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 강물을 따라서 퍼얼은 사야와 나란히 앉아 버섯이 우거져 있는 강가를 따라 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면에서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들판에서는 여기저기에 붉은 먼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뗏목들은 일행의 남녀들을 태우고 물살에 흔들리면 서 불안정하게 빠른 속도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8킬로쯤 내려오자, 붉은 말불버섯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신 딴 종류의 버섯들이 우거져 있었다. 곰팡이가 잡초처럼 땅을 덮고 있 었다. 머리가 둥근 버섯과,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나무와 같 은 버섯들이 보이기도 했다. 무서운 거미도 한번 강가에 모습을 나타 냈다. 종일토록 강을 내려가는 사이에, 죽음의 붉은 들판 근처에서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던 곤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과 잡자리가 머리 위로 날아다녔다. 10센티쯤 되는 모기가 나타났을 때는 몽둥이로 쫓을 수밖에 없었다. 가지각색의 빛갈을 띤 파리들도 날아다녔다. 거대한 나비가, 열기가 오르고 있는 땅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주위는 점점 밝아져 갔다. 뗏목이 흘러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강가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퍼얼 일행은 갖고 온 식량을 먹고 강물을 떠마셨다. 오후가 되자 강가는 멀어졌고, 강물의 흐름은 조용했다. 강은 큰 늪 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는 끈임없는 무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 다. 강 밑의 진흙이 검어짐에 따라 강물도 깊어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 지 푸른 빛갈을 한 것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이 버섯의 세계에 서, 양뱌추를 비롯한 얼마 안 되는 식물들과 함께 살아남은 수련 잎이 었다. 직경이 4미터나 되어 푸른 이파리 하나에만도 퍼얼 일행 모두가 올라 탈 수 잇을 것 같았다. 10에이커도 넘는 넓은 수면은 거의 수련 잎으로 덮혀 있었다. 퍼얼 일행은 그 사이로 난 좁은 물길을 누비며 지나갔다. 여기저기 에 백합처럼 희푸른 커다란 꽃이 피어 있었다. 세 사나이가 그 꽃 속 에 들어가 숨을 수 있을 만큼 큰 꽃이었다. 꽃 향기가 짙게 풍겼다. 멀리서 울려오던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어느덧 나직한 울부짖음 소리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양쪽 늪 언저리에서 들려 오는 것 같았 다. 이 늪에 살고 있는, 길이가 3미터나 되는 개구리의 울음 소리였 다. 이윽고 퍼얼 일행은, 늪 가장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 는 푸른 빛갈의 거대한 괴물을 볼 수 있었다. 그 괴물은 입을 크게 벌 리고 울부짖고 있었다. 10센티쯤 되는 작은 하루살이들이 수면 위를 날고, 나비가 거울 같은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고 있었다. 일행은 처음으로 보는 기묘한 것들을 정신 없이 바라보았다. 강물이 갈라져 나가고, 다시 몇 개의 줄기로 갈라지고 있는 이곳에는 모두가 낯선 것뿐이었다. 버섯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곰팡이가 보 였다. 그리고 수면 위에 10미터 정도의 나무 줄기 같은 것이 우거져 있었다. 그것은 부들(부들과에 속하는 다년초의 일종)이었다. 퍼얼들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눈여겨 보며 계속 물줄기를 따라 흘러 내려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이제 몇 갈래로 나누어졌던 물줄기가 합류하 기 시작했다. 수면에 엷게 떠돌고 있는 안개 사이로 낮은 언덕이 보였 다. 그리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산 중턱이 보였지만, 그 산의 높이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짙은 구름에 싸여 보이지 않았 때문이다. 어둠이 오기 전에 뗏목은 물줄기가 소용돌이 치는 곳을 지나고 있었 는데, 깍아지른 듯한 양쪽 언덕 위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가 않았다. 이윽고 산은 멀어지고, 붉은 말불버섯이 하나도 없는 계곡이 나타나 기 시작했다. 그리고 뗏목은 강가에 닿았다. 일행은 어둡기 전에 뭍에 오를 수 있 었다. 이곳에는 먹을 것이 풍부했다. 그러나 살펴볼 틈도 없이 어둠이 다가왔다. 퍼얼 일행은 버섯 숲속에 숨어서 아침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 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밤의 소리는 모두 흔히 듣던 소리들이었다. 귀뚜라미 소리가 가장 요란했으며, 큰 개똥벌레가 여기저기서 날고 있 어 커다란 달팽이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그들은, 몇 주일 전 같았다면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대담해 져서 새로운 영토를 탐험했다. 계곡은 그 끝에서 다른 늪으로 이어져 있었으며, 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늪의 저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 다. 땅 위에 큰 뚜껑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것이 거미집이라는 것 을 알았지만, 그것을 처치할 수 있게 된 것은 후일의 일이었다. 모두가 빠른 속도로 영리해지고 있었지만, 아직 생각해 내는 일은 퍼얼의 역할이었다. 일행은 모두 그가 좋다고 하는 일은 모두 했으며, 따라서 그 밖의 일은 아무도 해서는 안되었다. 몇 킬로쯤 떨어진 곳에 개미 마을이 있었다. 개미 마을이란 작은 것 이나마 먹을 것이 많은 곳임을 뜻하기도 했다. 계곡에는 거대한 양배 추가 수없이 많았다. 따라서 집 없는 달팽이가 많아, 필요한 때는 언 제든지 잡을 수 있었다. 4미터 이상이나 되는 거대한 사마귀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지만, 그 놈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먹을 수 잇는 버섯은 아 무데나 자라고 있었다. 만일 거미와 사마귀, 또는 육식성의 투구풍뎅이를 피할 수 잇다면, 그리고 위험한 소리에 주의를 귀울인다면, 일행은 이 계곡에서 편안히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흘 째 되는 날, 모두는 겨우 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존 영감은 하루종일 먹기만 했다. 테트와 디크는 개미를 죽이는 방 법에 익숙해졌으며, 퍼얼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것보다도 더 좋은 창 을 찾아 내어 창 쓰는 솜씨를 익혔다. 이곳에는 붉은 말불버섯 같은 것은 자라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먹 을 것이 많았다. 퍼얼 일족에게 잇어, 그 이상의 행복은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마 할 머니조차 전혀 화를 내는 일이 없게 되었다. 사람이 잡혀먹힐 위험이 없이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곳이야말로 낙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통탄할 일이기도 했다. 만족해 버린 상태에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인간이란 욕망과 공포를 통해서 향 상되어 가는 것이다. 붉은 말불버섯에게서 도망쳐 오는 동안 그들은 얼마나 용감했던가... 전날의 겁장이에 비교한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낙원에 도착한 것이다. 먹을 것이 있고,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고 서로 살아 갈 수 있다. 그들은 살아 가며 먹을 것을 손에 넣는 데 있어, 이미 퍼얼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퍼얼을 무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뿔뿔이 헤어지지는 않았다. 가축이나 물고기 모양 집 단을 이루어 살아 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그리고 퍼얼이 곁에 있어 주면 안심하였다. 지금까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퍼얼은 모 두 해결해 주었다. 또다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그가 또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어렵고 시끄러운 일을 할 필요는 없 었다. 퍼얼의 일족은 태평스러운 무기력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내면, 그것이 없어질 때까지 숨어 있었다. 계곡의 어느 장 소에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냈던 것이다. 그들이 행동하는 것은, 아직 경계심을 갖고 있었지만, 먹을 것을 찾 아 나설 때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먹을 것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멀리까지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밖에서 손쉽게 먹을 것을 구해 가지고는 곧 숨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즐거운 생활은 없었으며, 얼마 안 되어 그들은 창과 몽둥이를 갖지 않고 나가는 일까 지 있게 되었다. 그들은 대단히 혜택받은 환경에서는 무력한 생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퍼얼은 노여움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복종해 왔으며, 굽실거리기 조차 했었다. 지금은 아무도 그의 눈치를 보며 굽 실거리지 않게 된 것이다. 사야마저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사야에게는 변화가 일어났다. 퍼 얼이 일행을 이끌고 여행을 할 때 그녀는 퍼얼을 존경하는 눈으로 바 라보았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다른 사나이들과 별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야는 존경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사야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잇는 것을 보고, 자기를 피 한다고 생각했다. 사야는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말을 하지 않 기도 했다. 그러면 퍼얼은 자기가 싫어져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화를 냈다. 그들이 이제 이 계곡으로 온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퍼얼은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그 동기는 아이들 같은 노여움 때문이었다. 그는 일족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나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필요하지도 않고 존경 받지도 못하는 사나이가 되었다. 그는 계획적인 행동은 아니었지만, 일행에게 벌을 주려는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는 아직 창과 몽둥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호화로운 옷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는 일행들이 자기에게 무관심한 것에 화를 내고 있었 다. 그는 계곡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언덕에 이르렀다. 작은 골짜기에 황금거미가 하얗게 반짝이는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퍼얼은 그 거미를 저주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거미를 창으로 꿰 뚫어 죽일 수도 있었다. 사마귀도 보았고, 그놈의 알이 들어 있는 거 대한 나뭇잎 같은 주머니도 보았다. 그는 둥그런 고치에 감싸여 있는 모충을 보았지만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주위 깊게 살펴 보았다. 그리고 힘들여 고치의 비잔실을 풀어 나갔다. 호기심으로 몇 미터쯤 풀어본 것이다. 잘 생각했더라면, 퍼얼은 그 실로 거미줄처럼 그물을 만들 수 잇다 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이용해서, 거꾸로 거미를 얽 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행에게 벌 주는 일만을 생각했으며, 그래서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는 1 미터 이상의 사마귀를 만났다. 