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에서 Student Body F.L. Wallace 윤태원 옮김 그들이 행성에 도착한 후 맞는 첫번째 아침이었다. 해프너 부장은 우주선에 서 걸어 나왔다. 아직은 동이 트지 않았다. 새벽의 어스름한 빛을 흘낏 쳐다 보던 해프너 부장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래졌다. 그는 즉각 안으로 돌아갔다. 3분 후 생물학자와 함께 그가 다시 나타났다. "어젯밤에는 위험한게 아무것도 없을거라고 하지 않았나?" 하고 해프너 부장은 물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나?" 다노 마린은 물끄러미 바깥 광경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고 당혹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는 어색한 웃음 을 지어 보였다. "이건 전혀 웃을 일이 아닐세.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생물학자는 우주선의 옆에 멈추어 선 채, 잠들어 있는 이주민들의 침상으로 부장이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애실 부인" 부장은 자고 있는 한 사람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며 뒤척이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러나 덮고 있던 이불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자기 전에 입었던 잠옷마저 어 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알몸이 된 자신을 발 견하고 놀란 여인이 보여줄 일반적 자세를 취했다. "괜찮습니다, 애실부인. 저는 여자의 알몸을 훔쳐보는 취미가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뭔가 좀 입으셔야 겠군요." 그때 쯤에 대부분의 이주민들이 잠을 깼다. 해프너 부장은 그들을 향해 돌 아서며 말했다. "우주선에 입을 만한 옷이 없는 분에게는 배급소에서 옷을 지급해 드리겠습 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리죠." 이주민들은 우르르 흩어졌다. 그들에게서 수줍음을 찾아보기란 대단히 힘들 었다. 설혹 한때는 있었다 하더라도 복잡한 우주선 안에서 1년반을 보내는 동 안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의 옷이 사라져버린 일은 사람들에게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그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일 중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 우주선으로 돌아가던 길에 해프너 부장은 잠시 멈추어 섰다. "뭐 집히는 게 없나?" 다노 마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있을리가 없죠. 당신이나 나나 이 행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는 마찬가지 니까요." "맞는 말이야. 하지만 자네는 생물학자가 아닌가?" 거친 이주민과 개척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과학자인 마린은 그동안 자신의 분야가 아닌 질문에도 수없이 답해와야 했었다. "야행성 벌레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비록 근거 없는 대답이긴 했지만 그는 과거에 메뚜기 떼들이 넓은 들판을 몇시간만에 휩쓸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인간을 깨우지 않고도 같은 일을 옷에 대해 할 수 있을까? "제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뭔가 발견하게 되면 알려 드리죠." "알았네." 해프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우주선으로 들어갔다. 다노 마린은 이주민들이 잠을 잤던 자그마한 숲속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거 기서 자도록 허용한 것은 실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는 그들의 요구 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18개월동안 복잡한 우주선에서 지낸 사람이라면 누 구나 신선한 공기와 머리위에 나뭇잎들이 나부끼는 광경이 보고 싶어지리라. 마린은 숲속을 살펴보았다.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남녀 이주민들은 우주선 안에서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잎들은 짙은 암녹색이었다. 종종 햇빛을 받은 흰색의 거대한 꽃들의 자태가 실제보다 크게 보이곤 했다. 지구가 아니므로 목련나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나무는 마린에게 목련처럼 보였고 이후로 그는 목련나무라고 생각했다. 사라진 옷의 문제는 아이러니칼했다. 생물 조사가 눈에 띄는 큰 실수를 저 지른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조사에 따르면 이 행성은 지금까지 발견 된 것 중 인간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곤충은 거의 없고, 위험한 동 물도 없으며 기후도 가장 온화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행성을 글레이드(숲속 의 빈터라는 뜻)라고 불렀다. 모든 육지는 넓고 쾌적한 풀밭이었다. 이 행성에 생물 조사가 빠뜨린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린은 무 릎을 꿇고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만약 곤충의 짓이라면 그 시체나 이주민들 이 돌아누울 때 뭉개진 흔적이 틀림없이 있을 터였다. 살아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곤충은 없었다. 그는 실망한 채 일어나 숲속을 이리저리 천천히 걸어다녔다. 나무일지도 몰 랐다. 밤 사이에 옷의 재료를 녹일 수 있는 기체를 발산했을 수도 있는 것이 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는 손으로 나뭇잎을 하나 따서 소매에 문질러 보았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그의 이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나무들을 통하여 푸른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지구의 태양보다 컸 지만 더 멀리 떨어져 있다. 글레이드에서는 지구의 태양과 거의 비슷한 크기 로 보였다. 그는 덤불 밑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반짝이는 눈을 거의 놓칠 뻔했다. 생 물학의 영역은 대기중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며, 덤불과 그 속에 사는 동물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다. 그는 위에서부터 덮쳤다. 그 놈은 찍찍거리며 도망쳤다. 그는 숲속을 벗어 난 곳까지 쫓아가서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집어올리자 그 놈은 몸을 웅크리며 덜덜 떨었다. 그가 부드럽게 말을 걸자 겨우 공포가 가라앉았다. 그가 우주선으로 데려가는 동안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 그의 자켓을 계속 물 어뜯었다. 해프너 부장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안을 노려보았다. 그것은 아직까 지 발견되지 않았던 동물로, 작고 덜 진화된 설치류처럼 보였다. 듬성듬성 나 있는 털은 뻣뻣하여 보기 싫었다. 아마도 털가죽 시장에는 결코 등장하지 못 할 것이다. "이 지역에서 모두 없애버릴 수는 없을까?" 해프너가 물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생태학적으로 본다면 말입니다." 