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戰에 나타난 UFO 이기훈 ..실수였다. 불과 몇 년 안되는 오차였지만, 어쨌든, 2차 세계대전은 끝난 것이다. 게다가 위치도 잘못되었다. 노르망디를 계획했던 것이 엉뚱하게도 지중해 연안으로 도착한 것이다. 물론, 항성간 여행에 시간까지 넘나들다보면 이 정도야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은하 제 3전쟁에서 막 남편을 잃어버린 나로서는 극단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던 중이라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나온 소설탐사 여행에서 조차 신경질적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원칙을 무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원반>을 착륙시켰다. 지중해의 바다는 뜨거운 태양아래 푸르게 빛나고 있었고, 파도가 간지럽히는 해변 한구석에 사내가 서있었다. 그는 그들이 말하는 UFO를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나는 외계인 클라라에요. 나는 당신들에게 접근할 수 없는 규칙을 어기고 내려왔어요. 내 기분 여하에 따라 당신을 '소멸'시킬수도 있어요. 여기 태양은 너무 눈이 부셔요." 사내는 말없이 웃었다. 그의 표정에 남편 시제레프의 웃음이 겹쳐져 보였다. 클라라는 어지러웠다. 지구라는 실험행성을 끔찍이도 아끼던 남편을 잃은 충격이 이리도 깊었을까. " 눈이 부시다는 건 멋진 이유군요. 인간은 그 정도의 이유도 없이 서로들 죽인다오. " 사내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중해의 옅은 바람이 황금빛으로 연기를 풀어헤쳤다. "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치고는 당신의 눈빛은 떨림이 많아요." 클라라는 무엇엔가 쫓기듯 황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남편의 말로는 지구인은 '원반'을 보면 놀라서 쇼크상태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불을 처음 발견한 원숭이들처럼 안절불안한다고 그랬었다. 클라라는 그 걸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잔인해 지고 싶었다. 그러나, 왜. 남편의 표정이 자꾸만 환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클라라는 급히 시간역사책을 검색해서 가까운 시간대내의 전쟁을 찾았다. 남편을 죽게 만든 그 무의미한 전쟁을 파헤치러 가겠다고 은하소설국에 큰소리를 쳤었다. 아뭏든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 .. .. 1950년 ,동북아시아의 남단 반도,위도 38도선, .. .. 전쟁의 발단 .. 없음 .. 승자 .. 없음 .. 패자 .. 길위의 들꽃.. 클라라는 시간역사책의 출력 결과물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1950년.. 지금부터 5년후. 접근 가능 시간대이니 다행이야. 그런데, 컴퓨터가 또 이상을 일으키는 군. 지구에서는 전쟁얘기만 입력시키면 저런 엉뚱한 출력을 내놓으니. 이게 모두 그이가 죽은 후에 급속히 기울어진 경제 형편탓이야. 여전히 구식 컴퓨터를 쓰고 있으니. 클라라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달의 서쪽면 중력경계점에 와있었다. '원반'은 서서히 다시금 아래의 파아란 행성의 상반구로 기울어져 내려갔다. 5년의 시간을 다시 뛰어넘느라 '원반'의 색채가 짙은 고동색으로 변했다가, 이내 순간 흰빛을 작열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낮게 깔린 구름탓에 클라라는 '원반'은 아주 지표면에 근접시켜 날았다. 멀리서 포성이 울리고 있었고, 아래에도 작은 기계식 살상장치들의 '콩볶는'듯한 소리가 난무하고 있었다. 원시적인 전투였다.