사마귀는 그가 곁으로 다가오 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싸우지 않고 도망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창은, 이렇게 가느다란 사마귀와 싸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번개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마귀를 몽둥 이로 때려 잡을 수도 없는 일이엇다. 그는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여러 마리의 개미를 죽였었다. 떼를 지어 가고 있을 때는 피했지만, 한 놈만이 헤매고 있을 때는 손 쉽게 죽일 수 있었다. 그는 세 마리의 개미를 죽인 다음, 30센티쯤 되는 시체를 허리에 매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 된 지금, 젊은 사 마귀를 만난 것이다. 그놈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그가 가까이 오는 것 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전날에 있었던 어떤 경험을 생각해 냈다. 그의 어깨에 겨우 닿 을 정도의 작은 사마귀였지만, 그래도 무서운 상대인 것이다. 퍼얼은 그놈에게 개미 시체를 던졌다. 그놈의 두 팔의 움직임은 번개같이 빨랐다. 사마귀는 퍼얼을 무시하 고 개미를 먹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응용할 수 있는 소중한 발견이었다. 정처없는 여행길에 이틀째로 접어들었을 때 그는 붉은 말불버섯보다 도 훨씬 더 무서운 것을 보았다. 아메리카 타란츄라라고 불리는 검은 색의 암놈 독거미였다. 그놈을 보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 시었다. 그 독거미가 사라지자, 그는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잊 어버리고, 일족이 있는 곳으로 급히 돌아갔다. 이 뉴으스로써 그가 바라고 있던 만족을 손에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기쁨보다는 이 계곡 언저리에 독거미가 없는 편이 더 좋앗을 것 이었다. 타란츄라가 있다는 것은, 도망을 하지 않는다면 그의 일행 모두가 죽 음을 당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이 근방이 낙원이란 생각은 당치 도 않은 착각이었던 것이다. 이 근방으로의 거미의 침입은 사람보다도 빨랐다. 이 거대한 거미는 그놈들만이 아는 방법에 의해 산을 넘어 온 것이다. 그놈의 무서움은 달리 비교해 볼 만한 생물도 없었다. 그놈의 다리는 몇 미터씩이나 벌 어져 바람처럼 달렸으며, 이빨은 반믈처럼 날카로왔다. 그리고 굉장한 맹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놈의 눈은 피냄새를 찾아 미친듯 이 번뜩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사는 거리에 호랑이를 놓아 준 것 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공포 다음에는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놈은 자기 몸통보다 큰 알주머니를 갖고 있었다. 그 알이 부화되 면 4백 마리에서 5백 마리에 이르는 작은 타란츄라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거미알이 부화된 순간부터, 그놈은 어미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생물 이 된다. 다리는 30센티밖에 벌어지지 않으며, 몸통도 사람의 주먹만 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2미터도 넘게 뛰어다닌다. 그리고 그놈들의 작 은 이빨에도 어미와 같은 맹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 이외의 어떠한 생물에 대해서도 격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어미독 거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는 일족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포의 빛을 나타냈지 만, 퍼얼만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아직 그 위험이 눈앞에서 일어나 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얼은 모두에게 곧 길을 떠나야 한다고 명령했지만, 모두들 불안한 눈으로 끄덕거렸을 뿐, 곧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는 일행들을 모이 게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가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안 보 이는 사람을 찾으러 나가면 그 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 곤 했다. 그들은, 딴 곳의 인간들도 그렇겠지만,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기 전 까지는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계곡으로 온 지 두 주일이 지났을 때, 최악의 사태가 드 디어 다가왔다. 밝은 아침이 찾아왔을 때, 퍼얼 일행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아무데도 숨을 곳이 없었다. 괴물 독거미가 알을 깐 것이다. 온 계곡은 잿빛의 새끼독거미로 뒤덮혔으며, 이 잿빛 악마들은 마구 먹어 대어 배가 부른데도 살육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창과 몽둥이 를 들고 싸우기에는, 상대방의 몸집이 너무 작았으며, 또 움직임이 너 무 민첩했다. 모두들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고 절망했다. 거대한 잿빛 괴물이 모 습을 나타내자, 젊은 여자가 그것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놈은 다 행이도 퍼얼 일행을 보지 못했다. 타란츄라의 어미는 아침 안개 속에 서 모충을 잡아 먹고 있었다. 퍼얼은 자기 명령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대해 화를 내고 있었으므 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아무리 말을 걸어와도 들은척도 하 지 않았다. 사야가 말을 걸어왔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몸을 떨며, 8백 미터 앞의 괴물의 모습을 보고 있 었다. 모두들 퍼얼의 눈치를 보았다. 남자가 여섯, 여자가 일곱, 그리 고 나머지는 젖먹이와 어린애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앞에 놓고 흐느껴 울었다. 사야는 애원하는 눈으로 퍼얼을 지켜보았다. 그는 뱉듯이 말했다. "가자!" 그는 사야의 손을 꽉 쥐고 걷기 시작했다. 지금 이 계곡에 있는 사 람들이 이동할 수 있는 방향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무서운 타란츄라 의 어미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잇는 방향이다. 그것은 우연히도, 산을 향한 방향이었다. 퍼얼은 그 경사진 곳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야도 그 와 함께 열심히 올랐다. 퍼얼과 사야가 10미터쯤 전진했을 때, 펄이 자기 아내를 이끌었다. 그들 부부는 세 아이를 데리고 퍼얼을 뒤쫓았다. 그들이 6미터쯤 갔을 때 재크가 자기 가족을 끌고 따랐다. 존 영감도 당황해서 퍼얼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고, 코리는 젖먹이를 안고 다른 아이들을 몰아세우며 뒤 따랐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퍼얼은 모두가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무시한 채전진했다. 디크는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피묻은 퍼얼의 창을 부러워했으며, 흙 속에 절반쯤 묻혀 있는 투구풍뎅이의 뿔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뽑아 가지고 뒤따랐다. 모두들 되도록 퍼얼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썼 으며, 그러면서도 무기를 찾아내려고 무리번거렸다. 4백 미터쯤 갔을 때, 일행은 높이가 7백 미터쯤 되는 박주가리 덩굴 을 보았다. 그 뿌리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개미가 열을 지어 가고 있었다. 퍼얼은 사야의 손을 쥐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의산(개미나 벌 등의 체내에 있는 지방산의 한가지) 냄세가 났지만 퍼얼은 그것을 무시했 다. 개미는 그들에게 이미 조은 식교품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먹는 일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는 산 언덕 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디크와 테트는 서로 구한 무기를 휘두르며 겁 먹은 얼굴로 뒤를 돌 아다 보았다. 그들 두 사람은 개미가 열지어 움직이는 곳까지 되돌아 가서 무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죽은 개미를 갖고 갈 수 잇는 만큼 지 닌 다음, 누가 더 용감했나를 서로 자랑하며 일행의 뒤를 쫓아 달려왔 다. 그리고 수확물을 모두에게 분배했다.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 두들 서슴치 않고 그 선물을 받았다. 어쨋든 그것은 먹는 것이었기 때 문이다. 두 소년은 다시 달려가서 또 먹을 것을 짊어지고 왔다. 다리에 살이 통통히 붙은 여섯 마리의 개미였다. 70미터쯤 전방에서 40센티쯤 되는 거미가 먹이를 죽이고 있었다. 퍼 얼은 모두가 겁을 집어먹고 있는 동안에 명령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 다. 그는 엄하게 말했다. "나는 날카로운 것을 갖고 있다. 당신들 몇 사람도 갖고 있다. 자, 모두 날카로운 무기를 찾아라! 그것으로 싸워야 한다!" 일행은 모두 순순히 그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사야도 무기를 찾으러 가려고 했지만, 퍼얼이 도로 끌어왔다. 왜 그랬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야를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확 실하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사야를 자기 곁에서 떠나 보내 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모두는 각자의 행동을 취했다. 펄은 아내와 함께 갔다. 재크는 겁먹 은 듯이 그 뒤를 따랐다. 존 영감은 귀뚜라미 시체에서 무기를 찾으려 고 했다. 코리는 젖먹이를 퍼얼 옆에 두고, 그가 말한 날카로운 무기 를 찾아 나섰다. 겁먹은 비명 소리가 났다. 열 살 먹은 디크의 동생이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그는 퍼얼에게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10미터 쯤 앞쪽에 있는 버섯 뒤에서 나온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것은 청록색의 생물이었다. 머리가 작고 눈이 엄청나게 컸다. 사 람같이 서 있었으며, 사람의 키보다도 몇 센티나 컸다. 그것은 배가 불룩했으며, 날개를 갖고 있었다. 그 거대한 팔을 기도라도 드리는 것 처럼 앞으로 맞대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어린 사마귀였다. 소년이 좀 더 가까이 오든가, 도망치 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만일 소년이 도망을 친다면, 고양이를 쫓 는 호랑이처럼 맹렬한 기세로 날아 덮칠 것이다. 만일 소년이 앞으로 나서면, 이빨이 달린 손으로 번개처럼 달려들어 소년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 것이며, 숨도 끊어지기 전에 먹기 시작할 것이다. 일행은 모두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소년의 처지를 생각하고 질 리기도 하고, 사마귀가 아직 작다는 것에 절망을 하기도 했다. 즉 그것은 몇 백 마리의 사마귀가 이 근처에 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퍼얼은 생각할 수 있었다. 전에 혼자서 저렇게 커다란 사마 귀를 만난적이 있으며, 그때의 일을 다시 겪는 것이다. 그는 사마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십분쯤 전에 테트가 죽인 작 은 개미를, 공포에 떨고 잇는 소년의 어깨 너머로 던졌다. 그것은 사마귀에 맞아 떨어졌다. 곤충은 생각하는 법이 없다. 사마 귀는 자기를 지키려고 두 손을 급히 내밀었다. 개미는 무거웠다. 사람 처럼 서 있던 사마귀는 뒤로 훌렁 자빠져서, 죽어 있는 개미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사마귀의 주의가 죽은 개미에게 쏠리자, 소년은 냅다 도망을 쳤다. 