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0 이영수 (DJUNA ) [창작단편] 바벨의 함정 02/25 02:55 274 line (원래 이것은 내 만화 줄거리로 쓰려고 만든 것입니다. 하지 만 타고난 게으름과 실력의 부족으로 그 만화를 결코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죠. 만화와 잘 어울릴 수 있는 줄거리가 아 니란 것도요[이 줄거리로 그린다면 만화가들이 쓰는 은어로 소 위 '대갈치기'라고 하는 것을 끝도 없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충 정리해 여기 올립니다. 부족하지만 이해하시기를.) **********************바벨의 함정************************* 나는 그 지구인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나는 지독한체취 때문도,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필로인 동료를 무참하게 살해해버린 냉정함 때문도 아니었다. 심지어 내 손녀 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나를 끌어내어 이 황량한 행성 바흐시나 까지 납치해왔기 때문도 아니었다. 아마 그의 눈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눈 안에 감추어 진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어떤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광 기는 우리 행성의 주민들이 어느 정도 인정하며 찬양하기까지하 는 속인의 한계를 벗어난 자유로움과는 반대인,망집의 응결로 이루어진 속좁은 편집증이었다. "생각보다는 낮군. 기껏해야 30m 정도 밖에는 안되겠는데?" 그는 망원경을 눈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같 이 냉정했지만 눈에는 실망스런 표정이 배어있었다. 그가 보고 있던 것은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당신들의 단위로 약 15km쯤 떨어진 곳에 세워진 반구형의 구조물이었다. 이 산화 철로 붉게 물든 사막 행성에서는 그만큼 높게 솟아오른 구조물 을 찾기 힘들었다. 바흐시나인들은 지독한 기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 지하로 파고 들었지,위로 구조물을 쌓지는 않았다. "별거 아니군. 이집트도 여기와 같은 사막이지만 그곳 사람들 은 100m가 넘는 피라밋을 세웠어." 그가 투덜댔다. 난 이집트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여기만큼 기 후가 끔찍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바흐시나인들에겐 그만한 노동력을 동원할만한 절대정권도 없었다. "그럼 돌아갈건가,젊은이?" 나는 조용하게 물었다. 그는 갑자기 나를 우주선 벽에 밀어붙였다. 징그러운 핑크빛 손가락이 내 눈 앞에서 위아래로 오락가락했고,그의 입술이 픽 픽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렸다. 아마 적당한 협박 문구를 생 각 중이었겠지만 결국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입 닥치고 날 따라와,할멈." 그는 간신히 말했다. 나는 말없이 복종했다. 나는 지금 시꺼먼 재가 되어 모래 위 에 뒹굴고 있는 필로인처럼 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우주선 안에는 내 손녀가 감금되어 있다. 그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절대로 나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나를 우주선 착륙 지지대에서 열두 걸음 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도움으로 끌고 갔다. 도움은 바르나어로 사트나라는 이름 으로 불리우는 형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곳은 바흐시나 지하 도시의 입구였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계단이 안으로 이어져 있 었다. 계단은 자주 급한 각도로 꺾어졌고 오르내림도 잦았다. 사용의 편리함보다 습기 유지를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내려가 면 내려갈 수록 공기가 젖어왔고 기온도 내려갔다. 내려가는 계단이 끝나고 앞에 구불구불한 복도가 이어지자 그 는 주머니에서 투명 플라스틱으로 코팅한 종이 지도를 꺼내 펼 치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지도 위에는 모래알 만한 글자로 고대 바르나어 문장이 씌여져 있었다. "읽어." 그가 말했다. "'유브레임 아타 트와스,에트 바와르 위 비투 사트나,엘주 민 아흐반트. 트와임 다루 반시니 티투 로르드 임 두.'" 나는 그것 을 표준 은하어로 번역했다. "트와스에 이르기 위해서는 북 사 트나에서 출발해 아흐반트로 일곱 번 꺾어지라. 신의 여덟 손가 락이 그대에게 문을 지정해 줄 것이다.' '아흐반트'로 꺾어지라 는 말은,한 번은 왼쪽으로,다른 한 번은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식으로 움직이란 말이야. 당신네들의 말엔 '지그재그'란 말이 있지? 비슷해. 북 사트나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고." "트와스는 왜 번역하지 않지?" "고대 바르나어는 완전하게 해석된 말이 아니야,젊은이. 아직 뜻을 알 수 없는 어휘도 많이 있어. 게다가 이건 고유명사야." "하지만 대충 추리를 할 수 있지 않아? 필로어와 바르나어는 자매 언어지. 필로어에서 '드바'는 신이야. 그리고 '드바얀'을 탑이라고 하지. 같은 논리를 바르나어에 대입하면 '트와스'는 탑이지. 바로 우리가 아까 보았던 것 말이야!" "'드바얀'은 원래 뜻은 '신에 이르는 길'이란 뜻이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석을 달았다. "그렇지.그러니 탑이야. 적어도 높은 건물이야. 그리고 이 별 에서 그만큼 높은 건물은 저것 하나 밖엔 없지. 저 뒤집어 놓은 밥그릇이 바로 신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란 말이야." "나는 당신네 지구인들이 그렇게 믿음이 깊은 지 몰랐어." 그는 킥킥 웃으며 지도를 접었다. 