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이기훈 긴 여행 이후 도착한 행성은 아름다웠다. 어쩌면 소멸해버린 문명과 생명체에 대한 나의 상상력이 묘한 정취를 자아낸 탓인지도 몰랐다. 스 크린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제네아 행성의 겨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구름에서는 직경 3 cm이상의 눈이 거의 퍼붓다시피 하고 있었고, 육지는 온통 눈으로 뒤덮혀서 곳곳의 계곡에는 빙하가 흘 러내리고 있었다. 첫 탐사대가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이 행성 표면의 두터운 얼음층 아래로는 화산재가 덮여 있었고, 그 밑으로는 놀랍게도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제네아 행성의 은하 탐사대가 발견 한 여러 개의 행성중에서도 유독 이 행성 X-37이 주목을 받는 이유였 다. 처음 제네아 행성 과학자들은 대체로 기후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 여서 대규모의 화산활동이 이 행성 문명소멸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 었다. 그러나, 곧이어 제 2의 탐사대가 다녀온 다음, 옅은 방사능의 흔 적과 두 개의 거대한 소행성이 충돌한 흔적을 보고하자, 모든 가설이 난무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최근에 주목을 받은 이론은, 이 행성 이 속한 항성이 순간적으로 소행성들의 충돌에 자극받아 대규모의 플레 어 현상을 일으켰으며 그 과정에서 대규모의 방사선 폭풍이 순식간에 이 행성 X-37을 덮쳤다는 주장이었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설이었지 만, 그 이론을 주장한 젊은 학자가 이 행성은 포유류가 지배생물이었다 고 주장하고 나서는 바람에 전체 이론이 심각한 반대를 받고 말았다. 어쨌든, 그런 과학자들뿐 아니라, 감성이 풍부한 제네아 행성의 소설가 를 포함한 각 쟝르의 예술가들의 관심도 대단했다.비록 흔적 뿐이었지 만, 은하탐사중 최초로 발견된 다른 생물의 문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과 경이의 광풍 속에서 나도 이 춥지만 아름다운 행성에 발 을 디디게 된 것이다. 도착후, 나는 즉시 1, 2차 탐사대가 예비탐사했던 지역중의 하나인 제 3 지구의 탐사지휘를 맡았다. 전체 5개 지구의 탐사는 악천후와 외계문 명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엇지만, 그래도, 우리팀이 맡은 제 3 지구의 복원작업은 순조로워서 부분적이지만 문헌분석을 토 대로 이 행성의 언어를 번역하는 수준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가장 경이 로운 발견이었던 것은 그 소장학자의 말처럼 이 행성 지배생명체가 포 유류였다는 것을 확인한 점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탐사대 모선의 뛰어난 컴퓨터 제네시스 2호의 능력에 힘입은 바 컸다. 아뭏든, 우리 팀 내 과학자들은 물론, 사회학자나 예술담당자들 까지도 경이에 찬 흥분 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언어분석은 완전하지 못하여서 중요한 몇몇 유물의 해석은 여전히 완전하지 못했다. 특히, 이 행성 문 명이 전멸하는 순간에 제 3지구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던 듯한 문서들 의 내용에 관해서는 아직도 큰 논란이 일고 있었다. 그 문서에서는 비 교적 커다란 크기로 '대한 독립 만세'라고 찍혀 있었던 것이다. 아무 래도 정보가 부족한 탓인지라 발굴작업이 계속되면서 모든 실체가 밝혀 질 듯하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첫째, 제 3지구내에 광범위하게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개체를 대상으 로 배포되었다. 둘째, 이 문서가 발견된 부분에는 언제나 여러 개체의 포유류가 군집 해 있었다. 세째, 중요한 종말의 시기에 제 3지구 내 여러문서들에 가장 큰 크기로 찍혀 있었다. 이런 점을 미루어 아무래도 '대한독립 만세'라는 상형문자는 임박한 이 행성의 종말을 안타까워하는 어구임에는 모두의 해석이 일치하고 있었 다.