부장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다노 마린은 얼른 설명을 덧붙 였다. "부장님은 생물학적 방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한 행 성이 발견되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다고 판정되면 장비를 갖춘 조사선을 보 냅니다. 우주선은 행성의 거의 전지역을 저공비행하면서 내부에 갖춘 장비로 행성에 사는 동물들의 신경의 움직임을 기록합니다. 그 장비는 곤충을 비롯하 여 두뇌를 가진 모든 동물들의 신경 패턴을 구별할 수 있죠. 어쨌든 그들은 행성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과 그 친척들의 분포를 알아냅니 다. 또한 조사선은 표본도 몇 개 채집합니다. 기록된 것과 실제 동물의 신경 패턴을 비교하여 확인하지 않는다면 기록된 신경 패턴은 단순한 낙서에 불과 할 테니까요. 생물 조사에 따르면 이 동물은 행성에 존재하는 네가지 포유류 표본중의 하 나입니다. 또한 가장 많은 종이기도 하죠." 해프너가 투덜댔다. "그러니까 우리가 놈들을 여기서 죽여서 없애면 주변 지역에서 또 몰려들 거란 얘긴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있는 이 반도에만도 수백만 마리가 있을 겁니다. 물론 대륙과 연결되는 좁은 지역에 방어막을 친다면 이 지역에서 없애는 것은 가능 합니다." 부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방어막을 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녀석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나?" 그가 거칠게 물었다. "못먹는 게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곤충, 과일, 채소, 견과, 선인장 그리고 곡물 등이죠." 다노 마린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놈들을 식충이라고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옷을 발견하 자 그것도 먹어 치웠으니까요." 해프너는 미소짓지 않았다. "나는 우리 옷이 충해를 입지 않는 줄 알았다네." 마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27개 행성에서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28번째 행성에서 소화액이 더 뛰어난 친구를 만난 거죠. 그게 답니다." 해프너의 얼굴이 해쓱해보였다. "우리가 심는 곡식에도 해를 미칠까?" "지금 당장 말하라면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우리 옷 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을 겁니다." 해프너가 결정을 내렸다. "알았네. 곡식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 놈들을 몰아낼 방 법을 찾아보도록 하게. 기숙사를 건설할 동안은 모두 우주선 안에서 자도록 하고." 마린은 독립 거주 유닛이 현재에는 더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식민지 건설 스케쥴을 짜는 것은 부장이었다. "식충이들은......" 하고 마린은 입을 열었다. 해프너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연구해보게." 말을 끝마친 그는 자리를 떴다. 생물학자는 한숨을 쉬었다. 식충이는 정말 괴상한 동물이다. 하지만 글레이 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면 이 행성에는 지상 동물의 종류가 극히 적다. 파충류는 존재하지 않고, 새는 아주 많으며 포유류는 겨우 네종류만 살고 있다. 비슷한 다른 행성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번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적인 기 후를 가진 글레이드에선 그렇지 않은 것이다. 왜 그럴까? 그는 이 문제에 흥미를 느껴 생물 방제 센타에 질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박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로 손을 뻗쳐 식충이를 들어 올렸다. 글레이드에 포유류가 사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평행 진화에 대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거의 유사한 환경이 주어지면, 비슷한 동물들이 진화하곤 한다. 지구에서는 석탄기 후반의 숲에서 식충이와 비슷한 원시 포유류가 나타나 온갖 종류의 포유류로 진화하였다. 글레이드에서는 그런 진화가 발생하지 않 았다. 무엇이 진화 가능성을 막아버렸을까? 그것을 알아내는 게 식충이를 없 애는 일따위보다 훨씬 중요했다. 마린은 식충이에게 바늘을 꽂았다. 녀석은 찍찍대다가 축 늘어졌다. 그는 식충이의 피를 뽑아 낸 다음 다시 우리에 집어 넣었다.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 는 동안 그는 그 동물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평상시 목소리도 충분히 큰데, 병참장교는 꽥꽥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게 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생물학자가 물었다. "직접 보쇼." 화가 난 목소리로 병참장교가 답했다. 마린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쥐의 흔적이었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병참장교가 끼어들었다. "그놈이 쥐와 비슷한 동물이라고 말하지는 마쇼. 나도 아니까. 내 질문은 놈들을 어떻게 없애냐는 거요." "독약을 써봤습니까?" "무슨 독약이 필요한 지 가르쳐 주면 쓰겠수다."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가 한번도 보지 못했고 알지도 못하는 동물에게 독이 되는 약물은 무엇일까? 생물 조사에 따르면 존재하지도 않는 동물이었다. 이것은 뜻밖의 심각한 문제였다. 현재의 이주민들은 새로 농사를 짓지 않아 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그러나 삼년후에는 새로운 이주민들이 도착한다. 현재 의 이주민들은 새로이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살릴 식량을 비축하기로 되어 있 다. 그들이 경작하는 농작물을 저장할 방법이 없다면, 결국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그는 창고의 끝까지 걸어갔다. 그것은 식민지의 초기에 건설되는 일반적인 건축물이었다. 심미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튼튼하다. 먼지가 쌓인 바닥은 일 인치 두께의 벽으로 보강되어 있으며 천장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은 분자 시멘트로 단단히 접착되어 있었다. 거기에 창문은 없고 문만 두개 있었다. 틀 림없이 설치류의 침입을 막을 수 있어야 했다. 자세히 조사해보니 뜻밖에도 균열이 있었다. 바닥은 유리처럼 단단하여 어 떤 동물도 침입할 수 없지만, 유리처럼 잘 깨지기도 했다. 창고를 건축한 작 자들은 지구에 빨리 돌아가는 데만 급급하여 여기저기의 바닥이 충분히 두껍 지 않다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무거운 장비가 얹혀 있었 던 장소의 바닥에 균열이 생겨 있었다. 굴을 파고 사는 동물이 침입할 수 있 는 장소였다. 다른 창고를 건설하느라 자재가 모자라기 때문에 수리하기는 힘들었다. 안 에 들어와 있는 쥐를 닮은 동물은 안에서 없애는 수 밖에 없었다. 생물학자는 몸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아있는 채로 몇마리 잡아서 보내주세요. 어떻게 할 지 알아보도록 하 죠." 다음날 아침에 연구소로 한타스 정도의 표본이 배달되었다. 그들은 정말 쥐 를 닮았다. 그들의 반응은 놀라왔다. 