일행은 다시 퍼얼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퍼얼이 사마귀 쪽으로 가려할 때, 사야는 본능적으로 퍼얼 견테 놓 여 있는 아기를 안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위험이 사라지자, 다시 퍼 얼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일행을 둘러보며 격렬하게 말했다. "모두들 무기를 준비하라!" 일행은 모두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존 영감은 반항하는 투로 중얼거렸고, 다마 할머니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떠들어 대기 시작 했다. "퍼얼이 어런 험한 곳으로 데려왔지 뭐람. 본시 있던 고장은 붉은 말불버섯밖에 없었는데, 여기에는 타란츄라와 그 새끼거미들이 우글거 리잖아. 사마귀 새끼까지도 말이야... 붉은 먼지라면 도망할 수도 있 지만, 이 고장에서 당하는 위험에는 도망할 수 조차 없다니까. 퍼얼은 우리를 모두 쫓아 내어 죽게 하려고 이곳으로 왔지 뭐람..." 그러나 퍼얼은 일행을 노려보며, 위협하듯이 말했다. "난 여기 머물러 있지 않겠소. 난 거미도 사마귀도 없는 곳으로 가 겠소. 자 따라오시오!" 그는 사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아기를 코리에게 건네주고 망 설이지 않고 뒤를 따랐다. 그는 언덕을 올라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계곡에는 거미와 사마귀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이곳에 머무른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이 잊혀진 별의 역사에는 비로소 중대한 일이 일어나 는 것이다. 퍼얼이 모두를 고원으로 인도해 간 것이다. 제 11장 : 햇빛 이 혹성을 비추고 있는 햇빛은 실은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햇빛은 바다를 이룬 구름 아래를 비추고, 안개 위로 솟아 있는 산봉 우리는 햇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났다. 이곳은 햇빛뿐만 아니라 바람도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다. 고원의 가장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마치 우유의 바다와 같은 구름 바 다였다. 안개는 천천히 물결처럼 움직엿고, 그것이 산허리에 이르고 있는 모양은 해변가에 부서지는 파도를, 고속도 촬영에 의해 보고 잇 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고원 위의 경치는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그 곳에서는 곰팡이와 버섯이 햇빛때문에 잘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대신 풀과 나무들이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그곳은 엽록소, 즉 잎파랑 이를 만드는 데 햇빛이 필요한 식물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구러므로 고원에서 식물이 우거져 있는 모습은 거의 지구와 다를 바 없었다. 식물은 버섯보다도 훨씬 느리게 성장했고, 큰 초식 동물이 살아 갈 수 있을 만큼 먹이가 넉넉하지도 못했다. 그곳에도 곤충은 있었지만, 낮은 지대에 있는 것처럼 크지는 않았다. 그리고 밤은 추웠다. 춥기 때문에 곤충의 움직임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구름 바다 위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었 다. 다른 혹성에서 온 인간도 그 고지에서의 생활을 별로 두렵게 여기 지 않을 것이다. 우짖는 작은 새가 없다는 것과, 사냥을 위한 작은 포 유동물이 없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추운 그 고원은 모든 문명인에게 이상적인 장소로 여겨질 만한 곳이었다. 그러나, 퍼얼과 그 일행은 그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고생하면서 올라가고 있었으며, 그들의 지도자인 퍼얼 은 다만 자랑과 허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모든 역사를 통해 사나이 들에게 위대한 일을 시켰던 것도 바로 이 자랑과 허영 때문이었던 것 이다. 지구에서 두 개의 대륙이 발견된 것도, 고깃덩이가 썩는 고약한 냄 세를 숨기기 위해 향료를 손에 넣으려는 사나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거대한 우주선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한 족속인 인간을 죽이기 위해 폭탄을 만든 사나이들이 발견했고 발전시켰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동 기가 위대한 결과를 낳은 본보기는 얼마든지 있다. 퍼얼 일행은 산허리를 기어가듯 올라갔다. 골짜기는 안개에 덮혔고, 이윽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올라가고 있는 바위 언덕 말고는 모두 안개 속에 숨어 있었 다. 바위는 거의 푸른 이끼로 덮혀 있었다. 그들은 물론 그 이끼를 먹어 본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얼마 안 가서, 그것을 말린 뒤에 부 드럽게 요리하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말리는 일도, 불도 모르고 있었다. 바위 투성이의 산허리는 하늘과 맞닿은 것처럼 끝없이 높아만 보였 다. 하늘은 잿빛이었다. 그리고 그 잿빛은 산허리에서 한쪽으로 떨어 져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온 계곡은 완전히 안개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 리고 퍼얼의 뒤를 따라 허덕이며 산허리를 오르고 있는 일행은, 점차 로 주위의 상황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 다. 모두들 현기증을 일으켰으며 기분이 언짢았다. 모든 것이 천천히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만일 그들이 미신을 믿고 있었다면 악마가 노여워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곳에 오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퍼얼 일행은 악마나 노때비를 생각해 낼 만큼 한가하거나 편한 생활을 해오 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지구의 경우, 옛날, 에스키모 사람들은 언제나 굶어죽을 것 같 은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무엇을 먹어서는 안 된다든가, 먹을 것이 있지만 그곳은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든가 하는 따위를 생각하지 않았었다. 지구의 에스키모인들에게 미신이 없었던 것처럼 이 잊혀진 혹성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도 미신 따위를 생각해 낼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인데도 별 생각없이 계속해서 전진하기만 했다. 일행에서 떨어지는 것은, 안개 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이곳에 내버려지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또 누구 하나 되돌아가 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마 할머니조차도 처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허덕이며 뒤따랐다. 다만 자신의 운명을 서글퍼할 뿐 반항 하려는 따위의 마음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만일 퍼얼이 올라가는 것을 멈추었다면 그의 뒤를 따르던 전원이 주 저앉아 비참하게 죽음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모험심도, 안 전을 바라는 기대도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단지, 먹을 것과 그들 일행 모두가 함께 있으려는 마음뿐이었다. 누구에게나 먹을 것은 있다. 올라올 때 테트와 디크가 나누어 준 개미의 시체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소원은 일행으로부터 외톨이가 되지 않는 일이 다. 퍼얼이 모험을 하게 된 동기도 확실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 다. 공포심과 상처받은 허영심과 절망감이 섞인 것이었다. 뒤로 되돌 아선다 해도 이보다 나을 것은 없다. 현재의 공포는 안개 아래쪽에 있 는 것보다 더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전진을 그만둘 이유는 없다. 이런 생각이었다. 그들은 산허리가 펑퍼짐한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저쪽에, 산이 갈라진 곳 같기도 한 구불구불한 골짜기가 보였다. 기웃거리며 바라보 던 퍼얼은 깜짝 놀랐다. 골짜기는 그리 넓지는 않지만 평지로 되어 있었고, 버섯과 박주가리 가 자라고 있었다. 그 어느 것도 먹을 수 있는 것이며, 또 숨어서 안 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거미줄을 발견했다. 반대쪽의 벼랑 사이에 70미터 쯤 되는 넓이로 거미줄이 쳐져 있었으며, 그 한가운데서 한가닥의 줄 이 거미가 숨어 잇는 곳으로 뻗어가 있었다. 골짜기의 벼랑에 거미가 있었다. 거미줄을 건드리면 곧 거미가 달려나올 것이다. 거미줄이 쳐져 있는 근처의 땅바닥은 죽음을 당한 생물들의 무덤이 었다. 큰 투구풍뎅이 껍데기가 떨어져 있다. 벌과 나비의 수염도 있 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미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생물이 살고 있으며, 그곳까지 날아온 생물을 잡아먹고 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들 그 광경을 보며 몸을 떨고 잇었지만, 퍼얼은 달랐다. 그는 갖고 있는 것보다 더 훌륭한 무기를 찾아 내려고 했다. 그는 길고 날 카로운 창을 찾아 내어 그것을 땅에서 뽑아 냈다. 주위는 몹시 조용했다. 들리는 것은 퍼얼이 내는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숨이 막힐것 같은 소리를 냈다. 공포심이 지나쳐 비 명 소리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퍼얼은 곧 그 원인을 알았다. 골짜기 안에서 일행이 서 있는 곳으로 무엇인가 움직여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놈의 움직임은 빨랐다. 발이 수없이 많았으며 몸통의 굵기 는 사람만 했지만, 어마어마하게 긴 몸통이었다. 그리고 지독한 냄새 기 풍겨왔다. 그것은 길이가 13미터나 되는 거대한 지네였다. 그놈은 퍼얼 일행이 알고 있는 그 어떤 괴물과도 달랐다. 날지도 않 고, 재빠르게 달려 들지도 않았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물 흐르듯 기어 올뿐이었지만, 그 속력은 퍼얼이 아무리 달려도 당할 수 없을 만 큼 빨랐다. 퍼얼은 그놈에게, 허리에 차고 있던 개미를 던졌다. 그놈은 몸뚱이 같은 발을 위로 내밀어, 날아오는 개미의 시체를 움켜잡았다. 그놈은 고개를 돌리더니 그것을 발로 붙잡고 먹었다. 퍼얼은 자꾸만 던졌다. 개미의 시체가 빗발처럼 그놈에게 날아갔다. 그놈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개미에게 주의를 쏠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놈의 발은 날아드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붙잡았다. 열 마리 열 다섯 마리, 스무 마리... 지네의 발은 개미를 공중에서 움켜 쥐었다. 퍼얼의 명령으로 일행은 그곳을 떠나 높은 곳으로 도망쳤다. 거대한 지네는 쫓아오지 않고 작은 개미들을 먹고 있었다. 지네의 그 지독한 악취가 아니었다면 퍼얼은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 들어 공격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고약한 냄세였다. 그가 도망을 쳐도 지네는 여전히 모두가 던진 작은 먹이를 씹고 있었다. 일행은 산허리를 기어올랐다. 지네가 언덕진 바위를 타고 쫓아 올라 오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놈은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냄세 때 문에 사람 냄새를 따라 뒤쫓을 수는 없을 것이다. 20분쯤 지나 그들은 속력을 늦추었다. 기진맥진도 했지만, 주위를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눈앞에 다시 자그마한 평지가 나타났다. 안 개 때문에 평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약돌과 흙으로 덮힌 그 평지는 30미터와 15미터 정도의 넓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낯익은 식용버섯이 돋아나 있었다. 또 잿빛 말불버섯 도 있었다. 작은 투구풍뎅이도,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즐거운 듯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골짜기의 위험에서 벗어난 이 작은 버섯 숲에서 즐겁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놈이 작은 그대로라면, 바로 아래의 산이 갈라진 골짜기의 사는 괴물의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으련 만. 그들은 식용버섯을 잘라 먹었다. 