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의 서양 과학 수용에 대하여 -17,18세기(실학기) 홍대용,최한기의 과학 사상을 중심으로- I. 머 리 말 역사학자들은 1860년대 부터 한국의 근대화 노력을 다양한 관점으로 평가하였다. 1860년대 부터 1910년 까지의 연구는 주로 실학에 집중되었고 실학은 개화파가 현실 타개와 대응책으로써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현실 대응책 내지는 타개책으로 관심을 갖게 된 시기에는 실학에 대한 객관적 연구는 없었다. 실학이 당시에도 일정한 현실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10년 이후 조선이 일본에 완전히 종속되고 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이행됨으로써 실학의 현실성이 없어 지고, 실학의 근본 요소인 맹아적 민족 의식, 근대 지향 의식 그리고 그 바탕에 깔려있는 현실 변혁의식등이 관심의 촛점으로 되면서 1930년대부터는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서 확고하게 자리잡 혀지게 되었다. 1930년대의 연구는 첫째, 문일평, 최익한, 백남운, 안재홍등 민족 사학에 의한 것과 둘째, 藤塚隣,山口正之, 末松保和, 高橋亭등의 제국주의 사학에 의한 연구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민 족 의식,근대 지향 의식으로서 실학을 파악하였고 {{ .안재홍은 정약용의 개혁사상을 평가하여 "근세 자본주의적 국가 사상 발흥기에 있어서의 정통파적 경제 사상에 입각한 재정,경제,식산,흥업의 책과 교육발전과 강병자위의 정책임을 볼 것이니 이런 점에서는 선 생이 뚜렸한 국민주의의 선구자임을 인식할 것이다"('新朝鮮'12(1935))라고 하였다. }} 후자 {{ }} 는 실학의 발생 기반을 당시 조선 왕조 사회의 바깥에서 찾았다. 따라서 조선왕조 사회와의 내면적 관계를 사상한 채 실학을 우연적인 현상으로 귀결시켰다. {{ .藤塚隣은 청의 실사구시 학풍이 조선에 도입됨으로써 그 자극에 의하여 조선에서 실학이 발생하게 되었 고, 이 신학풍이 청의 阮元에 의해 크게 계발된 김정희에 이르러 집대성 되었으니 완원은 반도 문화사상에 실사구시의 신학풍을 심어준 대 은인이라고 하였다.(이러한 연구는 "淸朝文化東來의 硏究'로 묶여져서 1975년에 간행되었다. 山口正之,' 近世 朝鮮에 있어서의 西學思想의 東漸과 그 發展", '小田 선생 송수 기념 조선론집'(1934). 高橋亨, " 조선 학자의 토지 평분설과 공산설", '服部선생 고희 축하 기념 논문집 ',1936. }} 1950년대에 실학 연구는 본격화되어 사회 자체는 정체 속에서 몰락을 거듭하지만, 사상에 있어서는 근대 사상 형성 가능성의 계기를 자신 안에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실학 사상이 발생,발전이 조선왕조 사회자체의 발전과 유기적으로 결부되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1960년대에 들면서 한국사에 대한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50년대 연 구가 30년대의 민족 사학의 성과를 도외시한 것을 지적,이를 극복하여 그것을 발전적으로 계승, 재창조하려는 작업을 활발히 전개한다. {{ .김용섭,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I.II, 일조각, 1970,1971. 강만길,[조선 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고 려대 출판부, 1973. 송찬식, [이조 후기 수공업에 관한 연구], 한국 문화 연구소, 1973. }} 위와 같은 긍정적인 작업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자생적 근대화의 부재가 타율적 근대화= 식민지화를 필연 시켰다고 하는 타율성 사관과 한국을 단순히 중국과 일본의 架橋로서, 몰주체 적으로 인식하는 한국관을 보다 세련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학의 자생적 발생 배경과 서양의 근대 지식의 독창적 수용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가운데서도 18세기 전후로 강조되는 실학의 상당 부분이 바로 서양 과학의 영향 속에서 성장했음을 볼 때 당시 실학자들의 독창적인 서양 과학 수용 노력을 살펴볼 필요성이 생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근거해서 여기서는 서양과학이 17,18세기 조선 사상에 미친 영향에 대 해서 살펴보고 개화기의 과학사상 수용에서 독자적인 과학 사상가라고 평가할 만한 홍대용과 독 자적인 과학 사상가라기 보다는 서양과학의 체계적 수용에 앞장섰던 개항 이전의 대표적 선각자 인 최한기의 사상에 국한시켜 한국 근대 과학수용 노력과 그 의의를 고찰해볼 것이다. 또한 한 국인들의 근대화 노력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하여 이웃 일본, 중국의 과학사상 수용과 한국의 그것을 비교하여 한국의 근대화를 늦추었던 실학기 서구과학 수용의 문제점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것을 총괄해서 살펴볼 때 실학기(17,18세기)의 근대 {{ }} 화 노력은 이후 펼쳐지는 근대사와 함께 연결 지어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도 록 하겠다. II. 