동일한 독약에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1분도 안되어 한 놈을 뻗게 만드는 화합물이 다른 놈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가 식충이를 잡기 위해 개발한 약물도 아무런 효력 이 없었다. 창고에서의 약탈은 계속되었다. 검은 쥐, 흰쥐, 회색과 갈색이 섞인 쥐, 짧 은 꼬리와 긴 귀를 가진 쥐...... 놈들은 집적해둔 식량을 먹어치우고 먹지 못하는 것은 엉망으로 망쳐버렸다. 마린은 부장과 함께 얘기하면서 그가 발견한 문제점을 강조한 다음 그가 생 각해낸 해결책들을 건의했다. "하지만 새로운 창고를 지을 수는 없다네." 하고 해프너가 주장했다. "원자 생성기가 조립될 때까지는 절대로 안되네. 그리고 조립된 다음에도 그게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아." 부장은 머리를 팔에다 파묻었다. "두번째 방법이 좋겠군. 하나 만들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도록 하지." "적어도 세대는 있어야 하는데요." 하고 생물학자가 말했다. "하나야." 해프너는 고집을 부렸다. "제대로 작동하는 지 알기 전에는 장비를 거기다 쏟아부을 수 없네." 그 점에서는 해프너의 말이 옳았다. 그들은 세척의 우주선에 싣고 올 수 있 는 장비만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장비를 가져오더라도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는 턱없이 모자랄 것이었다. 장비는 항상 부족했다. 그는 명령서를 엔지니어에게 전달했다. 도중에 그는 슬쩍 성능이 향상되도 록 설계도를 변경하였다. 그가 원하는 댓수를 얻을 수 없다면, 더 좋은 것을 얻을 수는 있을 터였다. 이틀 후 기계가 완성되었다. 그것은 조그마한 상자에 든 상태로 창고로 운반되었다. 상자가 열리자, 그 기계는 재빨리 뛰어나와 우뚝 선 다음 균형을 잡았다. "고양이로군요!" 만족한 목소리로 병참장교가 외쳤다. 그는 검은색의 털복숭이 로보트로 손 을 뻗쳤다. "쥐가 건드린 물건을 만진 적이 있다면 손을 치우는 게 좋을 겁니다." 하고 생물학자가 경고했다. "쥐의 모습이나 소리는 물론이고 냄새에도 반응을 보이니까요." 병참장교는 급히 손을 치웠다. 로보트는 저장된 물건들 사이로 조용히 사라 졌다. 일주일이 지난 후, 창고에는 아직도 쥐가 남아있었지만 더 이상 위협이 되 지는 않았다. 부장은 마린을 거주지구의 중앙에 위치한 작고 튼튼한 그의 사무실로 불러 들였다. 식민지는 점점 성장하고 있었고 도시로서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어 갔 다. 해프너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 식민지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 로 보고 있었다. "쥐를 잡는 일을 아주 잘해내었네." 하고 그는 말했다. 생물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진 않았죠, 여기에 쥐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만 제외하고요. 생물 조사에 따르면......" "생물 조사에 대해선 잊어버리게." 하고 부장이 말했다.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그는 뒤로 기대어 앉아서 생물학자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네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다네. 어쨌든 지금은 인력이 크게 모자라 는 형편이라서 말이야. 자네가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부장은 언제나 일손을 필요로 했고, 이 행성이 과잉인구로 허덕일 때까지 계속 그럴 것이다. 그는 항상 그의 부하들이 했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곤 했다. 다노 마린이 부장의 명령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그는 생물 방제 센타의 지시로 파견된 것이다. 하지만, 부장과 협력하여 일하는 편이 좋 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일은 아닐세." 하고 해프너는 말했다. 그의 한숨소리를 정확하게 해석한 것이다. 그는 미 소를 지었다. "우리는 굴착기를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네. 자네가 그것을 좀 사용해 주었 으면 하네." 그것은 그의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므로, 다노 마린은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음식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수입하고 있다네." 하고 해프너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자재를 운반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가 능하면 행성에 있는 자원을 이용해야 하지. 우리는 석유가 필요해. 앞으로 자 동차를 많이 사용해야 할텐데 자동차를 굴리려면 기름이 필요하지 않나. 물론 조만간에 합성 공장을 건설할 테지만, 유정을 발견할 수 있다면 상당한 도움 이 될거야." "부장님은 글레이드의 지질이 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닐 이유가 없잖나? 이 곳은 지구보다 좋은 쌍동이야." 아닐 이유가 없다고? 겉만 보고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된단 말이요. 이 곳은 정말 지구를 닮았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을까? 그러나 마린은 그의 생각을 말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글레이드의 역사를 알아낼 수 있는 좋은 기 회가 될 것이다. 해프너가 일어섰다. "자네가 준비되면 기술자가 굴착기를 꺼내는 것을 도와줄 걸세. 출발하기 전에 연락해 주게나." 굴착기는 이름과는 달리 굴착용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지도 않았고 땅을 파기는 커녕 1그램의 먼지도 팔 수 없었다. 굴착기는 지표 밑의 상태를 알아내는 장치이며, 관찰 가능한 깊이는 제한이 없다. 한사람이 일주일을 아 무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느릿느릿한 무한궤도 차량인 것 이다. 그것은 송신기로 거대한 초음파 발생장치와 초음파를 지하로 향하게 만드는 장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수신기는 원하는 깊이에서 반사된 음파를 모으는 커 다란 음파 렌즈와 이것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어 스크린에 그림으로 나타나도 록 되어있었다. 10마일의 깊이가 되면 화면이 흐려지지만 지층의 주요 구성물질을 알아내는 데는 이상이 없다. 3마일의 깊이에서는 화면이 더욱 깨끗해진다. 굴착기는 매 몰된 동전에서 반사된 음파를 수집하여 동전이 주조된 연도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나타낼 수 있었다. 굴착기는 지질학자에게는 생물학자의 현미경에 해당하는 장치이다. 생물학 자인 마린은 이러한 유사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반도의 끝에서 시작하여 지그재그로 대륙과 연결된 지협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능률적으로 반도 전체를 탐사했고, 밤에는 굴착기 속에서 잠 을 청했다. 셋째날 아침에 그는 석유의 흔적을 발견했으며, 그 날 오후에는 유전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석유를 발견했으므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화면이 꼭대기의 지층부터 차츰 아래를 보여주도 록 하였다. 거꾸로였다. 꼭대기의 처음 몇 피트에는 대부분 현재 존재하는 포유류들의 수많은 화석이 널려 있었다. 다람쥐 형태의 동물과 그보다 훨씬 큰 초식동물 은 숲에서 살았다. 평야에서 사는 두종류의 동물은 숲속에서 사는 극단적으로 다른 크기의 동물들의 중간 정도 크기였다. 