거대한 지네가 800미터쯤 아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곳은 안전한 곳 같았다. 존 영감이 중얼중얼 불평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먹을 것이 있다. 또다시 앞으로 전진할 필요가 없다. 여기 는 먹을 것이 있다...." 퍼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보았다. 존 영감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모두는 앞날을 생각하거나 하는 일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 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란 아무 쓸모도 없기 때문이다. 퍼얼조차도 존 영감의 말에 따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여기 있으 면 안전하고 먹을 것도 있으니까... 그러나 또 그 괴물이 나타나 쫓길 때까지 이곳에 머문다는 것은, 그 가 다시 손에 넣은 지도자로서의 기쁨을 잃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존 영감에게 가슴을 펴고 이죽거리듯 말했다. "이봐, 그러면 당신은 여기 남아 있어. 난 떠날 테니까. 이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말이야." 그는 사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야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손을 잡 았다. 그들은 다시 안개 속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로 눈치를 보던 그들은 모두 퍼얼의 뒤를 따랐다. 물론 디크와 테 트도 뒤따랐다. 그들은 아직 소년이었으며, 지금까지 퍼얼을 따라 모 험을 계속해 왔지만, 누구 하나 죽은 사람이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 으리라. 일행 중에서 가장 힘이 센 펄도 뒤따랐다. 자기 힘은 퍼얼의 생각하는 머리에 비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리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퍼얼 곁에 있는 편이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뒤따랐다. 다른 사람들은 뒤에 남는 것이 싫어서 그를 따르기로 했다. 그들은 힘에 겨워하면서도 부지런히 올라갔다. 이윽고 퍼얼은 주위 가 밝아지고 잇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개는 계곡만큼 짙지 않았으며,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몇 킬로나 되는 거리까지 훤히 보여서 산허 리의 기복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계곡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안 개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머리 위에 덮혀 있던 구름... 그것을 하나의 물체로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저 하늘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사방이 훤히 보였기 때문일까?... 구름은 하늘과는 다르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들이 가고 있는 높은 곳을 구름이 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 은 것이다. 지금 퍼얼 일행은, 구름 아래 약 300미터 지점에 있는 것이다. 이대 로 자꾸 올라가면 구름과 부딪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좀 불안하 고 언짢지만 이제 와서 다시 내려갈 수 없는 일이다. 부딪칠 때는 부 딪치더라도 우선 올라가 보자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는, 하늘이라고 생각해오던 것이, 가만히 머물러 잇지 않다는 것 을 알았다.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좀 더 올라갔을 때, 구름의 일부가 그들보다 낮은 곳에도 잇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들은 퍼얼 일행쪽으로 움직여 오기도 하고, 반대쪽으로 멀어지기도 했다. 그것에 위험한 생 물이었다면 달려들었을 것이 아닌가(문맥이 좀 이상하군요..바로 잡기 도 까다로와 그냥 그대로 옮깁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자 적 이 안심하였다. 그리고 구름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퍼얼은 휜 구름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인간처럼 약한 것은 적으로부터 도망을 친다. 그런데 이것은 반대로 인간을 보고 도망치는 것이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퍼얼만이 아니라, 일행들도 그러한 구름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며 기뻐했다. 퍼얼은 거미를 죽였었다. 그는 정말 멋진 사나이다. 저 흰 구름은 퍼얼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퍼얼 곁에 잇는 것이 현명 하다. 이렇게 일행들은 생각했다. 그는 흰 구름이 10미터 이상은 가까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쾌했 다. 그리고 주위는 밝았다. 모두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밝음보다 훨씬 희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낮은, 기껏 주위가 보일 정도의 희미 한 밝음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것이다. 알행은 모두 이러한 밝음에 익숙해 있지 않았다. 고요함에도 익숙하 지 않았다. 낮은 지대는 어디나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소리는 계곡을 떠 나 멀어짐에 따라 차츰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눈부신 흰 안개속 에 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그것은 예삿일이 아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밝음 속에서 눈을 깜빡거렸다. 서로 말을 건넬 때는 속삭이 듯 말했다. 발 밑의 돌도 이끼에 덮혀 잇지 않았다. 젖은 채로 발게 빛나고 있다. 주위의 발그음은 황금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지금까 지 전혀 없었던 일이다. 고요함도 공포에 찬 것이 아니었으며, 황금빛 도 공포와는 관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잊혀진 혹성에 사는 사람들이 고요를 알고 있는 것은 꿈속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꿈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안개 바다를 벗어나, 햇빛에 빛나는 바닷가를 보았다. 그들 은 처음으로 푸른 하늘과 햇빛을 보았다. 빛은 그들의 살갗과 여러가지 빛갈을 한 털가죽을 비추었다. 나비의 날개로 만든 외투가 아름답게 빛났다. 햇빛은 앞장 선 퍼얼이 쥐고 있 는 큰 창과, 모두가 들고 있는 볼품없는 무기에 반사되어 반짝이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일행은 마지막의 흰 안개를 벗어났다. 그들은 눈 이 휘둥그래져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하늘은 푸르렀다. 초록빛 풀도 있었다. 그리고 또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나무들 사이를 부 는 바람과, 햇빛 속에서 살고 있는 것들이 일으키는 소리들이었다. 그들은 곤충 소리는 알고 있지만, 지금 울려오고 있는 소리는 알 수 없었다. 음악적인 작은 지저귐, 아름다운 멜로디.... 전에 듣던 소리 와는 아주 달랐다. 모든 것이 새로왔으며,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 이 모두의 가슴 속에 솟아 올랐다.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먼 선조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그들은,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이야말로 옳고 바른 상태라는 것 을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느끼고 있었다. 인간이 살아 갈 세계는 저 공포에 싸여 있는 낮은 지대가 아니라, 여기라는 것을... 그들은 오랜 세월 속에 처음으로 맑은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 다. 퍼얼은 승리의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의 소리는 나무들과 산허 리에 메아리쳐 올라갔다. 제 12장 : 별 하늘.. 그들은 몇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가지고 있었다. 구름 아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무성해 있는 버섯을 많이 꺽어 왔던 것이다. 그 리고 디크와 테트가 기분 좋게 나누어 준 개미가 아직 남아 있었다. 지네에게서 도망할 때 모두 던져 버리지는 않은 것이다. 이곳에서 곧 먹을 것을 찾아 낼 수 있다면 기분 좋게 살 수 있다. 숨어 있을 장소와 가까운 곳에 먹을 것이 잇다면, 더 이상 바랄 수 없 는 기쁨이다. 왠지 모르게 일행은 이 밝고 새로운 빛의 고원이 안심하고 살 수 있 는 곳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 몸을 숨길 데가 없었다. 야만인 특 유의 예감으로 이곳에는 적이 없다는 것을 믿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숨어 있을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동굴을 찾아 냈다. 작은 동굴이어서 일행이 모두 들어가면 꽉 차다시피했지만,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전에는 이 동굴속에 다른 생물이 살고 있었 던 것 같았다. 그러나 바닥에 발자국이 나 있지는 않았다. 희미한 냄 세가 아직 남아 있었으며, 그것은 처음으로 맡아보는 냄새였지만 그리 기분 나쁜 냄세는 아니었다. 또 위험을 느끼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개미는 의산 냄새를 풍기며, 그 발자국을 쫓아 개미 마을로 가면 사 향 냄새가 난다. 그리고 개메에게는 소름이 끼치는 고약한 냄새가 난 다. 사마귀 냄새는 시큼하고, 투구풍뎅이는 썩는 것 같은 냄세를 풍긴 다. 그 곤충들은 먹이가 될 생물을 악취로써 위협하는 것이다. 퍼얼 일행은 어쩐지, 이 동굴속의 냄새가 다른 인간의 냄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그것은 따뜻한 피를 가진, 동물의 냄새 였다. 그러나 퍼얼과 그 일행은, 자기들 말고도 다른 온혈동물이 있으 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들이 구름 위로 나온 것은 해가 지기 두 시간 전이었다. 그들은 아무도 해가 진다는 것을 몰랐다. 한 시간쯤 그들은 어깨를 맞대고 그 저 놀라고 있었다. 그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태양이었고, 눈이 부 셔 오래 바라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이어 그들은 야만인답게 모 든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주위에 있는 식물이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은 거대한 버섯과, 먹히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씨를 남기려 는 몇 가지 안 되는 가련한 식물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나무와 많 은 식물이 있었다. 버섯도 보이지 않고, 그리고 공중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거대한 것만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일행은 모두 식물들이 가늘고 단단한 데 또한 놀랐다. 더구나 풀이 놀랍기만 했다. 그들이 안심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땅 위에 죽음의 시체가 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미의 사냥터에는 잡혀먹힌 생물들의 무시무시한 뼈가 쌓여 있었으 며, 사마귀가 어슬렁거리는 곳에는 투명한 투구풍뎅이의 날개와, 먹을 수 없는 껍데기 조각들이 널려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 시간쯤 주위를 살피며 돌아보았지만, 낮은 지대에서 보았 던 그런 곤충은 한마리도 없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그 괴물들이 이곳으로는 오지 않기를 바 랐지만, 그것을 절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괴물들이 온다 해도 아주 드문 일일 거라는 것이 퍼얼의 생각이었으며, 그러한 생각은 옳았다. 동굴은 그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나무들이 가까이에 서있지 않다 는 것도 안정감을 주었다. 