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과 문학 이기훈 'pc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적지않게 나돌고 있다. pc가 전문계산이나 그래픽용으로만 쓰이던 시절도 어느덧 지나서 요즘은 각종 멀티미디어로서 혹은 첨단 정보기기로서의 기 능이 오히려 pc의 주된 기능이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pc통신 문화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통신망인 하이텔이 나 천리안의 사용자가 합해서 40만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정말 무시못할 규모와 열성의 새 문화권의 등장인 것이다. 밤 11시가 넘어서 이들 통신망에 접속을 시도하면, '지금은 호 폭주로 사용하실 수 없으니,잠시 후 다시..'라는 메시지가 어김없이 나타난 다. 가족들이 잠들어 전화를 쓰지 않는 시간이면, 어느새 전국의 '통신광'들이 너도나도 심야의 통신광장에 모여드는 것이다. 마치 전국 차원의 문화장날이 매일밤 불야성을 이루 는 모습이랄까. 이렇듯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매체는 우리문화에 다양한 파장을 발생시키고 있는데, 그 민 감한 부분을 문학에서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문화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적어도 문학의 특기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비 록, 아직까지 pc통신이라는 매체가 문학의 전반의 환경으로 인식되는 단계는 아니지만, pc통신문화시대의 글쓰기와 글읽기는 작지만 뚜렷한 변화의 가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의 몇가지를 아래와 같이 이름붙여 관찰해볼 수도 있을것 같다. .'초조한 작가와 편리한 독자 ' 통신망에서는 '작품'의 응답이 말할 나위 없이 빠르다. 즉,'조회수'라는 것이 있어, 자기 가 쓴 글을 도대체 몇사람이나 읽었는지 여실히 생중계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조금이라 도 문제점이 있는 글이면, 어김없이 아마추어들의 가차없는 소감이 올라온다. 게다가, 직 접 이야기방에 초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거나 신랄한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 은,비록 아직 아마추어들간의 풍속도이지만, 무척 신선한 것이다. 기존의 풍토가 몇몇 극소수의 비평가의 권말 서평이나 평론 등이 작품을 둘러싼 의사소통의 대부분이었고, 드 물게 작가와의 대화 등에서 작가와 소수 독자의 어색한 만남이 전부였던 것에 비추어 보 면 아주 혁신적인 변화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글쓰기'에 하나의 큰 제약을 던져주기도 하는데, 작가의 당연한 심정인 많은 조회수를 위해서는 제목도 글도 모두 자극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선 제목 부터 자극적이지 않으면 아무도 보지 않는다. 통신요금에 대한 부담은 차치하고서라도 애 써 느린 화면을 감수하면서 '재미 없는' 글은 읽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선지, 많은 글 들이 -적어도 소설이라면- 신문의 연재소설을 무척이나 닮아 가고 있다. 그 짧은 한 편에 작은 갈등과 의혹,혹은 사건을 일으키고, 다음 편이 읽힐 빌미를 만들어 넣어야 하는 것 이다. 물론, 지명도가 있는 작가의 글이면 좀 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 이외의 글들은 대부분 그런 경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문장도 모두들 짧아지고, 길고 상세한 묘 사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비록, 대부분 전문작가가 아닌 탓도 있지만, 화면 두 세 개에 걸쳐서 이어진 한 인물의 옷차림이나 분위기의 세부묘사 같은 것이 참을성 있게 통신망에 서 읽히기는 힘든 까닭이다. 그래서,소재나 주제면에서도 공포나 기담등의 자극적인 얘기 가 우선적이 되기 쉽고, 잔잔한 문체의 깊은 내면성찰 같은,혹은 심각한 사회의식을 딱딱 하게 다른 문학작품은 아직까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이런 빠른 응답성때문에 글쓴이의 의도가 글을 채 다 쓰기도 전에 중간에서 이리저 리 바뀌는 일마저 생기고 있는데, 이 점은 어찌보면 잘짜인 구성의 작품이 드물어지는 부정적인 영향을 낳기도 한다. . '커서와 종이'- 편리함과 조급함 pc로 글을 쓸때는 아주 편리하다. 언제든지 문장이 마음에 안들때면 다시 가서 가볍게 지우면 된다. 수시로 고치고, 여기서 잘라서 저리로 옮기고, 정말 편리하다. 게다가 다 쓴다음에는 느긋하게 키하나 톡톡 두드리면서 자기가 쓴 글을 이리저리 쳐다보는 것이다. 더구나, 다 쓴글을 여기저기 화일로 보낼 수도 있고, 디스켓 하나면 책 한권 분량을 충분 히 호주머니에 넣어다닐수 있다. 