약 2000년간에 해당하는 처음 몇 피트가 지나자 화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 다. 지구의 석탄기 후반에 해당하는 지층에 이르러서야 다시 화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는 각 시대에 알맞은 동물들의 화석이 나타났다. 그 깊이 아래서는 글레이드의 역사는 지구의 그것과 아주 유사했다. 몹시 당황한 그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동일한 탐사를 몇번씩이나 반복했 다. 결과는 항상 동일했다. 초기 2000년간은 화석이 존재하고 이후의 약 1억 년간은 화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생물학적 발전사를 추적하는 것 이 아주 간단했다. 약 1억년간 글레이드에 무언가 특이한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무엇이었을 까? 닷새째 되던날, 그의 탐사가 라디오에서 중계된 목소리에 의해 중단되었다. "들리나, 마린?" "네?" 그는 전송 스위치를 켰다. "얼마나 빨리 돌아올 수 있나?" 그는 사진으로 된 지도를 살펴보았다. "세시간이면 됩니다. 서두른다면 두시간 정도 걸리구요." "두시간 안에 돌아오게. 석유는 신경쓰지 말고." "석유는 이미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좋겠네. 돌아온 다음 의논하도록 하 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는 장비들을 굴착기에 다시 실었다. 그는 굴착기의 방향을 돌려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굴착기가 지나간 길에 먼지가 하늘높이 날아 올랐다. 그의 앞쪽에서 동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그 는 숲이 아주 작은 경우에는 비켜갔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부서진 나뭇조각 들을 뒤로 날리면서 돌진해갔다. 그는 거주지구의 옆에서 굴착기를 주의깊게 멈추었다. 창고가 있는 곳에서 시끌벅적한 움직임이 보였다. 트럭이 들락날락하면서 물자들을 바깥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는 창고의 한 구석에서 기술자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해 프너를 발견했다. 그가 다가가자 해프너가 돌아섰다. "마린, 자네의 쥐가 크게 자랐다네." 마린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로보트 고양이가 마루 바닥에 쓰러져 있었 다. 그는 무릎을 꿇고 검사했다. 강철로 된 뼈대는 부서지지 않았으나 심하게 구부러져 있었다. 튼튼한 플라스틱 가죽은 완전히 뜯겨져 나갔고, 내부의 민 감한 부속들은 씹혀서 뭐가 뭔지 알아볼 수도 없는 쓰레기더미를 이루고 있었 다. 고양이의 주위에는 어느모로 보나 지나치게 큰 쥐가 몇십마리 흩어져 있었 다. 고양이는 열심히 싸운 모양이었다. 죽은 쥐들은 머리가 없거나 다리가 부 러져 있었으며 모두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로보트는 중과부적이었 다. 생물 조사는 글레이드에 쥐는 물론이고 생쥐도 없다고 했었다. 왜 이런 실 수가 발생했을까? 생물학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틈이 전혀 없고 바닥을 2인치로 보강한 창고를 새로 지어야지. 파손될 우 려가 있는 것은 모두 거기에 저장할 걸세." 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하면 해결될 것이다. 물론 여기엔 시간이 걸리고 그들이 최근에 설치한 원자 생성기의 능력을 모두 쏟아부어야 할 것이 다. 다른 모든 건물들의 건축은 연기되어야만 한다. 해프너는 눈에 띄게 불쾌 해 보였다. "고양이를 더 많이 만드는게 어떨까요?" 하고 마린이 제안했다. 부장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문을 열었을 때 여기에 없었지 않나? 창고는 쥐들로 가득차 있었 네. 얼마나 많은 로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다섯? 열다섯? 나는 모르겠 네. 어쨌든 기술자는 고양이를 세대정도 더 만들 수 있는 부품이 있다고 하더 군. 저기 있는 것은 수리가 불가능하고."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으리라고 마린 은 생각했다. 해프너는 말을 계속했다. "만일 더 많은 로보트를 만드려면, 우주선의 컴퓨터를 분해해야 한다는군.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네." 당연한 말이다. 우주선은 다음 이주민들이 올때까지는 지구와의 유일한 연 결고리인 것이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우주선이 작동 불능상태에 빠지도록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해프너는 그에게 돌아오라고 했을까? 단지 현재 상황을 알려주려 고? 해프너가 그의 생각을 눈치챈 듯 했다. "밤에는 창고에서 꺼내온 물자에 조명등을 비출 생각일세. 새 창고로 식량 을 식량을 옮기기 전까지는 전기충격총으로 무장한 경비병을 세울 생각이고. 열흘 정도 걸리겠지. 그동안 속성 재배 작물들이 익을 걸세. 내 생각으로는 쥐들이 이 작물들을 노릴 것 같다네. 우리의 미래 식량을 보호하려면 자네가 가져온 동물들이 필요할 것 같아." 생물학자가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능한 부작용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시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물 을 풀어놓는 것은 위법입니다." "그러려면 10년내지 20년은 걸릴 걸세.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고 책임은 내 가 지겠네. 원한다면 공증이라도 하지." 생물학자는 어쩔 수 없이 압력을 받아들여야 했다. 토끼에 의해 재난을 겪 은 오스트레일리아나 달팽이들이 지배하게 된 행성의 비극이 재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렇게 큰 쥐에 대항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저항해 보았다. "호르몬이 있지 않나. 그걸 사용하게." 부장은 다시 기술자와 창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린은 후에 연구하기 위하여 죽은 쥐의 시체를 끌어모아 냉동고에 보관하 였다. 다음 그는 연구실로 돌아가 이주민들이 데리고 온 가축들에게 일련의 조치 를 취하였다. 그는 첫번째 주사를 놓은 후 동물들이 갑작스런 성장에 따른 충 격을 이겨내는 모습을 주의깊게 관찰하였다.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 자 그들을 양육기에 넣고 기르기 시작했다. 그는 쥐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쥐의 크기의 편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 에 주목했다. 쥐의 내장도 마찬가지였다. 내장의 모양은 정상적이었지만 그 크기는 비정상적으로 매우 다양했다. 그 이빨도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놈들 은 튼튼한 턱과 강한 이빨을 지니고 있었고 어떤 놈들은 튼실한 뼈대에 어울 리지 않게 작은 이빨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생물학자가 만나본 것 중에서 가장 뒤죽박죽인 표본이었다. 그는 현미경으로 조직을 관찰한 다음 결과를 도표를 만들었다. 각 개체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그를 생각에 잠기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생식 세 포들이 특히 이상했다. 날이 저물어 갈 무렵, 그는 소리 없이 작동하는 건설 장비가 만들어내는 진 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연구실 밖을 내다보자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곡식들의 탄화가 모두 끝나자 연기는 그치고 온기만 남아 하늘로 피 어 올랐다. 