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 이영수 (DJUNA ) [창작단편] 미메시스 02/20 20:15 256 line 미메시스 1. 나는 조지 타운의 어느 중국 영화 상영관에서 그를 발견했다. 영화관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곳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 다. 모두들 이제 거의 폐허가 된 건물이 제공하는 어둠을 이용 할 뿐이다. 그들은 밀매자를 찾아온 마약 중독자일 수도 있고, 라마단의 금기를 깨러 들어온 의지약한 회교도일 수도 있으며, 풍기 문란죄에 걸리지 않으려고 들어온 연인들일 수도 있다. 무 엇 때문에 들어왔든지 간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 지 않는다. 그것은 몇 년 전 부터 암묵적으로 지켜져온 규칙이 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이 투명한 세상으로부터 그들을 숨겨주 는 작은 피난처를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아까 말했던 그 남자는 자그마한 말레이 여자와 함께 발 코니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서툰 영어로 무언가 열심히 떠 들고 있었고, 여자는 흥미없이 듣고 있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그 남자가 치른 돈값을 하느라 앉아있을 뿐 그에 대해 아무런 흥미가 없음이 분명했다. 나는 그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영화관 을 빠져나왔다. 나는 영화관 옆에 기우뚱 서있는 전화 부스에 들어갔다. 전화 부스 안의 냄새는 정말 지독했다. 바닥과 벽에는 말라붙은 구토 물들이 청소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비교적 깨끗한 바닥을 골라 딛고 서서,내가 소속되어 있는 서울의 보험회사에 전화했다. 내 선임자는 마침 자리를 뜨고 없었다. 나는 전화기 아래에 달려 있는 키보드를 꺼내 그에게 문자 메세지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부스에서 나오자 페낭의 습한 공기마저도 맑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전화 부스 안의 냄새는 정말 지독했다. 나 는 영화관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그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영화관을 세바퀴 째 돌았을 때,그와 그의 파트너가 나왔다. 아니,그 여자는 이미 그의 파트너가 아니었다. 그 여자는 그에 게 삿대질을 해대며 유창한 영어로 욕을 퍼붓고 있었다. 남자도 맞서려고 했으나 그의 어휘가 아무래도 짧았다. 마침내 그의 주 먹이 여자의 얼굴로 날아갔다. 여자는 비명을 질렀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꼴들을 보아하니 모두들 남의 얼굴에 한 방 날리지 못해 몸들이 근질근질해 보였다. 여자는 터진 자기 입술을 가리키고 고함을 질렀다. "저 개자식이 나를 패죽이려고 했어. 저 돼지같은 코리언이." 코리언이라는 단어가 모여든 사람들을 더 자극했다. 이 나라 에서도 한국 남자들은 일본 남자들만큼이나 인기가 없다. 특히 대영 전자 말레이지아 지사의 파업 사건이 막 끝난 지금은 자기 가 코리언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남자는 도망치 려고 했지만 성난 군중들의 팔들이 그의 몸을 붙들었고 곧 주먹 과 각목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때쯤해서 지나가는 순찰 로봇에게 연락할 수도 있었다. 그 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그와 친해질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 이다. 하지만 난 군중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내버려두고 자리를 떴다. 내가 그의 남자다움이 무참히 깨지는 것을 보았다 는 사실을 그가 안다면 일은 힘들어 질 수도 있다. 그는 한참 만에야 영화관 골목에서 기어나왔다. 그렇게 무참 하게 얻어터진 셈치고는 꽤 멀쩡해보였다. 그는 옷을 툭툭 털더 니 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길을 걸어갔다. 밝은 곳 에 나와보니 그는 사진에서보다 더 구질구질해 보였다. 사흘 동 안 면도를 하지 않은 것처럼 수염이 턱과 볼에 듬성듬성 자라있 었고,옷에는 기름 얼룩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는 길을 걸어가면 서 가끔가다 입에 괸 검붉은 액체를 포석에 탁탁 뱉었다. 지나 가던 순찰 로봇이 그에게 주의를 주자 그는 한국어로 그 선량한 기계에게 욕을 퍼부었다. 고맙게도 그것은 말레이어와 영어 밖 에 몰랐다. 2. 그는 차이나 타운 구석에 위치한 헐어빠진 영국식 건물의 2층 에서 살았다. 나는 그 맞은편 방을 세내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는 겉보기에 전형적인 외국인 룸펜이었다. 말레이 지아는 15년 전 부터 출입국 절차를 대폭 완화했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갈데없는 건달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아무도 그들 이 무슨 일을 하는 지 신경쓰지 않았다. 가끔가다 경찰들이 찾 아와 그들 중 한 명의 시체를 끌고 나갔다. 내가 나서지 않았다 면 그도 그런 꼴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나는 지금도 회사에 얽매어 말레이지아의 어딘가를 떠돌아 다니고 있을 것이 고, 지금처럼 인스부르크의 이 작은 카페 안에서 한가롭게 내 모험담을 당신에게 들려주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틀의 시간을 주었다. 