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과거> 이기훈 I-473호는 텅빈 조립실에 덩그라니 놓여진 수술대에 묶여 있었다. 수술대의 바닥은 차가웠고, 천장에서 여러개의 전자 램프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I의 눈빛은 전혀 촛점이 없이 덩그라니 램프의 불빛만 반사하고 있었다. 이런 정적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한 쪽 편의 벽이 부드럽게 갈라지더니, 흰 가운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I, 대답해라. 자네는 누구지?" "............... " 수술대 옆에 둘러선 여러 사람들이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아직 새로 조립된 신체와의 적응이 제대로 안된 듯 하군요." "글쎄, 그런가봅니다. 혹시 재생된 로봇회로라서 문제가 생긴건 아닌 가요? 언젠가 기억이 말소된 로봇이 말썽을 일으켰다는 소릴 들은 적 이 있었는데, 혹시 이 로봇이 그 로봇은 아니겠죠?" "글세요, 아시다시피, 지난 번 연구센터의 해커 침입으로 관련기록이 파괴되었으니까요. " "그렇군요. 가서 <얼음 칵테일>이나 한잔 합시다. 이번에 달 얼음광산 에서 들여온 얼음 몇 kg을 구했거든요." 모두들 나간 사이, <달>과 <얼음>이란 말을 듣자 I의 눈동자에 떨림이 있었다. 그리고 벨트에 묶여 있던 몸이 조용히 요동을 쳤다. 이때, 갑자기 I의 눈 앞에 한 여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꿈인 듯 생시인듯 모르는 희미한 시야에 꿈결같은 모습을 드러낸 그 여자가 이렇게 물었다. " 다시 돌아왔군요. 그렇게 숨어살기가 힘들던가요. 달의 얼음광산에 까지 보내드렸는데, 결국 이렇게 잡혀오시다니..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 이번에는 기억재생 회로가 작동을 할지 모르겠군요. 수십만 볼트의 순간전압이 기억을 지워버렸으니.. 강철로 된 문을 생각하세요. 제발 기억해요. '강철 문' . '강철 문' " 강철.....문.... 꽈르릉..... I가 이 말을 중얼거리자 온 몸이 격렬히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몸이 축늘어졌다. Word Search <달 & 얼음광산> , ..Memory Site <강철 문> { 로봇 I에게 자네가 이 보고서를 불러낸다면 자넨 아마 모든 기억을 잃고, 전혀 다 른 삶을 수동적으로 살고 있을 걸세. 어쩌면 자넨 지금 얼굴도 신체도 모두 바뀌어 있겠지. 나는 지금 지구로 가는 우주선 안에서 그 동안의 모든 기억을 간신히 떠올렸네. 그래서 이번 탈출에 관한 기억을 '강철 문'의 기억장소에 간신히 저장하는데 성공했네. 쓰다보니 소설처럼 되 더군. 한 때는 어떤 문학전문 로봇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만. 아뭏든, 운이 좋아서 자네가 '그 사람'을 만났다면 제일 먼저 이 기억이 떠오를걸세. 자네는 이걸 알아야 하네. 내가 바로 자네야. 참, 그리고, 로봇 I,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만나게 되면 전해주게.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자유를 위한 갈망 그 자체로서도 나는 존재 하는 의미를 느꼈었다고. 그럼, 건투를 비네. - 로봇 I , 지섭 - (강철 문을 위한 보고서) 휴. 하마터면 천정에 가 부딪칠 뻔했다. 낮은 중력이 잠재의식까지는 내면화되지 못한 탓이었다. 달 얼음광산의 노동자들이 높은 침대에서 잠을 자다 몸부림치는 통에 천정에 얼굴을 부딪거나 옆으로 휙 내달아 떨어지 건 그리 드문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보통은 수면벨트를 하도록 되어 있지만 기질상 그걸 매려 들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자네 꿈을 꾼 모양이군. 무슨.." 침대 제일 아래 칸의 박노인이 기침을 쿨럭거리며 얘기를 걸어온다. "남의 일에 관심 가지지 마십쇼." 차갑게 말을 끊어버렸다. 노인의 잔소리나 들어주며 말상대를 해줄 기 분이 아니었다. 게다가 노인의 쿨럭거리는 소리는 맨 아래 칸 침대에서 들려왔기에 뭔가 땅속에서 들리는 소리같았다. 나는 땅속이 싫었다. 더 구나 달의 땅속은 더욱. 물론, 이 곳 숙소나 얼음광산 모두가 달의 땅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어쨋든 싫었다. 달의 땅속은 지표면보다 더욱 차가워서 파내려 갈수록 싸늘하게 식어 있는 것이다. 노인을 외면하는 기분으로 벽쪽으로 돌아누웠다. 벽에는 앞서 이 좁은 침대를 차지했던, 그리고 지금은 저 달반대편 우주공항의 로케트 밑에서 연소되었을 사 내들이 적어놓았을 낙서가 가득했다. 