그들은 언덕위에다 건설 공사를 하고 있었다. 작은 동물들이 가장 취약한 식량 더미를 공격하기 위하여 덤불 사이를 살금살금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 다. 이주민들이 공사를 끝냈을 때 언덕 위에는 덤불이 -풀잎 하나도- 남아있 지 않았다. 과거의 농업 시대에는 테리어가 사냥견이었다. 그들은 작은 몸집을 설치류 에 대한 사나움으로 보충했었다. 그들은 원래 곡창지대와 들판에서 그들의 명 성을 쌓아왔었고, 이제 같은 상황이 벌어지려는 행성의 식민지에서 같은 역할 을 할 때가 되었다. 이주민들이 데려온 개들은 바로 테리어였다. 그들은 여전히 빠르고 설치류 사냥을 위해서 가장 알맞았으나 작지는 않았다. 어려운 작업이었으나 마린은 그들의 기술과 속도를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은 채 테리어들을 셰퍼드만한 크 기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쥐들은 속성 재배 작물들이 자라는 들판으로 이주해왔다. 그러나 이 작물들 은 이주민들을 위하여 심어진 것이다. 속성 재배 작물은 몇주만에 파종과 재 배 그리고 수확까지 끝낼 수 있었다. 한 장소에서 네 번 파종하고나면, 토지 의 양분은 고갈되고 만다. 그러나 식민 행성의 초창기에는 토지가 충분하므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속성 재배 작물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쥐떼를 향해 개들을 풀어 놓았다. 그 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다니며 쥐를 사냥했다. 덤벼들어 덥썩 문 다음 고개를 휘저으면, 쥐는 등이 부러진 채로 저만치에 털썩 떨어졌다. 그러면 개는 다음 목표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개들은 배회하며 살륙을 계속했다. 밤이 되자 쥐의 피로 범벅이 된 개들이 탈진하여 돌아왔다. 마린은 개들에게 생체 활성 인자와 양 분을 주사하고 상처를 치료한 다음 수면 주사를 놓아서 잠재웠다. 아침이 되 자 자극제를 주사하여 깨운 마린은 다시 전장으로 개들을 돌려보냈다. 쥐들이 낮에는 음식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이틀이 걸렸다. 그들은 밤에만 조금씩 떼를 지어 몰려오기 시작했다. 쥐들은 포도 덩굴에 기 어올라 열매를 물어 뜯었다. 곡물의 줄기를 꺾고 채소는 뿌리째 뽑아버렸다. 다음날 이주민들은 조명시설을 준비했다. 개들은 해가 떠있는 동안에 기어 나올 정도로 어리석은 몇몇 쥐들을 사냥하기 위하여 이주민들과 함께 순찰을 돌았다. 해가 지기 한시간 전에 마린은 개들을 불러들여 강제로 쉬도록 만들었다. 어두워지자 그는 비틀거리는 개들을 침상에서 불러내어 들판으로 내보냈다. 쥐의 냄새가 개들의 활기를 되살렸다. 예전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여 전히 활기차 보였다. 쥐들은 주변의 목초지에서부터 몰려왔다. 전처럼 혼자서 오거나 둘이나 셋 씩 짝지어 오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었다. 찍찍거 리고 풀잎을 짓밟으면서 들판을 향해 다가왔다. 어두워서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마린은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들판에 있는 거대한 등을 켜라고 명령했다. 쥐들은 밝은 불빛에 놀라 부산하게 주변을 맴돌았다. 개들은 몸을 떨며 으 르렁거렸다. 마린은 그들이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었다. 쥐들이 행진을 다 시 시작하자, 마린은 개들을 풀어놓았다. 개들은 공격하기 위해 뛰어들었으나, 쥐들의 본대에는 감히 접근하지 못했 다. 그들이 본대에서 떨어진 놈들을 몇몇 공격하자, 나머지는 더욱 튼튼한 대 형을 이루었다. 그 이후로는 쥐들을 공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적당한 장비만 있으면 이주민들이 뭉쳐있는 쥐떼를 불태워 버리는 것은 간 단할 테지만, 그들에겐 장비가 없었고 또 앞으로도 당분간은 갖지 못할 터였 다. 설혹 그들에게 장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소중히 보호해야할 작물까 지 함께 불태울 우려가 있었다. 결국 개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들판의 끝에 도달하자 쥐들의 대형이 갑자기 흩어졌다. 그들은 공통의 적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는 단결할 수 있었지만, 음식을 보게되자 단결이고 뭐고 잊어버린채 흩어진 것이다. - 굶주림이 적보다 더 무서웠던 셈이다. 개들은 즐겁게 추적을 시작했다. 그들은 굶주린 설치류들이 먹고 있는 동안 공격하여 하나씩 쓰러뜨렸다. 동이 틀 무렵, 쥐들의 위협은 끝이 났다. 다음 주에 이주민들은 곡식을 추수하여 저장하기 위한 처리를 하고 다음 파 종까지 끝냈다. 마린은 연구실에 틀어 박혀서 상황을 분석해 보았다. 식민지는 한가지 위기 를 헤치면 또다른 위기를 맞았다. 각 위기 자체는 별것 아니었으나 계속 쌓인 다면 식민지 건설이 결국 실패할 지도 모른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글레 이드를 식민지화할 때 필요한 장비를 그들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실패의 원인은 생물 조사에 있는 듯했다. 생물 조사는 지금까지 그들의 식 량을 위협해 온 골치덩어리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부장의 생각이 어떠하든 간 에, 생물 조사는 완벽하다. 생물 조사 결과 생쥐나 쥐가 글레이드에 없었다 면, 실제로도 없었을 것이다 - 적어도 조사가 행해졌을 당시에는.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쥐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냐는 것이 된다. 마린은 의자에 깊숙히 몸을 파묻고 벽을 바라보면서,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가설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그는 벽에서 눈을 돌려 숲에서 사는 다람쥐만한 크기의 동물인 식충이의 우 리를 바라보았다. 식충이는 글레이드에서 가장 흔한 동물이어서, 이주민들은 어디서나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식충이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놀라운 동물이었다. 평범하고 단 순해 보이지만, 이것은 인류가 자리잡은 수많은 세계에서 만나온 수많은 동물 들 중 가장 중요할 지도 모른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마린은 점점 더 확신하 게 되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식충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둠이 깔리고 식충 이가 그들의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정상적이라 고? 그런 단어는 글레이드에선 적용되지 않았다. 식충이가 그에게 한가지 해답을 알려주었다. 그는 나머지 해답을 알아야 했 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나 더 많은 자료와 관찰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거주지구의 가장자리에 장비를 주의깊게 설치했다. 바로 그 곳에 그가 원하는 정보가 있을 것이다. 그는 굴착기 안에서 전에 수행했던 조사를 검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들이 하나씩 모여서 마침내 하나의 윤곽이 그려졌다. 마린은 자신의 이론이 옳음을 확신하게 되자, 해프너를 찾아갔다. 부장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식민지의 목표가 달성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느 긋함의 반영일 것이다. "앉게나" 그는 사근사근한 태도로 말했다. "담배?" 