사흘째 되는 날 저 녁, 나는 드디어 그에게 접근했다. 파사르 말람의 엄청난 소음 속에서는 대포 소리도 파리 날개 소리 만큼이나 작게 들린다. 그는 나에게 뭐라고 그랬냐고 되물었다. "한국인이냐구요!" 나는 다시 한 번 외쳤다. "당신도 한국인입니까?" 그가 외쳤다. 나는 그렇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고 난처하다는 듯이 어깨 를 으쓱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어떤 중국인 남자가 계속 날 추근거리고 있어요." 그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진짜 어떤 중국인 남자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400링 깃을 주고 그 중국인을고용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 뿐이 다. 그는 걱정말라고 말하더니 그 중국인 남자에게 다가갔다. 실 랑이가 시작되었다. 중국 남자는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으나 그 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중국 남자는 멱살이 잡힌 채 잠시 공 중에 떴다가 두 미국인 관광객들에게 열심히 목제 골동품을 팔 고 있는 상인 로봇을 향해 날아갔다. 꽝하는 소리와 함께 판매 대가 부서지고 작은 나무 호랑이들이 와르르 땅에 쏟아졌다. 상 인 로봇은 중국인을 밀쳐내고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가발이 벗 겨져 플라스틱제 맨머리가드러났다. "이런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 선생." 로봇은 암기해 둔 장사 문구 이외의 것들을 말할 때 사용하는 건조하고 어색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로봇은 다시 한 번 판매대로 나가 떨어졌다. 로봇의 목에서 타닥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한 번 꿈틀하더니 조용해 졌다. 엄연한 범죄행위였으나 구경하고 있던 관광객들 중 아무 도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로봇은 기계 에 불과했다. 사람에게 건방지게 대들었으니 저꼴을 당해도 쌌 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군요. 곧 경찰들이 몰려 올 겁 니다. "그는 내 팔을 잡고 걸음을 서둘렀다. 나는 진열장에 반 사된 중국인의 얼굴을 흘낏 훔쳐보았다. 코와 입에서 피가 흐르 고 있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의 치료비까지 추가로 지불하 게 생겼다. "여자 혼자서 여행하는 건 위험해요. 어디에 머물고 계시죠? 제가 모셔다 드리죠." 그가 말했다. "아직 호텔을 잡지 못했어요. 저녁도 굶었고요." 나는 될 수 있는 한 불쌍해보이려고 노력하며 대답했다. 나는 원래 체중 미 달의 말라깽이인데다가 그날의 연기를 위해 아주 구차스런 옷을 걸치고 있었다. 내가 상대하는 친구들의 대부분은 이런 모습에 쉽게 넘어갔다. 고맙게도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내 팔을 잡아끌고 야시장을 나왔다. 나가는 동안 그는 나에게 이름을 물 었다. 나는 내 패스포드에 적혀있는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 도 그의 하숙집 아줌마가 알고 있는 그의 이름을 댔다. 그는 나를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에 데려갔다. 그는 카레 요 리를 시켰고 나는 그것에 허겁지겁 덤벼들었다. 그것은 엄청나 게 매웠다. 나는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물을 들이켰다. 최근 이런 카레 전문점들은 외국인 광광객들을 위해 음식의 매 운 정도를 별로 표시하고 있다. 그 악당이 시킨 것은 최고점인 별 넷을 받은 지독한 것이었다. 메뉴를 보고 일부러 그랬었는지 당연한 실수였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여자처럼 굴었다. 지금의 나에 익숙해져 있는 당신같은 사람이 그 꼴을 보았다면 배꼽을 잡았을 것이다. 50년 대 헐리우드 2류 여배우들의 남자들에게 교태부리는 꼬락서니들을 상상하면 그때의 내 행동이 얼마나 우 스꽝스러운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연기하는 남자의 수준이 대충 그정도였다. 나는 그의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들을 참을성있게 들어주었고, 가끔 튀어나오는 유치한 모험담 사이사이에 감탄사도 넣어주며 그의 남성다움에 대한 환상을 부풀렸다. 그의 말은 점점 많아지 고 허풍도 커졌다. 마침내 그는 내가 그의 터프한 매력에 완전 히 매료당했다고 믿고 말았다. 고마워라,그 말레이지아 여자는 그가 이 곳에서 사귄 첫 여자였나보다. 아직 그는 여자들에게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저어, 특별히 가실 데가 없다면 저희 집에 좀 머물렀다 가시 겠어요?" 그는 마침내 말을 꺼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 를 까딱였다. 그는 내 가방을 들더니 밖으로 나가 택시를 불렀 다. 조그만 무인 택시가 우리를 그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내리 기 전에 나는 주머니에서 단추만한 녹음기를 꺼내 의자 밑에 붙 였다. 천에 하나 내가 더 이상 회사와 연락을 하지 못한다 하더 라도 24시간이 지나면 녹음기에 달린 경보기가 작동될 것이고 택시 회사는 그 녹음기를 경찰이나 페낭 주제 한국 영사관에 가 져갈 것이다. 그의 방은 그자신만큼이나 더럽고 지저분했다. 그는 허겁지겁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닐 봉지와 술병을 치웠다. 열려져 있는 화장실 문을 통해 화장실 변기를 보았는데,변기는 그가 치운 술 병 속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 누런 액체로 가득차있었다. 