모두들 쉬쉬하지만 내버려 두면 몇 만년이고 썩지 않을 시체를 아까운 산소도 연료도 쓰지 않고 소멸시 킬 가장 효율적인 화장터는 그 곳일 것이 틀림없다. '케세라 세라.. 달이 그나마 쓸만한 건, 그 놈의 개가 없기 때문이다.' '클클, 우주인이여 나를 데려가라 ' '제길, 이 얼음을 태워먹을 방법이 없을까.' 우울한 낙서들. 뭐가 그리들 미련이 남아서 여기까지 흘러와서 끝까지 이리들 잡소리를 늘어놓다가 흩어졌을까. 여기 달 얼음광산에 온 자들 은 모두들 한 두 가지 가슴저린 사연이 있다. 세상 싫어진 사람이 죽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가장 먼 곳.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아서 언제나 지구를 향하는 달 한 쪽면의 반대쪽. 말하자면 생전 다시는 지구를 보 지 않아도 되는 태양계내의 유일한 곳. 밑에 밤새 앓는 소리를 하는 노 인도 바로 그런 곳이 여기 얼음광산으로 찾아온것이겠지. 그를 지구에 서 내몬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제길, 그런 건 어때도 좋다. 왜, 왜. 나는 그 모든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벽 한 구석에 그려진 거미가 꿈틀 거리는 것 같다. 아까 들이킨 독한 술이 아직도 깨지 않는 걸까. 그래, 자자. 다시 잠이 들자. 나는 정말 이 곳을 떠나고 싶다. 기상 사이렌이 울렸다. 모두들 각 취침구역에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 고 어기적거리며 나왔다. 식당에는 수천 명의 부시시한 사내가 사방에 서 벅적거리고 있었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수프를 떠먹자니, 어느새 옆에 박노인이 따라와 있다. "오늘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겁니까?" "날 속일 생각 말게. 자네 오늘 여기를 뜰 생각 아니던가." "...." "걱정말게, 자네가 잠꼬대라도 그런 소리를 입 밖에 내뱉은 적은 없었 으니." 나는 노인을 묵살하고 아침을 먹는 시늉을 했다. 이 곳 얼음광산의 식 사는 질리기는 하지만, 언제나 질이 좋다. 영원히 지구로 돌아가지 않 고 평생을 여기서 보낸다는 서약을 하고서 반 죄수같은 생활을 하는데 비해, 그 나마 식사나 제반 시설이 견딜만한 것은 다 99.99999%의 고청 정도 얼음을구해다가 식수로 녹여 쓰는 지구의 소수의 특권층의 사치 덕이었다. "이보게, 젊은이. 날 의심하지 말게. 난, 이제 죽을날이 다 되었어. 그래 서 한번쯤은 지구를 보고 싶네. 그 뿐이야. 자네가 오늘쯤은 월면을 가 로질러 우주공항으로 가려는 걸 아네. 자네를 따라 지구까지 갈 생각은 없다네. 다만 날 지구가 보이는 그 곳까지만 데려다 줘. 나도 뭔가 자네 에게 도움이 될 수 있네. 비밀리에 준비를 해두었다네." 까만 눈동자에 백발을 하고서 초라하게 눈 앞에 앉아서 수프를 들이키 고 있는 박노인. 아무리 보아도 교활한 구석이 없다. 하지만, 달을 장시 간 횡단해야 하는 이번 탈출에 노인은 짐이 될 것이 틀림없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합시다. 공항까지만이요. 지구까지 데 려갈 수는 없어요." 노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럼, 물론이지." 결국, 노인과 나는 그 날 오후, 우주복을 입고 얼음광산까지 가는 운송 되는 도중에 대열을 이탈했다. 생각해보면 참 허술한 운송체계였다. 지 하 벙커에서 하나 둘 우주복을 입고 나와서, 훤히 노출된 월면차에 몸 을 묶듯이 고정시키고 얼음광산까지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앉아있는 것이다. 가끔씩, 안전벨트가 끊어져 월면차가 돌부리에 부딪쳐 흔들릴 때 튕겨나가서 땅에 부딪쳐 죽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안전한 우주복이 라고 해도, 극저온을 견디게 해주는 열선조절장치와, 산소공급장치, 태 양광선 차단판 이 중 하나만 충격을 받아도 너무도 간단히 죽을 수 있 는 상황이다. 그래도, 일반죄수와는 달리, 우주에서의 복잡한 생활과 장비조작등을 감당할 수 있는 이른바 식자층이 좋은 의미에서 자치를 이루고 있는 얼음광산에는 어떤 식으로든 지구를 등지고 굳이 떠나온 한이 많거나 괴짜들인지라, 훤히 황금빛과 우주의 적막한 검은색이 조 화를 이루는 달 풍경이 훤히 보이는 그런 월면차가 좋다고들 해서 그대 로 운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뭏든 노인과 나는 월면차가 잠시 멈추 는 틈을 타서 '탈출'을 했다. 사실, 몇 몇이 우리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제지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이 곳 달 얼음광 산에서 나가는 걸 제지하는 규칙은 전혀 없다. 