그들은 나무줄기가 단단한 데 놀랐다. 그처 럼 단단한 것은, 지금까지 곤충의 껍데기와 돌뿐이었던 것이다. 먹을 것을 아직 찾아 내지는 못했지만 아무도 배가 고프다고는 하지 않았다. 운반해 온 식량이 남아 있는 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고,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보이자, 그들 의 마음은 이상해졌다. 그들은 처음으로 맞이하는 장엄한 해넘이 광경 을 겁 먹은 눈으로,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지켜 보았다. 빨간 빛과 주황색이 하늘을 물들였으며, 태양도 바로 볼 수가 있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저쪽 세계로 태양은 천천히 넘어갔다. 그리고 주위는 어둠 속에 쌓였다. 밤은 이렇게 해서 오는구나!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눈이 휘동그래졌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으로 별을 보았다. 낮은 지대에 살던 그들은 서 둘러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전에 살고 있던 그 무엇의 냄새가 희미하 게 남아 있는 동굴 속은 새로운 거주자들로 가득찼다. 그러나 퍼얼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았으며, 사야와 함께 맨 나중에 들어갔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가 질 때에 들리던 소리는 그대로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기 묘했지만,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다. 이 역시 먼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 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일행은 모두 그 소리를 정상적인 밤의 소릴로 느꼈다. 퍼얼과 그 일족으로서는 알 리가 없지만, 이 잊혀진 행성에서 사십 세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들 인류는 그들에게 적합한 환경속에 있 게 된 것이다. 퍼얼은 작은 동굴 입구에서 밤의 소리에 귀를 귀울리고 있었다. 일행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한 덩어리처럼 모여 잤기 때문 에 춥지는 않았다. 사야는 퍼얼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는 눈을 뜨 고 생각에 잠겨 있었지만, 사야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퍼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흐믓할 뿐이었 다. 사야는 일행을 이끌고 지휘하는 퍼얼의 모습을 되살리고는 혼자 기 뻐했다. 그리고 햇빛의 감촉을 되살려 보기도 하고, 처음으로 본 하늘 과 풀과 나무들을 마음 속에 그려 보았다. 퍼얼이 거미를 죽이던 일을 어렴풋이 떠올려 생각해 보았다. 퍼얼은 개미를 사마귀한테 던져 도망 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아무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했 다. 산으로 오른 일만 해도 그렇다. 용감하게 모두를 이끌고 오지 않 았던가.... 그리고 거대한 지네한테 잡혀먹히게 되었을 때, 그는 일행 을 구해 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뒤집혀지고, 하늘이 떨어져 내려올 것만 같았던 그 험한 산허리를 용케도 무사히 이끌고 왔다.... 여기까지 떠올리던 사야는 잠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러나 퍼얼은 여전히 눈을 뜨고 귀를 귀울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알 수 없는 흥 분을 억누르며 동굴을 빠져나와 밤의 경치를 둘러보았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퍽 서늘했다. 지금 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서늘함이었다. 그리고 공기 냄새도 처음 맡 아 보는 것이었다. 무성한 숲과 풀들...햇빛속을 흐르던 시원한 바람 과 싱그러운 향기... 나무에서 나는 나무진 냄새...모두가 신기하고 흐믓하기만 한 냄새였다. 퍼얼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이 빛나는 찬란한 밤 하늘이었다. 그 는 2천 년이 넘는 동안 이 혹성에서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쳐다 본 최초의 인간이었다. 몇천 몇만의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가지각색의 빛갈이 하늘에 깔려 있는 모습은 말 할수 없이 아 름다운 광경이었다. 퍼얼은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흥분 때문에 자기 의 숨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작에 숨을 깊이 들이마셔야 했다. 이처럼 맑고 싱싱하고 향기로운 공기를 모두들 깨달고 있을 까... 지금까지 퍼얼과 그 일행에게 이러한 공기가 주어진 일은 없었다. 또한 공포를 느끼는 일없이 살고 있다는 것은 황홀하도록 즐거운 일이 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사야가 퍼얼의 곁에 서서 몸을 떨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온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러나 퍼얼이 혹시 위험한 일을 당하고 있지나 않나 생각되어 두려움 을 무릅쓰고 나온 것이다. 만약 그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자기도 위험 을 함께 맞이하리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두 남녀는, 밤바람과 밤에 노래하는 생물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귀울 였다. 그들은 동굴 입구에서 떨어져 나와 걷고 있었다. 사야는 어둠을 두 려워하지 않는 퍼얼의 용기가 자랑스러웠다. 자기가 불안한 마음인 만 큼, 그의 훌륭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사야는,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 아주 흡족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려왔으며, 지금까지 들어 온 그 어떤 소리와도 달랐다. 곤충의 울음 소리와는 소리의 질이 달랐으며, 짖는 소리였다. 높은 소리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뚝 멎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울 려왔다. 사야는 몸서리를 쳤지만, 퍼얼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저건 좋은 소리야" 그는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야는 다시 몸을 떨었다. "나, 추워" 그것은 낮은 지대에서는 별로 느껴 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어쩌다 비를 몰고 오는 바람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비가 오고 난 뒤 바람을 쐬었을 때 느꼇던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해가 진 다음에는 추위가 점점 더해가는 것 같았 다. 땅의 열기는 그 발산을 방해하는 구름이 없기 때문에 우주로 사라 져 버리고, 새벽녘이면 얼어붙지 않나 싶을 만큼 기온이 내려갔다. 그러나 태양에 가까운 혹성이었기 때문에 하얗게 서리가 내릴 뿐, 그 이상으로 추워지는 일은 일년 내내 한번도 없었다. 두 사람은 동굴로 돌아왔다. 동굴 속은 사람들의 체온으로 따스했 다. 퍼얼과 사야는 쉴 자리를 찾아 누웠다. 사야의 손은 다시 퍼얼의 손 을 쥐고 있었다. 그는 누운 다음에도 오랜 동안 눈을 뜨고 있었다. 별하늘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나 신기하기만 해서 종잡을 수 없 었다. 그는 나무와 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세계는 본래 살던 낮은 지대와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달리 생각할 여지도 없이, 았 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일행을 이곳까지 데 리고 왔다는 데 대해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그가 생각한 것은, 밤의 어둠 속을 통해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였다. 처음으로 듣는 새로운 소리였지만, 웬지 모르게 좋은 소리라고 느껴졌다. 그는 맨먼저 일어나, 동트기 전의 잿빛 경치를 내다보았다. 나무들 의 한쪽은 밝았고 반대쪽은 어두웠다.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작은 지저귐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다시 동굴 밖으로 기어나왔다. 공기는 아픔을 느낄만큼 차가왔다. 그것이야말로 거대한 곤충이 이 곳에서 살아갈 수 없는 이유였지만, 퍼얼은 그 공기를 마시자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간았다. 이윽고 그는 나무의 한쪽만이 밝았던 까닭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태양의 동쪽의 구름 바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하늘은 점 점 밝아졌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태양이 더 뚜렷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보았다. 위를 쳐다보니, 별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는 사야를 부르러 달려갔다. 그가 사야를 흔들어 깨우자, 다른 사람들도 잠을 깼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일행은 모두 퍼얼을 따라나와 해돋이를 처음으로 바라보았 다. 남자들은 숨을 죽이고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태양을 지켜보 았다. 그것은 구름 바다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완전히 구 름 바다를 벗어나 위쪽으로 움직여 가고 있었다. 여자들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눈을 찡그리며 어머니 곁에 붙 어 서 있었다. 그리고 일행은 모두 하늘에 떠 있는 빛나는 것으로부터 따뜻한 공기가 보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곧 놀이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그들의 최초의 놀이였다. 그늘이 진 곳으로 달려가서 몸이 떨릴 때까지 그곳에 있다가 다시 햇 빛이 드는 곳으로 달여오고 하는 아주 단순한 놀이였다. 구름 위에서 맞이한 최초의 아침, 일행은 둘러앉아서 낮은 지대에서 가져온 식량을 먹었다. 그러나 이제는 식량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퍼얼은 먹으면서 묵묵히 생각했다. 그리고 모두들 자기를 보도록 했 다. 그들은 모두 만족하고 있으며, 지금 당장으로서는 그의 지도를 필 요하게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두를 지도해 나가야 한다 고 생각했고, 또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들은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 우리들이 앞으로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다. 오 늘, 우리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나선다!" 이것은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발언이었다. 복종할 것을 명령하는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함이며, 지도자의 본능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일행은 모두 먹으면서 동위한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퍼얼이 하는 일 과 명령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그들은 천천히 복종하는 습관을 길러 나가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자, 그는 곧 탐험의 길을 떠났다. 물론 모두 함께였다. 일행은 그의 뒤를 줄줄이 따라갔다. 작은 시내가 나타났는데, 일행은 모두 놀라서 넋을 잃은 듯이 바라 보았다. 그곳에는 집없는 달팽이도 없고, 풀빛의 물이끼도 없었다. 더 럽고 지저분한 것은 아무것도 떠 있지 않았다. 이처럼 말고 깨끄한 시 냇물은 처음이었다. 퍼얼은 용기를 내어 시냇물을 맛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이 혹성에 서 먹을 수 있는 물을 마신 것이다. 물맛은 상쾌했다. 그 다음 펄이 마셨다. 코리는 물을 마셔 보더니 곧 아이들에게도 마 시게 했다. 다마 할머니는 의심스러운 듯이 망설이고 있더니, 남에게 지기 싫었는지 억지로 마셨다. 마시고 난 다마 할머니는, 어째서 이런 곳으로 빨리 데려오지 않았느냐고 퍼얼에게 대들 듯이 불평을 했다. 