몸 말 1.서양 과학의 영향 실학의 발생은 역사적으로 볼 때 역시 성리학적 통치이념을 바탕으로한 조선조의 체제가 16세기를 고비로 하여 여러모로 모순을 드러냄에 따라 그 모순들의 개선,개 혁을 꾀하는 의지에 서 비롯되어 17-19세기에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즉, 임진왜란과 양차의 호란을 계기로 하여 조선조의 전근대적 제 모순이 정치, 경제, 사회등 각 방면으로 급격히 노정 되므로, 그 대응책 의 각성 속에서 다방면으로 새로운 학문의 가능성을 찾고 있었고 이러한 각성 속에서 이뤄진 '改新儒學'이 바로 실학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실학파를 특징짓는 한 가지 중요한 사상은 바로 그들이 갖고 있었던 새로운 과학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새롭고 체제개혁성이 있는 것을 찾던 실학자들에게 때마침 17세기이래 중국에 밀려들고 있던 서양과학은 안성맞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양에서 전해진 새로운 과학 지식을 열심히 받아들여 그들의 사상체계속에 소화하려 힘썼다. 실학을 유교의 테두리 밖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의 과학 사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서양과학은 실학기 개혁 사 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구 과학사상이 실학 사상에 미친 영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地球說은 당시 중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게 만들었고, 실학자들의 관심을 자기 나라로 돌리는 데 기여했다. 이 러한 사상 속에 뚜렷이 나타나 돋보이는 내것에 대한 관심은 바로 서양과학의 지구론에서 자극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일정한 사상의 세계관을 형성시키는 것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연관이라고할 때 실학 사상의 세계관은 유학의 전통적인 자연관을 극복하고 새롭 게 형성된 객관적 자연관에 기초하였고 서양과학(17세기 이후로 본격적으로 수용된)의 이러한 객관적 자연관은 실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구설은 이익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이익은 땅이 둥글다면 지구에는 上下모두 사람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서양인이 처음 자세히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지구 상하에 모두 사람이 살 수 있음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가에 대해 이익은 "地心論" 으로 설명한다. 지구중심을 향해 上下四方에서 모두 몰려들어 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李瀷, <星湖僿說>, 天地門 "地球". }} 지구설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문제가 바로 천하의 중심을 꼭 중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익은 지구설을 바탕으로, 둥근 지구 둘레에 사는 사람들은 각기 자기 가 사는 곳을 제일 높은 곳으로 생각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같은 책, "日出入". }} 따라서 그의 눈에는 중국 이란 나라도 실인즉 큰 땅덩이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今中國者 不過 大地中一片土) {{ .같은 책, "分野". }} 中原을 지배한다고 반듯이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구설의 뜻은 당 시 실학자들에게 값비싼 교훈이었다. 이 교훈으로 부터 일부 지식층, 특히 실학자들은 관심을 자기 나라로 돌릴 수 가 있었다. 즉, 실학 속에서 발견되고 돋보이는 내것에 대한 관심(國學硏 究)은 바로 서양과학의 지구론에서 자극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중세에는 자연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신이 인간을 규제하는 중세적 질서의 틀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자연은 중세적 속박을 벗어나는 해방이 원리였다. 그러나 성리학(新儒學)에 있어 서는 초월적 신에 의하여 인간과 사회가 규제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연 그 자체와 인간 사회를 일체화시킴으로써 자연은 인간의 해방 원리가 아니라 일종의 규제 원리였다. 그러므로 계몽사상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명제로 표현되었으나, 실학에서는 오히려 '자연에서 벗어나 자'는 형태로 전개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무엇보다도 우선 '大學'의 근본 체계에 대한 주자의 팔조목설을 부정하고 格物致知의 이조목과 성의, 정심 이하의 육조목을 분리하여 격물과 성의를, 다시 말하여 물리와 도리, 자연과 당연을 분리시키고 있다. 