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었고,하나의 높은 지점을 향해 개미떼 처럼 녹색옷을 입은 인간들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땅..따따따.. 펑...따따따..땅 클라라는 조용히 낮은 비구름속에 숨어서 전장위를 떠다녔다. 그리고, 이내 아래의 전쟁에도 무관심해져서 다시 항성간 전쟁에서 전사한 남편생각에 빠져 들었다. 시제레프가 전면 스크린에 가득 떠올라서 웃고 있었다. 여보.. 갑자기 경고음이 울렸다. 승객의 정신리듬이 정상을 잃어가자 '원반'이 경고를 보낸 것이다. 클라라는 눈물을 거두고, 아래를 쳐다보았다. 한 사내가 생물체의 최대한계까지 뛰고 있었다. 아니 쫓기고 있었다. 사방에 그의 적들이 뒤쫓고 있었다. 수십..아니 수백.. 컴퓨터의 기록이 화면 하단에 부산히 움직였다. 쫓기는 사내는 '북쪽' 이고 쫓는 이들은 '남쪽'이라 했다. '북쪽'의 그 사내가 넘어졌다. 탈진한 것이다. 수백의 '남쪽'이 구식 기계살상장치를 들고 시시각각 포위하고 있었다. 아.. 남편도 저렇게 당했어. 소우주선의 전투끝에 쫓기다가 수십의 적 우주선에 둘러싸여서... 클라라는 급히 그 사내를 화면에 클로즈업 시켰다. 그가 하늘을 봤다. < " 오마니.. 내래 이제 죽습네다. 오래 사시기요." 사내가 무릎을 꿇고 쳐다본 하늘에는 빗속으로 둥근 원반이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에 어머니가 눈물짓고 있었다. > '원반'은 다시 경고음을 울렸다. 클라라는 미친듯이 조종간을 내렸고, 갈라진 구름사이로 비친 빛줄기에 '남쪽' 병사들은 기적을 보았다. ..그쳤던 빗줄기가 다시 하나둘 방울져서 사내의 얼굴을 때렸다. 깨어난 사내는 화약내음과 피냄새가 진동하는 벌판에 혼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백마고지가 아니었다. 여기가 어딜까. 사내는 죽는다 싶었던 순간에 둥실 떠올랐던 어머니의 얼굴과, 환한 빛줄기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리고 걸었다. 걷다가 발걸음이 무거우면 이념을 버렸고, 그래도 힘겨우면 꿈도 이상도 모두 내딛는 발걸음 마다에 내려놓고 길을 갔다. 길위의 들꽃은 그가 잃어버린 젊음에 숨이막혀 강하게 몰아치는 한순간의 비바람에 땅위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사내는 낯선 말을 하는 미군에게 투항했다. ..클라라는 다시 무중력상태에 몸을 내맡기고 아래의 파란 행성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몇 년전 자신의 행동이 그리 어리석어 보일수 없었다. 수없이 죽고 죽이는 인간이라는 개체들의 틈바구니에서 어찌 한 인간을 구했던걸까. 자신은 인간이란 수명이 짧은 개체들의 집단 심리를 연구하고 파악해서 적당한 보고서를 쓰고, 소설을 써야 할 뿐이었다. 한참의 망연한 생각끝에 클라라는 다시 일어나 컴퓨터에게 자신이 구했던 사내의 종적을 추적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참의 부산한 사각형의 불빛이 점멸을 거듭한 끝에 컴퓨터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남쪽 반도 끝의 '거제도'라는 섬에 있음을 확인했다. 클라라는 '원반'을 그리로 이동시켰다. .. 컴퓨터는 '수용소'라고 그 장소를 규정했다. 그 때 그 사내는 푸른 죄수복을 입고 있었는데, 다시 수십, 수백의 다른 인간에 둘러쌓여 있었다. 다시, 클로즈업. < 이 동무래 신성한 인민군의 소좌로서 반동적으로 남조선으로 전향할 의사를 미군에 전달하다 우리 혁명소조에 검거됐시요. 반동간나..죽이라우요..와...와....죽이자..간나새끼... 이 반동은 사흘후 大隊비판에서 인민의 심판을 받을끼요....> 클라라는 급히 클로즈업을 중지시켰다. 그의 표정이 보일까 두려웠던 것이다. 클라라는 이번에는 그를 살리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죽은 자신의 남편은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었다. 남편은 저 사내보다 더 외롭게 죽었어. 이 잔인한 우주에 기적이란 없는 거야. 그러나 클라라는 떠나지 않고 그를 모니터했다. 