얼마든지 달을 나다녀도 된다. 다만, 지구쪽 월면으로 가는 수송편이나, 산소와 음식을 특별히 공급하지 않을뿐이며 생명을 보존해주지 않을 뿐이다. 만에 하나 달 반대편의 우주공항까지 자력으로 도달하는 이가 있어도 다만, 지구로 떠나는 공항을 통제하면 그 뿐이었다. 그런데 탈출을 한지 5분도 안되어서 월면차 한 대가 우리를 추적하고 있엇다. 놀란 내가 급히 숨으려는데 노인이 말렸다. 노인의 탈출을 도 우러 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알고보니, 얼음광산 소장의 아내였다. "선생님 정말 떠나시는 군요." "그래. 잘있게나. 허허. 내 걱정은 말고.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아. 뒷처리를 부탁해." "네. 이제 두 분은 사망처리 될 것이고, 월면차 한대는 1주일 동안 수리 상태로 들어갈 거에요. 어쩌면 남편이 문책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누구 짓인지는 못밝혀낼 거에요. 그리고, 이 월면차를 타고 가세요." 다행이었다. 달의 4/1을 가로지르는 2500킬로미터를 가로지르는데 월 면차는 비록 시속 15km이하의 느린 속도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탈출 이틀 째였다. 어느새 태양이 달 지평선쪽으로 기울어지는 바람 에 우주복의 차단창으로 봐도 이글거려보이는 열기가 좀 가셔진다. 우 주복의 외곽 온도가 105도를 막 넘고 있다. 하지만, 눈 앞의 <상실의 바 다>는 여전히 황금빛으로 아름답게만 빛나고 있었다. "자네 정말 모르고 있는겐가?" 아까부터 힐끔거려서 수상쩍다 싶던 노인이 그예 입을 열었다. 대답하 기 싫어서 모른 채를 했다. "숨겨봐야 소용없네.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밤마다 악몽을 꾼다 해서 로봇이 아닐수는 없지 않나. 그건 참 특이한 일이야. 로봇이 꿈을 꾸다니." " ...., 노인, 당신의 정체는 무어요?" "나? 허허. 얼음광산 노동자 아닌가..." 시속 15km로 용케도 <상실의 바다>를 툴툴거리며 가는 월면차위에 마 주 앉아서 둘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멀리 서덜랜드 분화구가 공기 도 없는 달답게 선명하게 햇살을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선명함은 일종의 살균된 선명함이었다. 숨을 곳도 없이 모든걸 내비치게 만드 는.. 나는 노인이 내던진 소리에 다시금 고민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잠 에서 깨어나니 어느날 얼음광산 노동자가 되어 있었던 일. 어느날 현실 과 꿈의 착란 끝에 손목을 예리한 얼음조각으로 긁었을때 나타난 기계 뭉치와 전선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 이런 것들을 새삼 떠올리게 만들었 던 것이다. " 난 그게 궁금하네. 자네를 프로그래밍 한 사람은 참 능력이 있고도 잔 인해. 자네 속에 꿈틀거리는 자유에의 충동은 자네에겐 형벌이 아닌가. 자넨 아마 수없이 탈출했다가 잡히고, 해체당했겠지. 게다가 자네를 끊 임없이 되살리고 있는걸세. 아니, 정확히는 자네의 기억이 실날같이 보 존되는 거겠지. 도대체 그의 목적이 무엇일런지.. " 휘청거리다가 나는 하마터면 월면차에서 떨어질 뻔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누구냔 말요? 당신이 말한 그 작자가 당신이군 요. 나를 프로그래밍 했다던.." 그 때멀리 피레네 산맥 위 쪽으로 서 월면추진선 하나가 급속한 속도 로 날아왔다. 달기지 우주공항과 얼음광산을 통틀어 단 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선체에 새겨진 문양으로 봐서 달 우주 공항의 것이었다. 노인이 소리쳤다. "어서 피해. 들킨 것 같아." 월면 추진선이 월면차 상공을 맴돌면서 건을 발사했고, 곧 착륙할 기세 였다. 이 때 연이어 또 한대가 나타났다. 둘은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얼음광산 쪽의 한 대가 달려온 것이다. 소장의 아내가 온 모양 이었다. 결국, 산맥 위쪽에서 기지 추진선은 폭발을 일으켰고, 그녀가 탄 우주 선도 불시착을 했다. 허겁지겁 간다고 갔지만 반나절이나 걸려서 간 그 곳에는 그녀가 탈출복을 입고 폭발한 추진선 근처에서 죽어가고 있었 다. "선생님의 정체가 결국 알려졌어요. 그래서 그들이 출동했고.... 제가 ...몇 명을 반대쪽으로 보내서 그들을 혼란시켰어요. 하지만, 폭발이 있었으니, 곧 이쪽으로 몰려올거에요. 어서 빨리.." 우리는 그녀의 유언에 따라 피레네 산맥의 정상에 그녀를 묻었다. 