그리고, 출력만 하면 언제든지 최대한 정서된 상태로 깨 끗이 찍혀 나오므로, pc로 쓴글은 보기에도 좋다. 이런 까닭에,많은 전문작가들도 요즈음 은 pc로 집필을 하고 있다 한다. 그러나, pc로 무언가를 쓰거나 읽다보면 어딘지 조급해 지기 마련이다. 화면을 보면 항상 한모퉁이에서 커서가 깜박깜박하면서 뭔가 쓰라고 재촉 을 하는 것이다. 원고지는 아무말 없이 가만히 그냥 펜을 기다리고 있을뿐 재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배라도 한 대 물면서 종이위로 시선을 흐트리고 생각을 하게 되기가 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니터 앞에서는 그게 잘 안되는 것이다. 어쩌면 모니터의 전 자파에 의한 현상일지. 사실 예민한 사람은 한 두시간 pc앞에 앉으면 '멀미'증상을 느끼 기도 하니까. 아니면, 종이로 된 책을 읽어 오고,그리고 책을 눈앞에 둔 채로 생각에 잠 기곤 하던 습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사색의 동반자로서는 컴 퓨터가 조금은 낯선 것일까. 어쨌든 분당 300타를 넘는 빠른 속도로 '채팅'을 하는 세대 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은 당연히 키보드와 모니터 앞에 앉는 것으로 습관지어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 '사이버스페이스'와 새로운 가능성 적어도 pc 통신은 문학에 아주 특이한 소재를 제공해 줄수도 있다. 머지않아 진지한 주 제의 작품에서 컴퓨터 통신망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사색에 잠기는 등장인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올 것이 틀림없다. 인터넷 같은 전지구적인 통신망도 어렵지 않게 연결할 수 있는 요즘인 만큼,한국에 앉아 있는 한 소녀가 멀리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어떤 bbs속을 '거닐며' 실존적인 고민을 하는 것 역시 전혀 어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통신망과 인간을 결합시켜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하는 소설까지도 외국에서 는 이미 나와 있다.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newromancer)'같은 계열의 소설이 나오면 서,cyberspace나 cyberpunk같은 신조어까지 오래전에 등장해있다. 통신망속에서의 인간의 만남과 대화가 실제의 생활 못지 않게 현실감을 지니는 시점이 점차 다가오고 있는 것이 다.이런 점에서는 과학소설같은 쟝르는 보다 빠른 적응을 보이고 있지만,여타 쟝르도 점 차 적지않게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다. .' 민감한 광고의 장' 최근에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영원한 제국'은 pc통신 망의 작은 위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작품은 각각 많은 매체로 출판사의 자체 광고 도 나갔지만, 특이하게도 전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통신망을 따라 그 소문이 많이 퍼져나 갔다. 즉, 게시판 상에서 토론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자발적인 것이었다. '무궁화 꽃 이..'의 이휘소 박사에 대한 사실성 문제에서부터 핵문제까지, 그리고 '영원한 제국'의 역사적 사실성과 작가의 역사관등이 역사관련 동우회 참여 회원에서 부터 전혀 다른일을 하는 개인들 까지 적지 않게 문제 제기가 되었다. 하이텔의 경우 이휘소 박사와 관련해서 토론게시판에서 토의 안건으로 한동안 집중적으로 얘기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그 토 론의 조회수와 광고의 효과를 아직 직접 관련을 짓지는 않더라도 통신문화의 광고성에 대 한 큰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게시판상의 폭발적인 인기끝에 출판된 '퇴마록 '이나 '스핑크스의 저주'등은 새삼 신문에 광고가 될 필요가 없는 정도 이다. 이미 그 글 을 흥미있게 on-line 상에서 감탄하면서 읽은 통신광들이 여기저기에서 걸어다니는 광고 탑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들어본 몇가지 현상들은 아직은 크고 격렬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우리시대 의 '글쓰기와 글읽기'에 조금씩 점차 영향을 확대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다. 그리고, 그 것이 시작되고 있는 90년대가 하나의 분기점이라 기록되어 훗날의 국문학 교실에서 강 의 되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해본다. 아뭏든, 우리시대의 문학이 새로운 매체와 더불어 변 화를 갖는 것은 적어도 독자에게는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