다산은 자연을 사변적이고 규범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순수 존재로 파악하여 과 학적인 자연관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자연의 물리와 인간 도리의 일체화를 부정하여 자연 의 규제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 그러므로 自然과 人事와의 분리는 근대지향을 위한 실학의 적 극적 노력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정약용은 그의 '技藝論'에서 "인간이 금수와 다른 점은 기술을 갖는데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 .丁若鎔, {輿猶堂全書}一, 詩文集, 第 1集, 第 11券,論,[技藝論]一, 226면. }} 그는 정당하게도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기준을 '기술'에 두었으며, 더욱이 그것은 역사의 발전에 동반하여 중지를 모으고 그 중지를 쌓아올리는 것에 의하여 정교하게 된다고 보 았다. 이러한 시점은 도리로 부터의 물리의 해방의 논리로서 주목되지 않으면 안되고 '性命義 理'편중에 의하여 과학적 발상을 마비시켜 온 전통 유학을 내재적으로 뛰어넘으려고 하는 이성 의 눈 뜸과 근대 지향의 사상적 맹아를 볼 수 있다. 또 기술과 인간과의 관계, 기술과 사회경제 발전과의 관계 및 새로운 기술의 도입 태세를 논한 체계적인 과학기술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서양과학 사상은 이렇듯 당시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실학자들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수용 되었고 그들의 관심을 국내로 돌리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또한 실학자들이 기존의 성리학이 가지고 있던 관념적 자연관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연관으로 극복할 수 있게 하여 그들의 세 계관(과학적)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명말 청초 이후 마테오리치를 비롯한 많은 서양 선교사들은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중국 에 들어와 그의 본래의 목적인 기독교 전파보다는 새로운 서양의 과학기술로 중국에 상당한 영 향을 주었고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서 중국에 새로 수입된 서구과학은 조선 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바로 이때 중국에서 숱하게 나오기 시작한 서양과학 기술서의 한역본은 바로 실 학 속의 과학사상의 바탕이 되었다. 우리 나라에 서양 문물이 제법 들어오기는 1631년(인조 9) 鄭斗源이 명에서 돌아오면서 천 문, 역산, 지리에 관한 한역 서양 과학서 몇 가지와 千里鏡, 自嗚鍾,天文圖, 紅夷砲 등을 얻어 왔을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2. 홍대용과 최한기의 과학사상 17세기에서 19세기초에 이르기까지 한역서와의 접촉 내용은 당시 연행 기록을 통하여 짐작 할 수 있다. {{ .박성래,{韓國近世의 西歐 科學受容},[東方學志] 第 20集(1978), 259-263. 에는 연행기록을 중심으로 서 양과학 사상과의 접촉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 이러한 연행 기록을 살펴보면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명말 청초 이래 19세기까지 수많은 한국인이 중국에 다녀왔으나 그들 가운데 서학, 특히 서양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둘째, 18세기 후반에 걸쳐 일부 학자(홍대용 이나 서호수)가 서양과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이때에도 이것이 지배적인 태도로 까지 는 발전되지는 못하였다. 셋째, 1801년 신유사옥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서학에 대한 접촉이 억 제되었기 때문에 연행자들의 서양과학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생각된다. {{ .같은 책, 263-264. }} 17세기 이후 우리 나라에서 계속된 서양과학에 대한 열성은 실학자를 비롯한 일부 학자 사 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실학기 한국에 서양과학이 어떻 게 흡수되어 독자적으로 발전되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연행록'기록보다는 대표적 학자들 의 개별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익의 영향을 받은 실학자로서 서양과학 수 용에 남다른 열의를 가지고 기여하여 개화기 과학사상에서 독자적인 과학사상가라고 평가할 만 한 홍대용과 그와는 달리 독자적인 과학사상가 라기 보다는 서양과학의 체계적 수용에 앞장섰던 개항 이전의 대표적 선각자인 최한기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국의 근대과학 수용 노력을 살펴보겠 다. 