소설을 써서 은하문단 3호지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도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실은 클로즈업을 중지시킬 그 찰나, 그 사내의 눈물을 보았던 것이다. 그 사내는 팬티바람으로 철조망을 넘어서 머리가 노란 종족의 감시병에게 탈출했으나, 다시 끌려왔다. 숱하게 맞았다. 그리고 도살 직전의 우주들소 처럼 수용소를 기어다니면서 꿈틀거렸다. 그 <대대비판> 하루전 마침내 그 사내는 미치게 되었다. 클라라도 그 예의 경고음을 다시금 들었다. 사내는 가운을 입은 노랑머리 의사앞에서 소금을 한주먹씩 먹어대고, 사지를 비틀고, 침을 흘리고,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리고, '원반'의 컴퓨터는 도청한 언어를 서둘러 번역하고 있었다. ... Crazy! Crazy! this guy is Crazy! .... 사내는 결국 생존했다. '원반'의 컴퓨터의 견해에 따르면, 논리적으로 그 사내가 미치거나, 미친 척 하는 것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클라라는 그가 정말 병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미치진 않았어도 적어도 큰 병이 들기는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컴퓨터는 계속해서 그의 신체는 다치긴 했어도 병이 들진 않았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냐. 그는 정말 병이 들었을 거야. 클라라는 이제 화성과 목성사이의 시간 정류선상에 떠 있었다.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클라라는 서서히 공간과 시간을 고향행성의 고향시간대에 맞췄다. 그런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클라라는 그 걸 미룬 채 몇 시간씩이나 그냥 앉아있었다. 걱정이 된 컴퓨터가 말을 걸어도 그냥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가, 그래. 한번만. 마지막으로.. 하고 혼잣말을 되뇌이더니, 서둘러 파란 행성으로 되돌아갔다. 이번에는 '원반'이 녹색과 흰색을 띄었다. 컴퓨터는 우울한 주인의 명령을 받아서 다시 동북아시아의 끝으로 갔다. 다만 4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미래로 향해야 한다는 점과 다시 훨씬 많아진 인간들 중에서 '그 사내'를 찾는 다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구식일 지언정 컴퓨터인지라 간신히 작업을 완수했다. 쉽사리 '정보부족으로.. 불가능하오니...'라고 결과를 내뱉기에는 클라라의 눈빛이 너무도 어두워보였다. .. 1993년 서울 근교의 공사장. 사내는 주름진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내면서 동료들과 담벼락에 기대 앉았다. 아르바이트로 나왔다던 청년이 늙은 나이에 고생하는 것이 안스러운지 수건을 내밀며 담배를 건넨다. < 후우. 생각하면 길고도 질긴 인생이었어. 북에 계신 어머님은 돌아가셨겠구먼. 그나저나 오늘따라 왜이리 하늘은 저리 파랗누. .. 허허. 그래도 산다는 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야.> 사내는 비내리던 백마고지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일, 그리고 하늘가에 둥그렇게 달같은 것이 떠올라 어머니의 얼굴이 비치던 것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 때. 공사장 인부들이 모두 일어서서 소리를 질렀다. "저것봐. 저게 뭐지?" "UFO같은데?" "뭐라구? 그 이틴가 뭔가 하는데 나오는 외계인?" "UFO?", "야. 저것좀 봐. 이리로 오는데." 클라라는 사내의 표정을 한번만 더 보고 싶었다. 클로즈업. 사내는 하늘에서 다시 대낮에 둥그런 달이 떠있는 걸 보았다. 어머니의 얼굴. 사내는 일어서서 서서히 손을 흔들었다. 환하게 환하게 웃으면서.. ..1993년 한반도 상공에 나타난 UFO는 다시금 힘차게 하늘을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