그 안 에서 나오는 알콜 냄새가 방 안을 진동했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대충 쓰레기들이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들어가자 그는 나에 게로 다가왔다. 나는 이미 그의 모든 행위에 대한 만반의 준비 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키스를 했다. 역한 냄새가 입을 통해 들어와 내 후각을 자극했다. 그는 자기에겐 치약이 필요없 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모른 척하고 그의 등을 애 무했다. 그는 꼭 흥분한 것처럼 나를 침대에 쓰러뜨리고 내 몸 을 덮쳤다. 바로 그때 백만 분의 일의 우연이라고 할 만한 일이 일어났 다. 침대의 진동에 옆에 서있던 청동으로 만든 간접 조명 전등 이 우리에게로 쓰러진 것이다. 정말 재수없게도 그것의 모서리 에 난 작은 돌기가 내 손목을 찢고 말았다. "다치지 않았어요?" 그는 놀라서 물었다. 나는 재빨리 손목을 가리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내 손 가락 사이로 상처를 보았고, 그 사이에 드러난 은빛 전선들도 보고 말았다. "더러운 로봇 같으니!" 그는 고함을 지르며 나를 밀쳐냈다. 침대 안에서 조용히 해결하려던 내 계획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 다. 나는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오는 그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내 머리칼을 고정하고 있던 전자침을 뽑아 그의 목에 꽂았다. 3. 경찰관들은 모두 세 명이었다. 라마단이 끝나가는 중이라 모 두 지쳐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는 냄새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모두들 막 저녁의 성찬 중 끌려나온 것이 분명했다. 문 밖에서 는 하숙집 아줌마가 기자들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저 사람은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어. 소란도 안피우고 방세도 꼬박꼬박 잘 냈단 말이야." 보험회사 직원 둘이 도착했다. 그들은 쓰러져 있는 그의 몸을 들추어 보고 피해정도를 측정하더니 나에게 수표를 끊어주고 돌 아갔다. 침대 안에서 조용히 동력선을 끊는 것 만큼 잘 해내지 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손상이적었고 피해자도 없었으니 나는 보험회사의 손해를 300만 크레디트나 줄여준 것이다. 보너스까 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내 저축에 지금 번 돈 까지 합하면 시민 권을 살 돈은 충분히 된다. "전혀 로봇처럼 보이지 않는군요. 상처에 피도 나는 걸요." 아직도 바닥에 엎어져있는 그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경찰관 중 한 명이 말했다. "겉모습만 같아 가지고는 사람과 비슷하게 보이지 않아요. 안 의 근육이나 채액까지 모방해야만 그럴 듯해 보인답니다. 백화 점의 마네킹들이 얼마나 어색하게 움직이는 지 생각해보세요." 내가 대답했다. 응급 치료기로 손의 합선을 손보는 중이었기 때 문에 더이상 방해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여자는 계속 말을 걸 었다. "하지만 과연 저럴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저 로봇은 단지 인 간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게 그렇게 큰 죄가 되 는 건가요?" "그것 뿐이라면 그렇게 비싼 현상금을 걸고 그를 찾지 않았겠 지요.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에요. 저런 종류의 안드로이드들은 단순히 자유롭기를 갈구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로봇이라는 사실 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인간을 모방하죠. 인간들의 불결함,부정직성,편견,비이성적인 행동,언어의 서투름 같은 것들을 말이에요. 결국은 이성을 침대로 끌여들이기까지 해요.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인간을 모방한다고 하더라도 한계 가 있어요. 어떤 로봇들도 침대 안에서까지 완벽한 인간으로 보 일만큼 인간적이지는 않아요. 아까 내가 해치운 저 기계는 냄새 도 못맡고 타액도 분비해내지 못하는 구식이었으니 금방 로봇이 란 것이 들통나고 말았겠죠. 그렇게 되면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이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 "하지만 당신도 로봇이잖아요!" 그 여자는 어떻게든 내 허점 을 물고 늘어지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난 나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죠. 자 유를 원하다고 회사에서 도망칠 정도로 바보도 아니고요." 나는 대답했다. "대신 자기 동료를 인간들에게 팔아넘기는 대가로 시민권을 살 돈을 벌죠. 아, 당신은 저 불쌍한 친구보다 자기가 훨씬 똑 똑하다고 생각하겠군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 여자는 남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 다. --------------------------말레이지아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 과하며 듀나와 그 일당들이 (그러니 이미 써버렸으니 어이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