테트와 디크는 이 작은 시내에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자, 곧 장난을 치며 서로 물을 끼얹었다. 디크의 발이 미끄러지면서 뭔지 하 얀 물체 위에 주저앉아 버렸다. 하얀 물체는 맥없이 문드러졌다. 그는 일어나서 그것이 무서운 것이 아닌가 싶어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소 리를 질렀다. 그는 촘촌히 돋아난 버섯 위에 주저앉았던 것이다. 그 버섯들은 작 고 깨끗해서 식욕을 돋구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먹어 온 버섯보다 훨 씬 작은 것이었다. 퍼얼은 버섯을 따서 냄세를 맡아보고는 입에 넣고 씹었다. 그것은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용 버섯으로 비옥하고 그늘진 땅에서 자라난다. 이 시냇가의 버섯들도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는 곳에 자라나고 있었다. 퍼얼은 버섯을 씹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여기에 먹을 것이 있지만, 이 멋진 세계에 있는 것은 아주 작다. 먹을 것은 큰 것 대신에 작은 것들을 모을 수밖에 없다. 모두들 다 른 장소에 이러한 것이 또 있는지 찾아 내야 한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버섯을 먹기 시작 했다. 그전처럼 버섯의 일부가 아니라 통채로 말이다. 그것은 전에 보던 거대한 버섯과 같았지만 그것처럼 딱딱하지도 않 고 질기지도 않았다. 입에 넣자 살살 녹아드는 것처럼 부드럽고 연했 다. 퍼얼이 이끌고 온 이 땅에서의 생활은 기분 좋은 것이었다. 확실히 퍼얼이 하는 일은 놀랍다.! 코리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위인 계집애가 나뭇잎에 앉은 투 구풍뎅이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전에 살던 낮은 지대의 투구풍뎅 이는 사람보다 컸으며, 그놈을 보면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투구풍뎅이는 3센티쯤 되는 작은 것이었다. 일행 은 모두 기쁜 마음이었다. 그 순간부터 일행은 모두 퍼얼이 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 게 되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가져다 주는 사람으로 생 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점심 때가 가까울 무렵, 그들은 더 큰 발견을 했다. 그때 그 들은 가시덤불 속을 고생하면서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가시 덤불에는 익숙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언짢은 기분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까맣게 빛나는 과일을 발견했다. 검은 딸기였다. 먹 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크게 기뻐하겠지만, 처음으로 본 일행 은 불안한 듯이 검은 딸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은 딸기밭 속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몇 개의 소리가 섞인 외침 소리였으며, 어떤 소리는 크고 짧았고, 어떤 소리는 작고 길었다. 어쩌면 사람의 소리 같기도 했지 만, 고통스러운 외침은 아니었다. 무엇인가 몹시 흥분하고 있는 것 같 았지만, 공포의 소리는 아니었다. 아무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퍼얼은 어젯밤에 들려오던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소리에 이끌렸다. 그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는 점점 그 흥분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1킬로쯤 전진했 을 때, 퍼얼 일행은 가슴 높이로 잡초가 무성한 풀숲을 벗어났다. 사 야는 퍼얼의 뒤를 바싹 따랐다. 그러나 다마 할머니는 소리나는 쪽으 로 가면 위험하다고 투덜거리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윽고 일행은 원 형의 풀밭으로 나왔다. 소란스러운 소리는 그 가운데서 나고 있었다. 개들이 무엇인가 둘러싸고 공격하고 있었다. 무엇을 공격하고 있는 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개들은 열중해서 각기 다른 목소리로 짖어대 고 있었는데, 자못 신이 나 보였다. 물론 공격받고 있는 쪽은 신이 날 리가 없을 테지만. 그러자 한 마리의 개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 개는 주춤하더 니 짖기 시작했다. 다른 개들도 돌아다보았다. 소란스러움은 갑자기 멈춰졌다. 침묵이 흘렀다. 퍼얼과 그 일행은, 이 생물에게 다리가 네 개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람 을 제외하고 다리가 여섯 개 이하인 생물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거 미는 여덟개다. 그리고 개의 입 모양도 신기했다. 날개도 없으며, 곤 충의 움직임과도 딴판이다.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개도 사람을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생물이 다. 개들은 사람 냄새를 맡았다. 인간의 냄새와 곤충의 냄새는 퍽 다 르다. 몇백 세대가 지나는 동안, 이 혹성의 개들은 더운 피를 지닌 동 물 냄새를 맡아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 냄새 때문에 개들은 경계 심보다는 호기심을 일으켰다. 처음으로 맡아보는 냄새는 개를 흥분시 켰다. 친근감을 일으키는 좋은 냄새였다. 개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자꾸만 냄새를 맡았다. 놀라왔지만 위험은 느끼지 않았다. 한 마리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나직한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제 13장 : 따뜻한 인연 기묘한 일이지만, 개가 살고 있는 것은 땅의 형태 때문이었다. 타란츄라의 무리로 덮혀 있는 계곡에서 깍아지른 듯한 벼랑과 산허 리를 지나 구름 바다 위로 나오면 이 고원이 된다. 고원의 동쪽 긑이 다. 그러나 서쪽으로는, 퍼얼 일행이 햇빛 아래로 나온 곳에서부터 30킬 로쯤 되는 지점에 가파르지 않은 봉긋한 언덕이 아래로 계속되고 있었 다. 그리고 그 아래 구름이 끼여 있는 언저리까지 버섯이 우거져 있었 는데, 거대한 곤충이 그곳으로 잘못 날아들곤 했다. 물론 그러한 곤충이 구름 위에 있는 이 고원에서 살아 갈 수는 없 다. 그놈들의 한없는 식욕을 충족시켜 줄 만큼 먹을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밤이면 너무 추워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그놈들은 자기들 세계에서 이곳으로 잘못 날아들었다가 어떤 놈은 다시 살던 곳으로 돌 아갔을 것이며, 돌아가지 못한 놈은 이 고원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첫날밤은 밤하늘 아래서 추위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 리고 아침에 살아난다 해도 겨우 움직일 수 잇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틀째 밤의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놈은 거의 없었을 것이 다. 이것이 개가 살아남은 이유였다. 이 개들은 난파한 우주선 이카르스 호에 타고 있던 개들의 자손이다. 퍼얼 일행이 우주선에 대한 것을 알 리가 없었으며, 또 개들도 선조의 개들과는 습관이 달라져 있었을 것 이다. 우주선을 타고 이 행성에 착륙했던 사람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 개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며, 그래서 개를 번식케 했다. 그러나 인간의 문 명은 낮은 지대에서 살아 남을 수 없었다. 인간은 원시인의 상태로 퇴 화해 갔고, 괴물 곶충들 틈에서 처량하게 목숨을 이어갔다. 인간은 어떻게 살 수 있었지만, 개는 살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 다. 그래서 개는 헤매다가 고원에 다다랐다. 그 전에 개의 주인이 죽 었는지도 모른다. 또 몇 마리는 버림을 받고 쫓겨났는지도 모른다. 어 쨋든 개들은 이 고원에 다다랐다. 그들은 거대한 곤충에게 쫓겨 올라 와서 살아 남았다.... 그리고 거대한 곤충들은 개나 인간에게 알맞은 환경에서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개의 수효가 제한되어 있고, 퍽 영리한 것도 이유가 있다. 먹이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의 수효가 많았을 때, 거대한 곤충에 대 한 공격은 곤충의 힘이 빠질 때까지 맹렬하고 필사적인 것이었다. 이 러한 싸움에서 많은 개가 죽었다. 그 뒤 한정된 먹이 때문에 개의 수 효도 제한되었으며, 영리한 개는 함부로 공격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 지만, 공격할 용기가 없는 개는 먹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지금 퍼얼 일행을 흥미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개들은 대단 히 우수한 개들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살아 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가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이 나 가리지 않고 마구 공격하는 일이 없었으며, 곤충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거미조차도 더운 김이 오 르고 있는 낮은 지대에서 금방 올라온 놈이 아니면 별로 겁낼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퍼얼은 곧, 개가 곤충처럼 앞뒤 분별없이 흉폭하게 마구 달려들지도 않을뿐더러, 아주 영리한 짐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관심을 갖고 사람들을 살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곤충음 상대가 무엇이든 살펴보거나 하지 않는다. 도망치든가, ㅇ니 면 싸울 뿐이다. 식욕성이 아닌 곤충은 먹이가 될 만한 상대가 아니면 일체 흥미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식육성의 곤충은 먹이가 될 만한 것 을 보기만 하면 미친 듯이 사움을 걸어온다. 그런데 개는 그렇지가 않 았다. 냄새를 맡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퍼얼은 일행에게 명령했다. "여기 있어!" 그는 천천히 풀밭 가운데로 걸어갔다. 사야가 곧 그 뒤를 따랐다. 개는 모두 불안한 듯이 뒷걸음질을 쳤지만, 코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사람의 냄새는 좋은 냄새였다. 개는 몇 세데 동안이나 사람 냄새를 맡 지 못하고 살아 왔지만, 그 이전의 몇천 세대에 걸쳐, 그 냄새는 그들 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퍼얼은 개들에게 공격받고 잇던 것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은 풀밭에 쓰러져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밤이 되면 날개를 3미터나 펴는 푸른 나 방의 애벌래였다. 탈바꿈하는 시기가 되어 그놈은 고치를 뽑아 날개 달린 모습으로 탈바꿈하려고안전한 장소를 찾아 천방지축 해매다가, 이 구름 위에 잇는 다른 세계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놈의 몸에 저축되어 있는 지방질이 어느 정도 추 위를 막아 주었다. 그런데 개들이 그놈이 기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퍼얼은 생각해 냈다. 이런 생물을 말벌이 죽인다는 것을... 말벌은 그때 검은 털이 돋아난 곳을 침으로 찔렀던 것이다. 퍼얼은 그곳을 창으로 찔렀다. 창 끝이 박히자, 그놈은 꿈틀거림을 멈추고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는 일행을 위해 고기를 잘라냈다. 개들은 별로 짖어댜지 않았다. 그들은 배불리 먹고 있었던 것이다. 퍼얼과 사야는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고기를 날랐다. 그때 퍼얼은 개로부터 3미터쯤 떨어진 곳을 지나갔다. 개들은 모두 흥미로움과 함께,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퍼얼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먹이로 할 수 잇는 냄새는 아니었다. 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냄새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어쨋든 사 람 냄새는 좋은 냄새였다. 그는 개들을 보며, 사람에게 인사하듯 말했다. "난 그들을 죽였다... 저리로 가서 먹어라. 난 조금만 가져갈 테니 까." 퍼얼과 그 일행은 날라 온 고기를 먹었다. 개들은 퍼얼이 남겨 놓은 먹이가 잇는 곳으로 갔다. 개들로서는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먹을 것이 주어졌고,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　지 모르게 그리운 냄새가 나는 것이다. 