홍대용(1731-17830은 서양과학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했다는 점에서 이익의 전통을 계승, 확대해 나간 실학자였다. 한국의 실학에 미친 서양과학의 영향은 이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기 시작하여, 최한기(1803-1879)에서 그 절정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 .같은 책, 257-292. }} 이 두 학자 사이에 활약한 많은 실학자들 가운데에도 특히 과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홍대용이 며 그의 사상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것은 당시의 다른 학자들과는 다른 그의 과학사상이다. 그 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까지의 어느 학자보다 체계적이며, 또 그것은 당시의 서양 과학에 대해 그가 가졌던 누구보다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하고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 11. 박성래,{홍대용의 과학사상},[韓國學報] 23,p.161 }} 홍대용의 과학사상은 1만 2천 자로 쓰여진 그의 '의산문답' 속에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 다. '의산문답'은 虛子와 實翁이란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대부분이 자연 철 학 또는 과학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나 그와 관련하여 다른 문제에도 논평이 가해지고 있다. 그 는 '의산문답'에서 여러 차례 서양과학의 특징이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을 살펴보자. 홍대용의 서양과학에 대한 인식은 놀라운 바가 있다. 그는 서양과학이 수학과 관찰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동양 과학 보다 앞서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요즘 과학사가들이 말하고 있 는 바로 그 문제 -서양 근대 과학의 특성- 을 그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서양 천문학 은 중국에는 없는 뛰어난 것임을 인정한 홍대용은 그것이 산수에 바탕을 두고 의기를 참고로 하 여 온갖 모양과 현상을 관측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 洪大容, <湛軒燕記> "劉鮑問答". }} 그가 '籌解需用'을 지어 수학의 연구에 관심을 표했고, 龍水閣이란 천문대를 자기 집안에 세워 천문 의기를 갖추었던 것은 바로 수학과 관측 기구가 서양 천문학의 바탕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또 이.기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고를 살피면, 당시 자연 과학에 보다. 관심을 보인 실학자 들이 대체적으로 주기적 입장을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홍대용도 누구보다도 더 유물론적인 경향 을 보인 주기론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는 전통적인 주기론 입장에 자연법으로서의 理를 덧붙 임으로써 이기론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시켰다. {{ . 洪大容,[湛軒書] 內集 1; 2b "答徐成之論心說". }} 홍대용은 물질 세계를 형성해주고 또 변화 시켜주는 본질을 氣로 보고, 氣가 움직이는 법칙성을 理라고 해석했다. 그의 이와같은 理氣論 은 新儒學이 갖고 있는 理의 뜻을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합리성의 '理'에 한 걸음 더 접근 시 켜준 것으로 판단된다. 즉, 홍대용은 전통적인 理의 개념에서 윤리성을 제거해 그만큼 그의 자 연관은 근대적인 합리주의에 근접하는 철학적 바탕을 마련했다. 홍대용의 陰陽과 五行에 관한 철학은 전통적인 陰陽說에 대해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 으면서도 이를 수정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음양이란 氣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 고, 단지 햇볕의 강약을 표시하는 말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태도는 신유학의 전통을 벗어 난 것이다. 주희는 陰陽이란 氣이며 五行은 質이기 때문이다 {{ . 朱子語類 卷 一, 馮友蘭, 中國哲學史 (1970) p.908인용. }} 고 했으나 홍대용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양에 얽매이고 의리에 빠져 天道(천문학)를 밝히지 못한 것은 先儒의 잘못이 라고 비판하고 있다. {{ . 洪大容 湛軒書 內集補遺 4; 27b "의산문답" }} 또 그는 동양의 전통적 物質觀인 오행에 대해서도 비판의 눈을 돌리고 있다. 