무 모순이 없는 걸까? '문학성'과 '하드 sf'라는 정의가 애매한 단어가 둘이나 들어간 질문이다 보니 실없는 얘기가 되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뭔가 궁금증이 쉽게 가시지는 않는다. 문학성이라는 말에 속할만한 특성을 들라면 얼핏 뛰어난 문체, 사회나 인간의 반영 등을 들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깊은 상징성을 꼭 덧붙이고 싶다. 자고로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치고 한시대, 적게는 한 세대나 인간의 어떤 측면을 멋지게 상징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과학소설의 많은 장점과 가능성 중에 분명히 들 수 있는 하나 가 또한 그 깊은 상징성이 아닌가. 하드 sf처럼 직접적으로 과학자체가 주인공인 소설도 아니며 그렇다고 스페이스오페라처럼 순전히 배경이 나 장식으로만 사용하지 않는 그런 가능성이 과학소설에 분명히 존재 한다고 믿는다. 깊은 상징성을 띨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배경으로 쓰이 더라도 어떤 주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데 필수적인 배경으로 작용한다 면 그 것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배경과는 또 다른 것이다. 알다시피 일반 소설의 상상력은 과학소설의 애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현실이라는 장벽에 많이 억제되어 있다. 서점에서 잠시만 이책 저책을 뒤져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자의식 과잉증세에 빠져 주체를 못하는 기형적인 주인공으로 힘겹게 책장을 이어가는 소설들. 아울러, 빈곤한 소재나 주제의식의 형상화의 어려움에 시달리는 작가라면 숱한 불구와 정신병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과격한 윤리의식의 파괴같은 것에 의지하는 경우까지 눈에 뜨인다. 그런 점에서는 과학소설의 독자나 작가는 한결 자유로운 것이다. 자유롭게 아주 멋있게 과학적이고도 신기한 세계를 창조할 수가 있다. 아울러 그 세계가 구체적으로 과학적이며 그런 부분이 작품에서 주된 역할을 한다면 그 소설은 하드 sf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욕심이 생기고 궁금증이 생긴다. 하드 sf와 문학성은 과연 양립할 수 있을까? 흔히 하드 sf를 좀 보다보면 그 성격상 무미건 조해지기 쉽다. 그리고, 보다 상징과 은유가 풍부한 sf라면 자칫 현실에 서 붕뜬 공상이 되기 쉽다. 과연 이런 두가지 성격이 공존하는 작품은 힘든 것일까? 좀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라마와의 랑데뷰'에 '노인과 바다'나 '이방인'에서와 같은 깊은 상징성이 있는 걸까? 아니면 역으로 '선과 모터싸이클 수리' 같은 책의 도도한 담론이 좀더 '과학적'인 배경 에 담길 수는 없을까? ( 물론 두 경우 모두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단순히 궁금한 탓에 생각해보는 것이다.) .. 결국, 거칠고 엉성한 개념으로 생각하다보니 이리 엉뚱한 고민에 빠 지게 되었다. 사실 읽은 sf가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모르겠다. '깊은 문 학성을 갖춘 하드 sf' 라는게 기실 아주 많이 있는데 혼자 엉뚱한 생각을 한 듯하다. 아뭏든 여러모로 좋은 sf소설이 국내에서도 나올 듯하니, 게 으른 독자로서도 그런 작품을 게시판에서 발견하고는, 전화비 생각할 겨를 없이 혼자 흥분할 그 언젠가가 기다려진다. 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