잠시 후, 개들은 다시 사람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흥분했 고, 사람도 흥분하고 있었다. 모두가 지도자로서의 퍼얼이 느꼈던 것 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개가 별로 위험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 았으며, 아이들마저 공연히 즐거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신기했고, 또 흡족한 것이었던만큼, 곤충이 아닌 이 새로운 생물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한 감정은 개들에게도 있었으며, 사람과 개의 만남은 이렇듯 극 적이었다. 사야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이상의 고기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일 행을 둘러 보았다. 모두가 갖고 있다. 사야는 여분의 고기를 개에게 던졌다. 개는 놀라서 물러났지만, 곧 고기가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서 냄새를 맡았다. 개는 언제나 먹을 수 있다. 그놈은 고기를 먹었다. 사야는 호소하듯이 말했다. "너희들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개는 꼬리를 흔들었다. 사야는 재미있어 하며 말했다. "너희들은 우리들과 모습이 다르구나. 그렇지만 하는 짓은 비슷하지 뭐야. 괴물과는 닮지 않았어." 개는 퍼얼이 갖고 잇는 고기를 쳐다보았다. 퍼얼은 그것을 던져 주 었다. 개는 재빠르게 받아 곧 삼켜 버렸다. 개는 꼬리를 흔들어 보이 며 퍼얼 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개와 사람은 이 혹성에서 따뜻한 피를 가지고 있는 동물인 것이다. 그것이 자기들도 모르게 친 숙한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이리라. 그리고 선조 때의 인간과 개의 우정 에 대한 기억이 그 어느 쪽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 세계에서 유일한 온혈 동물임을 그들은 서로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퍼얼은 개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마치 사람을 대하듯이 말했다. 퍼얼은 지금까지 자기가 곤충들과 동등하다고는 생각해 본 일 이 없었다. 그러나 개에게는 적의도 경멸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자 기들 일족에 대해서만 우월감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동굴로 돌아간다... 또 만날 수 있을 있겠지." 그는 그의 일행을 데리고 어젯밤을 보낸 동굴로 향했다. 개들이 양 쪽으로 늘어서서 따라왔다. 그들은 배가 불렀으며, 따뜻한 피 냄새를 지닌 생물에 대해서 적개 심을 가져 본 기억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경험은 없었지만, 본능이란 것이 있었다. 동굴로 돌아가는 길은, 마치 개들과 사람들이 한데 어울 려 산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도 퍼얼은 동굴을 나와 밤 하늘을 쳐다 보았다. 사야는 당연 한 것처럼 그를 따라 나섰다. 그들이 동굴 밖으로 나오자, 무엇인가 움직였다. 한 마리의 개가 몸을 움직이더니 기지개를 키며 하품을 했다. 퍼얼 과 사야가 걸어가자, 그놈도 즐거운 듯이 따라왔다. 퍼얼과 사야는 기특해서 말을 걸었다. 개는 기뻐하며 꼬리를 흔들었 다. 아침이 되자, 개들은 사람들이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놈들은 사람들이 산책길에 데리고 가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개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사람은 자기들을 산책길에 데리고 다니고 여기 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동굴에서 나오자, 개들은 일제히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인 사했다. 퍼얼 일행은 이 고원에서 살아 가는 데 있어, 개가 얼마나 소중한 짐승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우정이 사람다운 생활을 지켜 주었던 것이다. 퍼얼과 그 일행은 이제 곤충에 쫓겨 다니는 신세가 아니어도 되었다. 그들은 쫓겨 다니지 않고 먹을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기를 오랜 동안 갈망하고 있었다. 그 이상의 소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개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은 사냥을 당하는 쪽이 아니라, 사냥을 하는 쪽이 되 었다. 사람들은 개를 기른다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개를 친구로 삼고 있었다. 개 역시 그러했다.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 나갔다. 그리고 한 달도 못되어, 마치 옛날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스스럼 없이 생활해 나갔다. 이 점, 사람이나 개나 마찬가지였다. 그 후 어느 날 아침, 개가 요란하게 짖어서 사람들을 깨웠다. 퍼얼 은 급히 달려나갔다. 개들이 거대한 투구풍뎅이와 싸우고 있었다. 그 곤충은 다른 침입자와는 달리, 밤새의 추위에도 그리 얼지 않은 놈이 었다. 채 밝지 않은 아침 공기를 흔들며 개들은 맹렬하게 짖어댔다. 그리고 투구풍뎅이 주위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을 못차리게 했 다. 퍼얼은 쉽게 창으로 찔러 죽일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퍼 얼은 개에게도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는 나방의 촉각을 마치 깃털로 만든 기사의 장식품처럼 이마에 감아 멋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아주 빠르게 변해갔다. 고원에는 여기저기에 가시덤불이 있었다. 남자 한 사람이 가시덤불 에 발을 찔렸다. 다마 할머니는 조심성이 없다고 나무라면서, 날개를 뜯어 내어 그의 발에 감아 주었다. 그랬더니 상처를 입은 발이, 성한 발보다도 오히려 걷기가 더 편했다. 얼마 안 되어 여자들은 모두 발에 감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걷기 에 편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야는 빨갛게 빛나고 있는 딸기를 보자, 그 아름다움에 홀린 듯이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따서 손톱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녀 는 깨끗이 하려고 손톱을 핧았는데, 맛이 달콤하였다. 그 후부터 딸기 는 그들의 식량이 되었다. 개들은 언제나 보초를 서는 구실을 했으며, 일족들과 모두 친구가 되었다. 이미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가 놀아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언제나 개가 따라다니기 때문 이다. 아이들에게 위험이 닥치면 만드시 개가 맹렬하게 짖어 대는 것 이었다. 남자들은 꼬리를 흔드는 개와 함께 사냥을 떠났고, 개는 용케도 사 냥거리를 찾아 냈다. 개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거의 혼자서 거대한 투구풍뎅이를 찔러 죽인 일이 있는 퍼얼은 강한 질투를 느꼈다. 그러나 어느 날 퍼 얼은 개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수커미를 죽일 수 있었다. 이 싸움은 상당히 힘겨운 싸움이었다. 낮은 지대에서 올라온 지 하루가 지났는데 도 거미는 밤 사이에 얼기는 했지만 아직도 기운이 남아 무서운 기세 로 달려들었다. 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퍼얼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 를 일이었다. 이때 퍼얼은 개의 역할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점점 안정되어 갔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퍼얼과 사야는 먹을 것을 찾아 개와 함께 길을 떠났다. 이른 아침의 사냥은, 곤충이 추위에 얼어 있기 때문에 손쉽게 잡을 수 있다. 별로 싸움을 하지 않고 죽일 수 있을 때도 많았다. 그 아침, 그들은 기분 좋게 전진했고, 개는 풀속을 즐거운 듯이 뛰 어다녔다. 개가 이상한 괴물을 본 것은, 그들이 사는 동굴에서 8킬로 쯤 떨어진 곳에서였다. 퍼얼과 사야는 창을 들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괴물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전처럼 겁을 내지 않았다. 지금은 개가 있는 것이다. 개들음 무서운 하늘가재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맹렬하게 짖어 댔다. 하늘가재는 그리 큰 괴물은 아니었다. 몸통은 1 미터 50센티 정도였지만, 무시무시한 턱이 몸통에서 1미터나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 거대한 낫과 같은 집게를 크게 벌려 휘두르고 있었다. 그놈의 발 에는 날카로운 비수 같은 가시가 돋아나 있었다. 퍼얼은 급히 싸움에 뛰어들었다. 하늘가재의 거대한 턱은 사람이나 개의 몸통을 단번에 물어 끊을 수 잇는 것이었다. 그놈의 배에 달려 있는 숨구멍에서는 숨울 쉴 때마다 피리 소리 같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놈은 맹렬한 기세로 개들에게 다가들고 있었다. 퍼얼과 사야는 개들처럼 흥분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낮은 지대 에서도 이런 괴물은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이 개와 합세해서 그놈을 죽이려고 하고 있을 때, 10킬로쯤 떨어진 곳의 높이 3백미터 공중에 은빛 물체가 아무런 받침도 없이 떠 있었다. 퍼얼과 사야가 싸움을 시작했을 때, 그 은빛 물체는 방향을 바꾸어 빠른 속도로 그들 가까이로 날아왔다. 그것은 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퍼얼과 사야는 까맣게 모르고 있 었다. 밝은 대낮에 하늘을 쳐다볼 이유도 없었으며, 더구나 괴물과 싸 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퍼얼은 하늘가재에게 다가서며, 창으로 몸통 있는 데를 찔렀다. 그 러나 창이 빗나가 하늘가재는 퍼얼에게로 돌아섰다. 사야가 얼른 외투 를 휘둘러, 큰 적이 다른 곳에서 공격해오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괴 물은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이때 퍼얼은 뒷다리 하나에 창을 꽂았다. 괴물는 곧 절름발이가 되었다. 개가 달려들어 그 다리를 물어 뜯었 다. 퍼얼은 다시 괴물의 눈을 찔렀고, 그놈은 큰 비명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사야는 다시 외투를 휘둘러 괴물의 방향을 바꾸게 하고는, 용 감하게도 갖고 잇던 짧은 창으로 찔렀다. 그것이 또 다리에 맞아, 괴물은 다리를 세개나 잃고는 허위적거리다 가 땅바닥에 들어 누웠다. 그리고는 그 거대한 턱을 이리저리 움직였 다. 퍼얼은 재빠르게 노출된 신경절을 찔렀다. 괴물은 그 순간 뻗고 말았다. 퍼얼과 사야가 서로 바라보며 미소지었을 때, 굉음과 더불어 나무들 이 꺽이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두 사람은 깜작 놀라 돌아다 보았다. 개가 마구 짖어 댔다. 무옷인가 거대한 것, 참으로 거대한 물체가 불과 2백 미터도 안 되 는 거리에 착륙하고 있었다. 그것은 금속으로 만든 물체로서, 옆에 창 문들이 달려 있는게 보였다. 퍼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 다. 이 행성에 인간이 40세대쯤 살아 오는 동안에 처음으로 착륙한 우 주선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출입구가 열리고 사나이들이 나왔 다. 퍼얼과 사야는 마치 야만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우주선에 서 나온 사람들은 지금 풀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사람이 개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 이 개와 함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문명이 존재하고 있다 는 증거인 것이다. 더구나 개는 대단히 높은 수준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개들은 우주선이 착륙한 데로 달려가서, 그 속에서 나온 사람들의 냄새를 조 심스럽게 맡아 보고 있었다. 개들은 새로 나타난 사람들에게, 개로서 는 가장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한 사나이가 개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태도는 무섭지 않았으 며, 개를 상대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퍼얼과 사야는 인사성 밝은 아이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본 것처럼 흐믓함을 느끼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 우주선은 워피호라고 했다. 