그는 만물의 총괄적인 성분으로 몇 가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오행설을 부인했 다. 홍대용은 서양 선교사들이 소개한 4元素說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 확실하다. 마테오리치 가 1595년에 써내고 17세기이래 우리 나라에도 널리 읽혀진 '天主實義'를 비롯한 많은 책들이 '四行'또는 '四元行'이란 명칭 아래 서양의 4원소설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 . 마테오리치,[天主實義] (서울: 韓國敎會史 硏究所, 1972 영인본),上, 6a,32a-b,48b. 乂儒略(J.Aleni) [西學凡](1623),5a. }} 그러나 홍대용이 경우에는 전통적인 5행도 서양의 4원소설도 모두 적당치 않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홍대용의 물질관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그는 서양의 4원소설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상하 구조를 가진 원소설을 갖은 것으로 파악된다. 즉, '地는 萬物의 母이며, 日은 萬物의 父이고, 天이 萬物의 祖이다.'라고 주장하여 火,水, 土의 세 원소를 그의 氣, 質 개념과 연결시키고 있 다. 홍대용은 독창적으로 지전설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지만 지전설 못지않게 흥미있는 것 이 그의 引力說이다. 둥근 지구 표면 위에 사는 인간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홍대용은 지구 둘레에 중심으로 향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이것을 '上下之勢'라 고 했다. 이는 이익의 '地心論'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익은 지구는 정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무엇이 지구 중심으로 몰려드는 것인지를 밝히지 못했다. 이점에서 홍대용의 지 전설은 바로 지구가 무서운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 둘레의 氣가 그에 따라 회전하면서 지구 중심을 향해 밀려들어 地心으로 쏠리는 힘을 만들어 준다고 설명할 수가 있었다. {{ . 洪大容 [湛軒書] 內集補類 4; 20b-21a "의산문답" }} 엄밀히 얘기하자면 이것은 뉴튼의 만류인력 개념과는 크게 다른 생각이다. 그보다는 아리 스토텔레스 적인 물질관이 그 바닥에 깔려 있어, 上下之勢를 강물이 낭떨어지에 떨어져 소용돌 이를 일으키는 것에 비유한 설명 {{ .같은 곳 4; 21b }} 에서는 뉴튼과 같은 시대에 인력 현상을 우주 속의 소용돌 이(Vortex)현상으로 설명한 데카르트의 생각을 연상케 해준다. 그의 인력 설명에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생각과 데카르트의 사상이 마구 섞여 있지 않은가 하는 인상이 있을 뿐이다. 지구 부근의 우주를 보는 태도는 5행성이 모두 태양 둘레를 돌고 그 태양과 달이 지구 둘 레를 돈다는 것으로 티코 브라헤의 우주관과 비슷하다. 그러나 티코가 본질적으로 유한한 우주 를 버리지 못하고 지구를 유한 우주의 중심으로 보려 한 데 반해 홍대용은 우주를 무한한 것으 로 만들어 버려 우주의 중심이란 것 자체를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근본적인 차이 가 있다. 또 티코가 지구를 부동의 것으로 인식한 데 반해 홍대용은 여기에 자전운동을 준 것 이 이와 관련된 큰 차이다. 홍대용은 자연 현상의 여러 측면에 새로운 사상을 도입한 독창적인 과학 사상가 였다고 평 가할 수 있다. 그의 독창성은 단순히 지전설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닌 매우 폭넓은 것이었다. 물론 그의 독창성이 그가 살던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홍대용의 독창적인 사상은 낡은 전통에 큰 변화의 싹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연철학을 사회 사상으로까지 확대시켜 지전설 등을 바탕으로 시작된 그의 상대주의 적 자연관은 점차 확대되어 중국 중심적 세계관을 부정하게 만들고 화이론을 뛰어넘어서 급기아는 인간 중심적인 편견에서 빠져나가도록 도왔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최한기(1803-1877 혹은 1879)는 홍대용과 같은 독자적인 과학사상가 라기 보다는 서양과학 의 체계적 수용에 앞장섰던 선각자라고 볼 수 있다. 이익, 홍대용, 정약용에 이어 그 후 최한기 (惠岡)는 그들보다 한층 독특한 과학기술 사상을 전개하였다. 그는 唯氣哲學과 利用厚生을 토대 로 하여 자연을 순수한 객관적인 氣로 파악하고 그 氣는 器로써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서 양의 電氣, 蒸氣器官도 자연의 氣를 기술로써 이용하는데 불과하다고 보았다. 더구나 그는 氣를 조화적인 유기체적 존재로만 파악하지 않고 기계적인 입자적 존재로도 파악해 나가고 있다. 