생물학자는 담배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생쥐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해프너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네." "저는 쥐들의 근원도 알아냈습니다." "쥐들도 이젠 문제될게 없지 않나. 우린 잘 해내고 있다구." '과연 그럴까요'하고 마린은 마린은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 말을 꺼낼까 궁 리했다. "지난 이천년간 글레이드는 지구와 비슷한 기후와 지형을 지니고 있었습니 다." 하고 그는 다시 시작했다. "약 1억년 전에도 역시 지구와 비슷했었구요." 마린은 너무도 뻔한 이야기를 다시 꺼냄에 따라 부장의 얼굴에 조금 관심 어린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까진 명백한 이야기지요. 그 러나 결론은 아닙니다. "일억년 전과 이천년 전 사이의 기간에 글레이드에는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 다." 마린은 계속했다. "그 원인은 모릅니다. 우주 역사에 관련된 일이니 앞으로 영원히 모를 수도 있죠. 태양 크기가 갑작스럽게 신축을 반복했을 수도 있고 행성 내부의 힘의 평형이 깨졌든지 밀도가 다양한 성간(星間) 먼지를 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이 유가 어쨌던 간에 글레이드의 기후가 변화했습니다." "그 변화는 상상할 수도 없이 격렬했고 게다가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약 일억년 전을 전후하여 글레이드에는 석탄기(石炭紀)의 정글이 형성되어 있 었습니다. 공룡을 닮은 거대한 파충류와 자그마한 포유류들이 방황하고 있었 죠. 첫번째 발생한 거대한 변화가 지구에서처럼 공룡들을 전멸시켰습니다. 그 러나 식충이의 원시적인 조상들은 재빨리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했기 때문에 전멸하지 않았습니다." "기후가 어떤식으로 변했는지 간단히 예를 들어보지요. 몇년간 사막이던 지 역이 갑자기 정글로 변화합니다. 다시 몇년이 지나면 풀밭이 형성됩니다. 그 리고 이런 사이클이 계속 변화하면서 반복되는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이 식충 이 한마리가 살아있을 동안에 벌어졌습니다. 더구나 계속 반복되었구요. 대략 1억년간 이것이 글레이드의 정상적인 생활 환경이었죠. 이런 환경에서는 화석 이 형성되기 힘듭니다." 해프너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염려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후의 변화가 2천년전에 갑자기 멈추었다는 거로군. 다시 시작할 것 같은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생물학자는 고백했다. "관심이 있다면 알아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부장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관심이 있고 말고." 그럴겁니다 하고 생물학자는 생각했다. "요점은 생존이 대단히 힘들었다는 겁니다. 새들은 날아서 알맞은 기후대로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수가 살아남았습니다. 반면에 포유류는 한 종 류밖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자네의 이론은 정확하지 않군." 하고 해프너가 지적했다. "포유류는 다람쥐만한 놈에서부터 물소만한 녀석까지 네 종류가 있지 않 나." "한 종류입니다." 마린은 완고하게 반복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종입니다. 만일 커다란 동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 아지면, 소위 작은 '종'의 일부가 커다랗게 성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 종류의 식량을 구하기 힘들어지면, 거의 즉시 식량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종 으로 변화한 다음 세대가 나타납니다." "그게 생쥐였다는 말이지." 해프너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마린이 그의 생각을 완결시켜 주었다.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 생쥐는 존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은 다람쥐 모 양의 식충이에게서 생겨난 것이죠." 해프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쥐도?" "더 커다랗게 자라난 다음 세대죠. 결국 우리 인류도 하나의 환경이니까요. 그리고 그 동물들이 겪어본 것 중 아마도 가장 가혹한 환경일 겁니다." 해프너는 식민지를 통치할 수 있도록 훈련된 실용적인 인물이었다. 과학적 개념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돌연변이라는 얘기인가?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생물학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구에서라면 돌연변이일 겁니다. 여기서는 그저 일상적인 진화일 뿐이 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부장님에게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식충이는 지구의 다람쥐를 닮았어도 유전자나 염색체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도 분명히 유전성을 지니고 있 건만 도대체 어떻게 생체 특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기능이 어떻게 작용하던간에,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어떤 생명체보다도 외 부 조건에 빠르게 적응합니다." 해프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겠군."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였다. "물론 우리가 이 행성에서 모든 동물을 말살해 버린다면 얘기가 달라지겠 지?" "방사능 오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고 생물학자가 물었다. "그들은 더 지독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부장은 대안을 골똘히 궁리했다. "이 행성을 포기하고 놈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 지도 모르겠군." "너무 늦었습니다." 하고 생물학자는 말했다. "놈들은 이미 지구에도 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인류가 살고 있는 모든 행성에도 펴졌을 테구요." 해프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린이 생각했던 일들이 그에게도 떠 오른 모양이었다. 글레이드를 개척하기 위해서 세척의 우주선이 왔었다. 그중 한척은 만일을 대비하여 이주민들과 함께 남아있다. 두척은 모든 일이 잘 진 행되고 있으며 더 많은 보급 물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지구로 돌아갔다. 그 우주선에는 이 행성에서 채집한 동물들의 표본도 실려있었다. 동물들이 갇혀 있는 우리는 물론 견고하다. 그러나 더 작은 종이라면 빠져 나올 수 있으므로, 지금쯤은 우주선의 창고에 숨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 우주선들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우주선이 지구에 도착하고 나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까? 당분간은 힘들 것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종류의 쥐들이 창궐할 것이다. 새로운 변종이 발생한 것이라고 쉽게 설명할 것이다. 