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은 두 개의 커다란 소행성의 충돌흔적과 이 곳 태양계의 태양의 백여년전의 갑작스런 대규모의 에너지 분출흔적을 미루어 볼때, 행성 X-37의 지적 생명체가 자신들의 재난을 예측했으리 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팀이 제 3지구를 복원해감에 따라 속속 그 반증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간신히 발견된 문서의 잔해를 분 석한 결과, '이별', '끝', '암흑' 같은 단어는 행성의 종말을 상징하는 단 어임이 밝혀졌는데, 제 3지구에서 출토된 한 생명체 화석에서 발견된 문서는 그들의 언어로 쓰여진 다음과 같은 어구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 이다. '... 오늘 사랑하는 당신이... 이별을..... 내 곁을....... 세상은 이미 끝이자 종말..' 아뭏든, 이 행성의 원주민( 문명의 발달 정도로 미루어 '생물'이라기보 다는 원주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들은 다가오는 소 행성의 충돌과 때 맞추어 일어난 태양의 대규모의 플레어 분출 현상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두를 고민스럽게 한 것은 제 2지구 내의 행성 X-37의 세 번째 높이의 산 최고봉에서 한 원주민의 '완벽한 화석'이 발 견된 점이었다. 지금까지의 발굴작업은 원시 군집생물학자의 분석에 따 라 평지에서 주로 이루어졌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예외라고 간단히 설 명될 문제같았다. 어떤 과학자는 우리 제네아 행성의 수중포유류와 같 이 행성자계의 영향으로 감각기관의 이상이 생겨서 높은 산봉우리로 가 게 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어떤 생태학자는 원주민 중의 일부종류는 공 기압력이 낮아야만 살 수 있는 부류가 있을 거라고 추측을 했다. 혹은, 어떤이는 행성의 종말을 예감하고 자살을 하기위해 먹이가 없는 높은 산을 올랐다고 열심히 의견을 제시하는 이도 있었다. 모두 일리가 있었 다. 어쩌면 그 모두가 설명이 될 수도 있었다. 아뭏든, 이 원주민의 화 석은 의외로 제네아 행성의 숱한 예술가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했 다. 그리고, 그 중에는 이 행성의 낮은 문명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형이상학을 부여한 소설이 등장하기 까지 했다. 그 소설의 첫머리는 이 렇게 시작한다. " 어찌하여 미개한 행성 X-37의 그 포유류는 눈 덮힌 해발 수천미터의 산을 올라야만 했을까. 먹이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 홀로이 오 르다가 행성 멸망의 순간에 정상을 밟은 그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어쩌면 그는 역설적으로 행성멸망의 순간에 절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 다. ...." 물론, 그 소설가의 상상력이 이 초라한 문명의 원주민에게 과다한 지성 을 부여한 결과였지만, 그 소설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 행성을 사랑한다. 긴 진화의 여정 끝에 막 문명이 꽃이 피우려는 찰나에 멸망한 이 행성과 원주민들은 제네아 행성 한 구 석에 평화롭게 살다가 이젠 식민지가 되어버린 수천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의 조국을 연상하게 하는 애절함이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이제는 떠나버린 그녀와의 그 모든 추억과 아픔을 떨치기에는 모든 제네아 행 성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있는 이 낯설고 머나먼 행성의 유적발굴 장소 가 내게는 오히려 가득한 위안이 되고 있다. 사실, 식민지 지식인이차 별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먼 변방행성의 탐사밖에 더 있겠는 가. 하지만, 나는 오늘도 이 눈과 화산재가 범벅이 된 이 행성 X-37을 사랑하며 마치 나의 과거와 미래를 파헤치듯이 발굴작업을 계속하고 있 다. 나는 이 포유류들이 종말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였으며, 어떤 인 생을 살았는지가 미친듯이 궁금하다. 어쨌든, 이 겨울행성의 탐사기간동 안에도, 우주의 한 구석을 스치는 시간의 물결은 나의 모든 상처를 감 싸며 도도히 흐를 것이다. 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