그의 경험주의적 철학은 그의 과학사상에 크게 영향을 주었는데 "종을 치면 소리가 난다는 것을 만일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다면, 종을 치기도 전에 치면 소리가 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 崔漢綺 人政 卷11, 17張 }} 라고 말하여 선천적인 지식을 본래부터 가지고 있다는 이론은 인정할 수 없다는 그의 경험주의적 철학정신은 전통적인 유학사상을 실증적 과학적인 근대화와 관련시켜 새로운 태도로 발전시킴으로써 그 근본정신을 시대적으로 살피려 하였다. 그리하여 서양의 과 학기술을 도입, 섭취할 정신적 자세와 기본적인 철학적 이론을 천명하였다고 하겠다. 최한기의 과학사상중 대표적인 것을 또 들자면 推測, 수학적 操作, 證驗,등이 있다. 사람은 그의 경험한 바를 기초로 하여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思性한다고 최한기는 말한다. {{ . 崔漢綺 推測錄 卷1, 6張. }} 이 른바 聞一知十 이라든가. 한 잎의 낙엽으로써 천하의 가을을 안다고 하는 식으로 그 초기를 듣 고 그 종말을 아는데 굳이 같은 것을 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혜강은 推는 언제나 이미 얻 어진 경험을 기초로 하는 것이니 만큼 全稱命題 일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을 推로 하는 測도 全稱 일 수 없으니 그 推의 전부가 그대로 참일 수는 없다고 하여 경험의 不可缺함을 강조하였다. {{ . 같은 책 卷1, 5張 }} 이는 경험주의에 있어서의 상대적인 蓋然性에 상치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그는 한갓 推만하 고 測하는 바가 없으면 새로운 擴充을 꾀할 수 없고, 한갓 測만하고 推하는 바가 없으면 어찌 虛妄되지 않으랴. 반듯이 推測은 相補되어야 그 옳음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 . 同上 }} 수학에 대해서도 그는 '數는 氣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物件은 氣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나, 數가 아니면 그 氣를 사용할 수 없고, 氣가 아니면 萬物을 窮格할 수 없다.' {{ .神氣通 卷1, 17-18張. }} 고 말하고 있다. 惠岡에 의하면 이런 수학에 능한 자는 천하의 스승이 될 것이요 尊師의 列에 참여하여도 좋을 것이라고 하여, 혜강 스스로 수학 연구에 치력한 나머지 37세에 '儀象理數',48세에 '習算律筏'(5 권 2책)이라는 저술을 한 바 있다. 혜강은 종래의 실학사상을 철저화 하였고 그의 태도는 현대의 논리적 실증주의 (Logical Positivism) 내지 논리적 경험주의 (Logical Empiricism)가 검증 불가능한 문장을 무의미한 것이 라 하여 일축하는 태도와 그 근본적인 요구에 있어서 일맥 상통한다고 하겠다. 실로 혜강은 그 당시의 과학 지식을 토대로 과학 철학적인 사상의 새로운 수립을 위하여 획기적인 훌륭한 노력 을 아끼지 않았다. 이조 말기의 국사 다난하던 때에 혜강의 이러한 사상이 제대로 계승 발전되지 못하였음이 아쉽지만 한국의 정신적인 근대화가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미 초미의 긴급한 과제로서 원리적인 깊이에 있어서 다루어졌음을 짐작하기에 족하다. III. 맺 음 말 19세기 이전의 서구과학 수용노력은 그 뒤 계속적인 근대화 건설에 필요한 잠재력을 얼마 나 길러 가지고 있었던 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런 연구를 통해 1800년 이전의 사 회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서양과학에 대응했으며, 그 결과로 마련된 잠재력은 얼마 만큼이었고 19세기 이후의 근대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로 서양과학이 17,18세기 조선 사상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고 대표적 실학 사상가이면서 과학 사 상가 라고 할 수 있는 홍대용과 최한기의 과학사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서양과학 수용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얼마만큼 창의력 있게 소화해 내어 발전 시켰 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 받침해 줄 사회, 경제, 문화적 호조건을 요구한다. 이에 한국.중국.일본의 과학사상 수용의 사회 적 배경을 비교하여 살펴보자. 코페르니쿠스의 지전설이 출판된 해로, 서양에서는 과학혁명의 원년으로 삼는 1543년에 일 본은 포르투갈선이 구주 남쪽에 표착하여 철포등의 서양문물을 전해 주는 것을 계기로 서양과학 기술과 접촉하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도 서양문물과 접촉하고 그것은 중국의 지식인들 에게 지적인 충격을 가져다주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을 세우는 등 주자학 적 이념 체계가 완전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일본은 16세기 후반에, 중국은 17세기 벽두에 예수회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으나 한 국은 서양문물과의 접촉이 현저하게 늦었고 그나마 그 범위는 좁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뤄졌 다. 