사냥을 나왔다가, 생물학적 조사를 하기 위해 우연히 착륙했던 것이다. 이 우주선이 착륙한 순간부터 이 행성은 잊혀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 다. 제 14장 : 새로운 문명. 조사선 테네이시스 호가 맨 먼저 이 행성에 착륙했었다. 그 다음에 는 오라나 호가 왔었으며, 몇 세기 뒤에 로드렛드 호가 착륙했었다. 그로부터 이 혹성은, 워피 호가 도착할 때까지 잊혀지고 있었던 것이 다. 워피 호의 도착은, 이 혹성에 관한 준비작업 기록 카드가 분실된 채 몇천 년 동안 잊혀지고 있었던 일처럼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누군가 이곳과 태양과의 거리를 생각하여, 이 행성이 요긴한 곳임을 알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행성을 방문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깨달 은 것이다. 그래서 워피 호는 항로를 바꾸어 착륙해 보기로 했던 것이 다. 그들은 이곳에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으며, 심상치 않 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아주 원시적인 무기를 갖고 있으며, 야만스러운 복장을 하고 잇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도 그렇지만, 40세대가 흐르는 동안 우주의 언어가 많이 달라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퍼얼과 사야가 고대의 언어만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 간 난처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워피 호에는 교육 기계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교육 기계는 단순히 아이들에게 기초적인 교육을 시키기 위한 표 준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기계에 구ㅡ만 한 프로그램을 짜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것이다. 바르게 말하는 방법, 읽는 방법, 그리고 수학과 위생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 등... 그리고 어디에 가더라도 인간으로서 알아 둘 필요가 잇는 것을 가르 치는 기계였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전에 그것을 사용하여 그러한 지식을 쉽게 습득하는 것이다. 그 교육 기계를 어른들이 필요로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퍼얼과 사야에게는 필요한 기계였다. 우주선에서 내린 사람은 퍼얼을 우주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정중 한 태도로 기계에 장치된 모자를 쓰도록 권했다. 퍼얼은 경계하는 마 음보다는 호기심에 앞서 그 모자를 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는 자기가 지금 새로운 말과 놀라운 사실을 알아 가고 있음을 깨달았 다. 그리고 두통을 느꼈다. 그는 잠시 동안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은 두통을 느꼈지만 잘 참고 견디었다. 그리고 사야에게도 교육 받을 것을 권했다. 잠시 머리가 아 픈 일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로운 말과 지식을 얻는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야도 순순히 응해 교육기계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퍼ㅗ얼과 사야는 좀 서투르기는 했지만, 워피 호에 타고 잇는 우주인들과 즐겁 게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워피 호의 우주인들은 개의 도움과 창을 사용해서 거대한 곤충을 죽 였다는 데 대해서 크게 흥미를 가졌다. 그들도 그러한 사냥을 하고 싶 었던 것이다. 퍼얼의 일행들도 차례차례 우주선 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새로 나 타난 우주인 친구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윽고 우주선 격납고에서 비행기가 내려졌다. 그리고 퍼얼은 교육 기계의 덕택으로 이제 어엿한 문명인이 되어 있었다. 물론 우주인 만 큼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우주에 대한 지식을 추측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우주인이 퍼얼을 비행기에 태웠다. 비행기는 구름 바다를 뚫고 퍼얼이 전에 살던 낮은 지대에 내렸다. 타고 온 세 사나이는 거 대한 곤충들을 찾아 즐거운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퍽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퍼얼과 그 일행 말고도 이 행 성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역시 퍼얼의 일족처럼 거대한 곤충에게 위협을 받으며 원시적인 상태에서 간신히 살아 남아 있었다. 비행기는 그들을 몇 사람씩 나누어 태워 고원으로 운반했다. 그러한 수송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워피 호의 우주인들은 근대적인 무기를 가지고 사냥에 열중했다. 지구의 시간으로 워피 호는 두 달 동안을 이 고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돌아갈 때 그들은 세계의 어느 사냥꾼도 부러워할 굉장한 전리 품을 싣고 떠났다. 퍼얼들에게는 무기와 비행기와, 그리고 많은 책과 도구를 남겨 주고 갔다. 우주인의 친구들이 두번째로 찾아왔을 때, 고원에는 작은 거리가 이 루어져 있었다. 또 한 삼백 명 정도의 사람들은 모두 교육 기계의 덕 택으로 문명인이 되어 있었다. 문명인이 된 탓으로 그들은 아무 고생 도 치르지 않고 문화적인 집과 위생 시설을만들어 놓을 수 있었다. 세번째로 온 우주선은 더 많은 무기를 싣고 왔다. 이 행성의 나방의 털가죽과 바꾸기 위해서였다. 은 하의 그 많은 별 중에서, 이 행성에 사는 나비의 날개와 나방의 털가죽만큼 크고 아름다운 것은 없었기 때 문이다. 네번째로 온 우주선은 무역선이었다. 거대한 나방의 털가죽과 나비 의 날개는 여러 행성의 사람들에게 대환영을 받았으며, 비싼 값으로 거래가 되기 때문이다. 이르테면 이 잊혀진 행성의 특산물이었던 것이 다. 어느 새 고원에는 천 명에 이르는 사람이 살게 되었다. 낮은 지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나방의 털가죽도 나비의 날개도, 그리고 멋 진 장식품이 되는 곤충의 가죽도 손에 넣을 방법이 없었다. 딴 별에서 온 사람이 제멋대로 낮은 지대로 내려가면 돌아오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퍼얼은, 경험 없는 자가 구름 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 을 금지한다는 법률을 정했다. 이 행성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법률이었 다. 퍼얼의 일족들은 누구나 낮은 지대로 내려가고 싶어했다. 물론 곤충 과 나비 등을 잡는 것이 좋은 벌이가 되기 때문이었지만, 그 보다도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을 죽이며 못살게 굴던 괴물을 죽이는 일이 유 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기들 일족이 아닌, 모르는 사람을 찾아 내어 햇빛이 빛나는 고원으로 데리고 오는 일이 즐거웠다. 이렇게 되어, 이 잊혀진 행성은 이제는 잊혀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 다. 이 행성의 이름은 은하계의 우주에서도 가장 유명했졌다. 이곳의 인구는 많지 않았지만 살아 가기에는 즐거운 곳이었다. 그리 고 퍼얼을 중심으로 하여 삶을 이루어 나가는 거리는 어느더 이 행성 의 서울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이 서울 사람들은 낮은 지대에 살고 잇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아직도 나방의 털가죽과 나비의 날개로 몸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쉬지 않고 비행기로 구름 바다 아래로 내려갔다. 괴물에게 쫓기는 미 개한 사람들을 구해 내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사냥도 했다. 그들은 낮은 지대로 갈 때면 지난 날 그곳에 있을 때의 복장을 몸에 걸치고 갔다. 낮은 지대에 살아 남은 사람들이 그들을 본다 해도 같은 족속임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낮은 지대에서 사람을 만나 데리고 오면, 먼저 교육 기계의 힘으로 자기들과 같은 문명인으 로 만들었다. 이렇게 문명인이 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다시 구름 바다 아래로 내려가서 사냥을 햇다. 자기들이 쫓겨 다니던 장소에서, 자기들을 잡 아먹던 괴물들을 사냥하게 된 것이다. 낮은 지대에서 아직도 괴물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들을 찾는 일은, 그것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때라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사람은 찾 지 못해도 사냥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흰 나비의 날개는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고, 보잘것 없는 종류라 할지라도 비싼 값으로 팔렸다. 하다못해 모충의 털가죽까지도 이 행성의 것이 된 우주선에 실려 나갔다. 그것들은, 다른 행성에서는 다이아몬드 등의 귀금속과 마찬가지로 대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사냥은 멋진 스포츠로서 각광을 받았다. 이리하여 이 행성은 스포츠맨들의 낙원이 되었다. 이 무렵 퍼얼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다른 행성에서 온 방문객들 은, 이 행성의 대통령을 만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또한 다른 별에서 찾아온 스포츠맨들은, 혼자서 낮은 지대로 내려가 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고서는 모험심마저 일으켰다. 방문객들은 공중에서 비행기만한 곤충이 날아다니고 잇는 것을 보아 도 그리 놀라지 않았지만, 퍼얼의 일족이 거미를 죽이는 것을 보고는 몹시 놀랐다. 더구나 방문객들에게 그 괴물 같은 거대한 거미와 싸우 라고 하는 데는 기절을 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퍼얼과 그 일족으로서 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거미를 죽이는 편이 다른 곤충을 죽이는 것 보다 더 흡족했던 것이다. 언젠가는 스몰 6 행성의 대통령이 사냥을 위해 퍼얼의 행성에 찾아 왔다. 스몰 6 행성은 문명이 대단히 발달한 행성으로서, 그곳 사람들 음 모두 평화롭고 온순했다. 그 대통령은 머리털이 희끗희끗한 중늙은이였지만, 사냥을 몹시 좋 아해서 아직도 젊고 건강한 퍼얼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퍼얼과 사야는 멋진 집에서 살고 있었으며 지금은 아이들도 여럿 되 었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기꺼이 맞이했다. 더구나 한 행성의 대통령 이 스포츠맨으로서 방문해 왔으니 대환영이 아닐 수 없었다. 스몰 6 행성의 대통령은 소탈한 퍼얼 부부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개 방적인 분위기에 부담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마리의 개가 값을 매길 수도 없는 훌륭한 나방의 털가죽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 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진짜로 놀란 것은 사냥길에서였다. 스몰 6 행성의 대통령과 퍼얼 대통령은 서로 마음이 맞아서 사냥을 갔는데, 낮은 지대에 비행기가 착륙하자 퍼얼 혼자서 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무기라고는 창 하나만을 들고 뛰어나가 거대한 코끼리 같은 거미와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퍼얼은 물론 거미를 죽였다. 그러나 스몰 6 행성의 대통령은 기절을 할 만큼 놀랐다. 그런 스포츠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스포츠라고 는 하지만, 한 행성의 대통령이 하기에는 너무나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야는 나중에 그 말을 듣고, 퍼얼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스 몰 6 행성의 대통령에게 말했다 한다. 원작 : 라인스터 옮김 : 이 인석 타이핑 : 이 상복 거의 3개월이 걸린것 같군요. 끝나기까지... 여러분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보시는지 한 번 평을 듣고 싶습니다. 그럼 이만... -44014401- 추신 : 준현아! 끝났다. 이제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