특수한 지식이 없다면, 쥐와 글레이드 에서 가져온 표본을 연관시킬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남아있어야 합니다." 하고 생물학자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연구해야 하고 또 가장 잘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구의 거대하고 복잡한 빌딩 군들을 생각했다. 그들을 모두 무너뜨리 고 쥐들이 물어뜯을 수 없는 재질의 것으로 대치하려면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수십억의 사람들을 행성 밖으로 이주 시킬 방법도 없다. 글레이드는 이제 식민지가 아니라 거대한 연구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 행성을 개척했고 동시에 열 혹은 그 이상의 행성을 -식충이들이 입힐 피해를 생각해 본다면- 잃은 셈이다. 목이 쉰 듯한 동물의 포효가 생물학자의 생각을 방해했다. 해프너는 고개를 홱 돌려서 창문을 노려 보았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닫고, 벽에 걸린 장총을 잡 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마린은 그의 뒤를 따랐다. 부장은 두번째 속성 재배 작물이 익어가는 들판을 향했다. 그는 자그마한 언덕 위에 멈추어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스위치를 '최대 충전'으로 돌리고 겨냥한 다음 발사했다. 들판에 있는 동물을 맞히기엔 너무 높았다. 녹색 채소 밭에서 한가닥 갈색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는 좀더 주의 깊게 겨냥한 다음 다시 발사했다. 총구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강렬한 에너지가 동물의 앞발을 강타했다. 그 짐승은 펄쩍 뛰어 올랐다가 도로 떨어졌다. 시체가 지글지글 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해프너가 죽인 동물 앞에 섰다. 무늬가 없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 것은 호랑이를 빼다 박은 것처럼 보였다. 부장은 놈을 발가락으로 툭툭 건드 려 보았다. "창고에서 쥐들을 몰아내자 들판에서 골치를 썩혔지." 부장이 투덜거렸다. "들판에 있지 못하게 개로 몰아대니 이제 호랑이까지 등장하는구만." "쥐보다는 쉽죠." 하고 마린이 말했다. "호랑이는 총으로 쏘아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그들이 기습했던 커다란 고양이 근처에 널부러진 개에게로 다가가서 허리를 굽혔다. 공포에 질려 멀리 달아났던 다른 개가 낑낑거리며 돌아왔다. 용감한 개였지 만, 호랑이에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애처롭게 낑낑거리며 자기 아내 의 얼굴을 핥았다. 생물학자는 만신창이가 된 개를 집어 들고 연구실로 향했다. "이미 늦었어." 해프너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개는 이미 죽었다구." "하지만 강아지는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개들이 필요합니다. 호랑이가 나타 났다고 해서 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해프너는 언덕을 올라가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안고 있는 팔 너머 로 늘어진 개의 머리가 흔들거리고 피가 옷으로 스며들어왔다. "우리가 도착한지 3개월이 지났네." 부장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개를 들판에 풀어놓은 지는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데 호랑이는 이 미 다 큰 놈이란 말일세.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마린은 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잠시 비틀거렸다. 해프너는 마린의 당황 한 심정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생물학자로서 그가 알고 있던 모든 이 론이 뒤집혔다. 진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한 세계에서의 유기 생명체의 역사이다. 그 세계외에서는 진화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인류는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많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 는 부분은 인류의 지식의 회색 지대로 남아 있다.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인 류의 무지가 거의 무한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생명의 탄생은 단순하다. 생명은 수없이 많은 행성에서 발생했다. 온순한 초식동물과 사나운 육식동물... 대부분의 동물들은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새 끼들이 자라서 성숙하면 다시 짝을 짓곤 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보냈던 그 날 밤을 회상했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 가 다른 장소에 있어서 그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도 글레이드의 동물들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결코 알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른 다. 그는 해프너에게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만일 생존 계수가 높고 덩치의 차이가 아주 크다면, 새끼들이 미성숙한 상 태로 태어나서는 곤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놈들은 완전히 성숙한 어른인 상 태로 태어나죠." 처음처럼은 아니었지만, 식민지는 꾸준히 발전했다. 속성 재배 작물의 재배 면적은 줄어들었고 대신 훨씬 다양한 곡물을 심기 시작했다. 새로운 건물들이 건설되고 그 속에는 물자들이 쉽게 검사할 수 있도록 넓게 퍼뜨린 상태로 저 장되었다. 강아지들은 살아남아서 성장호르몬의 덕택으로 1년도 안되어 완전히 성숙했 다. 적당한 훈련을 받은 후에 그들은 들판에 있는 늙은 개들과 합류했다. 쥐 들과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쥐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식민지가 감 당할 수 있는 정도로 조절할 수 있었다. 진화하지 않은 원래의 동물인 식충이는 전기 코드를 그들의 새로운 메뉴로 개발했다. 식충이를 막으려면 전원을 항상 켜두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전이 발생하고 시커멓게 탄 시체를 치워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승용차는 커버를 단단하게 씌우든지 견고한 빌딩 속에 주차시켜야만 했다. 골치아픈 동 물들의 수가 증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말살할 수도 없었다. 가끔씩 호랑이가 공격해오기도 했지만, 아주 컸기 때문에 손쉽게 총으로 죽 일 수 있었다. 호랑이가 밤에 출몰하기 시작하자 이주민들은 24시간 경비를 섰다. 불빛이 도달하지 않는 먼 곳에는 적외선 탐지기를 사용하였다. 호랑이 가 아무리 빨리 달려들더라도, 자신의 죽음만 재촉할 뿐이었다. 호랑이의 첫 번째 공격을 제외하고는 한마리의 개도 잃지 않았다. 호랑이는 모양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겉모습은 여전히 크 고 강력한 육식동물이었다. 그러나 호랑이에 대한 살륙이 계속됨에 따라, 마 린은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죽은 호랑이의 내부 기관이 갈수록 어려 졌다. 마린의 연구실에 마지막으로 운반되어 온 놈의 내장은 갓 태어난 호랑이의 그것이었다. 