또한 17세기 초엽부터 중국 사행을 통해 예수회 계통이 책들이 조선의 일부 지식인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하였으나 이들 서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진 흔적은 별로 없다. 반면 일본은 에도 시대에 접어들어 중국의 학문이 매우 융성해지고 중국의 수학서 등의 여 러 가지가 전해져 그것에 큰 자극을 받았고, 에도시대의 태평스런 날이 계속되자 학문이 민중에 게 보급되어 그것이 전국 각지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武士, 町人, 百姓 등)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에도시대의 학문의 중심은 원래 중국의 그것이었으나 과학기술 면에서는 그 연구가 진척됨에 따 라 중국학문에 많은 결함이 있음이 지적되고 그것의 보완을 위해 서양 과학기술 관련 서적을 번 역함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축적시켰다. 유럽과학을 배운 것은 대중(하급무사,明主를 중심으로한 町人, 농민)이었고 그들은 대단한 노력으로 네델란드어를 익히고 적극적으로 유럽의 과학을 일본에 들여오고자 했다. 중국에서는 17세기경 부터 유럽과학 특히 천문학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수입되었다. 유럽과 학을 전한 것은 예수회 선교사이며, 중국 측에서 이것을 받아들인 것은 궁정을 중심으로 한 관 료였다. 그들은 스스로 배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과학의 수입도 매우 불충분하게 끝났 다. 한국은 서구와 만나게된 시기도 늦고, 그 수용방법에 있어서도 중국 일본과 달리 시종 간 접성을 유지해 왔고 이것은 서양과학이 한국에 수용되고 흡수, 발전하는 데에 많은 악영향을 끼 쳤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여기서는 결론적으로 실학사상과 근대사에서 제기되는 타율성 사관의 문제점을 한 번 지적해 보고자 한다. 한국은 자생적 근대화의 부재로 인해 타율적인 근대화=식민지화로의 전환 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타율성 사관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실학 발흥의 사회적 배경 하에서 선택적으로, 필요에 의해 수용된 서양과학이 애당초 그것을 수용하게 한 장본인인 실학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가해 근대화로의 발전 잠재력을 엄연히 키워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볼 때 그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자본주의 열강의 접근을 목전에 둔 1801 년을 고비로 하여 학파로서의 실학은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개별적인 학자들의 서재 안에서 간 신히 명맥을 이어갔고 따라서 실학 속의 근대적 성격이 가장 큰 서양과학 사상도 최한기 이후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과학 사상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 능성이 폐쇄 당하는 원인은 쇄국주의와 서학 탄압운동이 가장 켰다고 볼 수 있다. # 참고 도서 # <논 문> 박성래,"서구과학과 한국의 근대화",{한국과학사학회지}, 제 5권 제1호, 1983. ------,"한.중.일의 서양과학 수용",{한국과학사학회지}, 제 3권 제1호, 1981. ------,"한국 근대의 서구과학 수용",{東方學志}, 제 20집, 1978. ------,"홍대용의 과학사상",{韓國學報}, 23. ------,"한국 근세의 서구과학 수용",{東方學志}, 20(1978) pp.264-267. ------,"정약용의 과학사상",{다산학보}, 제1집, 1978. 김기협,"조선시대에 있어서의 한일 과학기술교류",{한국과학사학회지}, 제5권 제1호, 1983. ------,"Western Studies and Confucian Responses in 18th Century Korea",{ Journal of Korean History of Science Society}, Vol.9, No.1, 1987. ------,"Development of Shilhak and Western Studies in Eighteenth Century Korea", {한국과학사학회지},제11권 제1호, 1989. 김용운,"조선후기의 계몽사상과 수학",{ 한국과학사학회지} , 제5권 제1호, 1983. ------,"조선시대 산학사상",{한국과학사학회지}, 제5권 제1호, 1983. <단행본> 김용섭,[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1.2, 일조각, 1970,1971. 강만길,[조선 후기 상업 자본의 발달], 고려대 출판부, 1973. 송찬식,[이조 후기 수공업에 관한 연구], 韓國 文化 硏究所, 1973. 정구복,[반계 유형원의 사회 개혁 사상], 歷史學報 45, 1970,51면. 박종홍,[최한기의 과학적인 철학사상]전집 5권, pp.303-350 및 p.376. 姜在彦,[한국의 개화사상], 比峰출판사, 1984. 한국철학회편,[한국철학사](下), 동명사. 1986. 趙明基 外33人箸,[한국사상의 심층연구], 宇石출판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