노인 은 몸조차 비틀거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결국 눈물은 보 이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꼼작않고, 무선교신도 거부하고 있는 노인 을 달래서 서둘러 월면차로 돌아왔다. 노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쓸모없 는 지구인생 말종의 한 노인인줄 알았는데, 정체라니.. "어찌 된 일입니까? 얼음광산 노동자 둘이 탈출했다고, 달기지 전체가 동원되다니.." "그럴 수 밖에. 내가 죽인 북미연합 요인들이 스물도 넘으니... 난 사라 진 동북아시아 한 국가의 테러리스트였다네. 그러다가 결국 지구 경찰 에 쫓겨 10몇년을 달에 숨어있었던 거지. 하지만, 이제 너무 늙었어." 꼬박 월면차로 강행군을 한지 며칠만에 달에 밤이 찾아왔다. 기온은 영 하 150도씨로 떨어졌고, 달은 칠흑같은 어둠에 잠겼다. 다만, 멀리 하늘 에 빛나는 별들만이 희미하게 깜박일 뿐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 다. 추진선의 공격을 받았던 월면차가 결국 고장이 났고, 저장되 있었 던 산소가 떨어진 것이다. 노인은 급격히 헐떡거리고 있었다. 노인은 죽어가고 있었다. 고민이었다. 나는 로봇일 것이다. 노인도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다. 손목에서 기계팔을 발견 했었지만, 신체의 일부만 기계로 대치되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고민 끝에 나는 산소를 몽땅 노인의 우주복으로 공급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질식감이 느껴졌다. 속은 것인가.. "정신이 드나?" 눈을 뜨니 노인이 나를 부축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죠? 제가 질식을 하다니.. " "아닐세. 자넨 질식을 한 게 아냐. 자네 몸은 산소가 없어도 돼. 다만 자네 두뇌회로의 공포감이 자네를 착각하게 만든거지. 인간속에 섞여서 지내려니 그런 회로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이제 난 틀렸네. 어짜피 이 정도의 산소로는 멀리 갈 수 없네. 내 말 잘듣게. 자넬 프로그래밍 한 건 내가 아냐. 아마 지구의 누군가겠 지. 자넨 지구의 로봇 재생소를 찾아가 봐야 하네. 탈출에 실패할때마 다 자넬 되살렸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거기에 있는 사람일거야.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니.." 노인은 심하게 헐떡거렸다. "그리고,.. 아직도 지구에는 많은 나의 동포들이 투쟁을 벌이고 있네. 그 들을 도와주게. 그 들더러 이 달로 이주해서 독립을 하라고.." 나는 우주복을 모두 벗어버리고, 노인을 업었다. 의식이 희미한 노인을 업고, 몇 시간을 걸었다.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으로 파란 달이 떠오르 는 게 보였다. 저 파란달이 이 노인에게 도대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 녔길래 여기까지 와서 저걸 보려 했을까. 노인은 이미 의식을 잃고 있 었다. 끝내 노인은 지구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여기까 지 왔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나를 달 반대편 얼음광산에서 여기까지 이끌어 왔을까. 그래, 노인의 말처럼 그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로봇재 생소의 그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지금 얼음 수송선이 지구로 떠나고 있다. 그렇게 지구를 다시 보고 싶어 했던 박노인은 이 얼음수송선의 로켓이 분사하는 고열의 추진기체 속에서 산산히 흩어져서 달의 이곳 저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을 것이 다. } 로봇 I는 충격을 받은듯 잠시 경련을 일으키다가 잠잠해졌다. 그리고, 좀전에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 사람'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자 신을 찾아왔던 '그 사람'은 허무하게도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로봇 I는 텅빈 벽에다 대고 자꾸만 이렇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당신이 누구건 간에." 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