그 호랑이의 작은 위는 고기보다는 젖을 소화하는데 더 알맞을 터였다. 거기서 그렇게 큰 근육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은 기적에 가까왔다. 그러나 어쨌든 그 동물은 죽기 전 15분동안 살인적인 힘으로 격렬 하게 날뛰었었다. 의무실이 잠시 붐비긴 했지만 다행히 생명을 잃은 이는 없 었다. 그것이 그들이 사냥한 마지막 호랑이였다. 그 이후로 호랑이의 공격은 없었 다. 계절이 바뀌었지만 새로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식민지를 만드는 과정에 서 표출된 우주 문명이 그 전능수(全能獸 - 마린이 새로이 붙인 이름)들에게 도 너무 가혹한 환경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능수들은 과거의 파 멸적인 재앙을 겪고도 살아남았지만, 그들이 새로이 만난 환경은 너무 가혹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주민들이 착각을 하고 있을 지도...... 다음 이주민들이 도착하기 석달전에 새로운 동물의 흔적이 포착되었다. 경 작지에서 곡물들이 약탈당하기 시작했다. 육식동물이 아니었으므로 호랑이일 가능성은 없었다. 또 곡물이 약탈당한 형식은 설치류들이 하는 형태도 아니었 다. 이제 곡물은 중요하지 않았다. 창고에는 식량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동물이 더 큰 피해를 입히기 전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 다. 그 동물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낼수록 더 빨리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개는 쓸모가 없었다. 동물이 경작지를 배회하고 있었지만, 개들은 그 동물 을 공격하기는 커녕 거기에 동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이주민들이 다시 경비를 서기 시작하자 동물은 경비원들을 피해 다녔다. 경 비병들이 순찰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놈의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 다. 해프너는 순찰을 중지시키고 그 동물이 가장 자주 나타나는 지역에 경보 시 스템을 설치했다. 그 동물은 경보 시스템을 발견하자 경보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에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프너는 기술자와 상의한 끝에, 몸에서 나는 방사열에 반응하여 경보기를 제작했다. 옛날의 경보 시스템은 딴 곳으로 옮겨 설치하고, 새로 만든 경보기 를 그 장소의 땅에 파 묻었다. 이틀후 먼동이 트기 직전 경보가 울렸다. 마린은 거주지역의 끄트머리에서 해프너와 만났다. 그들은 모두 소총을 들 고 있었다. 그들은 자동차 소리 때문에 놈이 도망가지 않도록 걸었다. 그들은 한바퀴 빙 돌아서 뒤에서부터 경작지로 접근했다. 부대에 배치된 사람들에겐 비상이 걸려 있었다. 그들이 위험에 처하면 경비원들이 급히 출동할 것이다. 그들은 덤불 아래를 조용히 기어갔다. 놈은 들판에서 곡물을 뜯어 먹고 있 었다.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 개들은 짖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 더 가까이 기어갔다. 글레이드의 푸른 태양이 떠올라 그 동물 의 모습을 환하게 비추었다. 해프너의 손에서 총이 떨어졌다. 그는 자신도 모 르게 벌려진 입을 굳게 다물고 총을 다시 집어 들었다. 마린이 손을 들어올려 막았다. "쏘지 마십시오." 하고 그가 속삭였다. "내가 이곳의 지휘자야. 저 놈은 위험하다구." "예, 위험합니다." 마린은 여전히 속삭이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게 부장님이 쏘아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저놈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 다 더 위험합니다." 해프너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마린은 말을 계속했다. "전능수들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없자 생쥐로 진화했습니다. 우리가 생쥐를 막자 쥐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쥐를 사냥하자 호랑이로 다시 진화했구 요." "호랑이는 우리에게 가장 쉬운 상대였죠. 그러자 잠시 그들이 진화를 멈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멈춘 것은 아니었죠. 또 다른 동물, 부장 님이 여기서 보고 있는 저 놈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전능수들이 저놈을 만들어내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같은 진화가 지구에서는 백만년이 걸렸었습니다." 해프너는 총을 내리지도 내리려 들지도 않았다. 그는 그 광경에 완전히 몰 입한 것처럼 보였다. "모르시겠습니까?" 하고 마린이 언성을 높였다. "우리는 전능수들을 말살할 수 없습니다. 놈들은 이미 지구와 그 밖의 행성 의 거대한 도시의 저장창고에서 쥐의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을 겁니다. 인류는 지구에 사는 원래 쥐조차 멸종시키지 못했는데, 무슨 재주로 전능수들을 멸종 시킨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멸종시키려는 노력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겠지." 해프너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마린은 그의 총을 쳐서 떨어뜨렸다. "전능수가 만들어낸 쥐들이 우리의 쥐보다 우수할까요?" 그는 피곤한 듯이 물었다. "전능수들이 이길까요? 아니면 지구의 쥐들이 이길까요? 아니면 서로 평화 협정을 맺고 연합하여 인류에 대항하기 시작할까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전능수들은 생존 계수만 높다면 그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시겠나요? 진보가 일어난 겁니다. 호랑이가 실패하자 놈들은 이놈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가 저놈을 쏘아죽여서 이 진화도 실패했다는 사 실이 드러나면, 전능수들은 다음에는 과연 어떤 놈을 만들어 낼까요? 우리가 저놈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놈 다음에 나타날 놈과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동물이 이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천천 히 뒤로 돌아서더니 가까운 숲으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생물학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드럽게 불렀다. 그 동물은 급히 숲으로 달려가 나무 그늘 사이에 멈추어 섰다. 마린과 해프너는 총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무기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 여주기 위하여 양 손을 크게 벌리고 숲으로 접근했다. 그 동물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나왔다. 옷에 대해서 배울 시간이 없었기 때 문인지 벌거벗은 채였다. 마찬가지로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놈은 나무 에서 딴 흰색의 커다란 꽃을 평화의 상징으로 조용히 내밀었다. "어른처럼 보이긴 하지만 내부도 그럴 지 궁금하네요. 저 몸통 속에는 뭐가 있을까요?" 하고 마린이 말했다. "나는 그의 머리에 뭐가 들어있을 지 궁금하다네." 해프너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 놈은 정말 인간을 쏙 빼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