그의 얼굴은 이제 많이 풀 려있었다. "나같이 무식한 지구인이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지 궁금 하겠지? 5년 전에 어떤 필로인 건달에게서 이 지도를 빼앗았어. 그 녀석도 이 별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 대충 구슬려 왜 거기로 가는 지 물어 보았지. 그 녀석 말에 의하면 바르나 문명의 숨겨 진 기원 행성엔 신을 향하는 계단이 있다는 것이었어. 그는 그 곳으로 가서 자기 신을 영접하려는 거였지. 흥미가 당기더군. 처음엔 그저 돈 때문이었어. 그런 신전에는 분명히 돈이 될 만 한 것들이 있겠지? 내 친구 하나가 마유르즈에서 작은 돌 조각 을 하나 도굴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7000만 다힘에 팔았지. 그 래서 녀석을 협박해 이걸 빼앗았어. 하지만 그 병신은 이 별이 어디에 있는 지 죽어도 말하지 않더군. 결국 열선총으로 날려버 렸어." 물방울이 뚝뚝 소리를 내며 내 발 앞에 떨어지기 시작했다.나 는 고개를 쳐들어 지하도시의 천정을 바라보았다. 복잡한 문양 이 새겨진 천정 구조물의 깨어진 틈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고 있 었다. 그것은 반타사흐 행성의 '물도둑'과 같은 것으로 대기 중 의 수증기를 흡수해 응결시켜 식수를 만드는 장치였다. 밤이 되 어 온도가 내려가자 응결된 물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가 멸망한 지 12만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그것은 제구실을 하고 있었다. 바흐시나인들은 날림공사꾼은 아니었다. "꼬박 5년동안 돌아다닌 끝에 이 별의 위치를 알아냈지." 그 는 떨어지는 물방울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신 책 도 도움이 됐어. 부족한 건 우주선하고 가이드였지. 그래서 난 당신을 생각했어. 당신이 둘 다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골동품 몇 개 건지려고 그렇게 오래동안 공을 들였어?"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편집증의 기운이 다시 그의 눈에 깃들 었다. "당신 같은 할망구들의 눈에는 그런 것 밖엔 안보이겠지. 하 지만 난 그 이상의 목적이 있어. 알겠어? 나 역시 바흐시나의 신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거지. " 나는 그가 미친 것을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우주선을 만들고 별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자 신들은 숨어 버렸지. 더 이상 그런 곳에서는 신을 만날 수 없어. 우리 에게도 신은 있었지만 당신네 연방이 오면서부터 그들을 쫓아버 렸어. 신들은 이제 바흐시나와 같은 옛 고향으로 몰려갔을 거 야. 오로지 선택받은 나와 같은 자들만이 그들을 영접하는 거 지. 혹시 아나? 신들이 나를 동료로 만들려고 할지. 그들이 보 기에도 바르나교 광신자들같은 바보들보다야 내가 더 흥미있겠 지." "젊은이는 신이 되고 싶은가 보군?" 내가 물었다. "당신이 알 바가 아니야!" 그는 자기가 너무 말을 많이 했다 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열선총을 내 허리에 들이댔다. "입닥치고 안내해. 신의 여덟 손가락이 무엇을 가르치는 지만 해독해. 그 것만 도와준다면 당신과 당신 손녀를 가장 가까운 연방 행성에 보내주지. 하지만,알겠어? 내가 저 밥그릇의 내실까지 갈 수 없 다면 당신 손녀는 끝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도시는 상상외로 컸다. 모퉁이를 한번씩 꺾어질 때마다 우리 는 거대한 회랑과 마주쳤다. 그곳들은 습기가 차고 기온도 온화 했다. 어떤 곳은 물도둑이 너무 많아 바닥에 작은 못을 형성하 고 있기도 했다. 회랑은 특권계급의 영역이었겠지. 하층계급일 수록 복도와 입구 쪽의 건조한 작은 방들로 쫓겨났을 것이다. "이 친구들 바보들이었나봐." 걸어가며 벽에 부조로 세겨진 천궁도를 구경하던 지구인이 말했다. "자기네 태양이 바흐시나 의 둘레를 돌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군. 멍청하다고 생각안해?" "당신네들도 몇천년 전엔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지 않아!" "아니,그랬어.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했다해서 불에 타 죽은 사람도 있었어." "그럴지도 모르지,하지만 그건 오래 전의 일이야." "이건 12만년 전에 멸망한 행성이야,젊은이." 지구인은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하지 만 내가 보기에도 그 부조들의 의미하는 바는 흥미있었다. 바흐 시나인들에게 천동설은 신앙의 기초였던 모양이다. 우주의 모든 물체들은 바흐시나를 중심으로 돌아야 했다. 혜성은 악마의 창 조물이었고,불규칙한 궤도를 가진 소행성들은 악마의 성이었다. 그 밖의 천체들도 그다지 신성한 존재들은 아니었다. 특히 태양 이 사악했다. 바흐시나야 말로 유일하게 성스러웠다. 막다른 길에 접어들자 지구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야. 내 기기에 의하면 바로 여기 앞이 그 탑이야. " "그리고 이게 신의 여덟 손가락이고?" 나는 벽에 부조된 여덟 기둥들을 가리켰다. 지도를 확인할 필 요도 없었다. 그것들은 지도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각각의 기둥들에는 세로로 새겨진 홈들이 자의 눈금처 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새겨져 있었다. 기둥 옆에는 '두,에다 이 트와' 즉'그대,신에게 경배하라'라는 글귀가 음각으로 새겨 져 있었다. "이제 당신이 일을 처리해야 해. 어떻게 하면 문을 열 수 있 지?" 나는 벽에 가까이 다가가 홈들을 새어 보았다. 잠시 계산을 해 본 뒤 문귀의 두번째 단어 '에다'에 붙은 먼지들을 털어내고 그 틈 사이로 손을 집어 넣었다. 매끈한 금속 레버가 느껴졌다. 레버를 안으로 밀어넣었다. 귀를 찢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복도 왼쪽의 부조 장식 하나가 뒤로 물러났다. 퀴퀴한 냄 새가 복도로 밀려나왔다. 틈 사이로 아직도 꽤 견고해 보이는 나선 계단이 보였다. "어떻게 알았지?" 지구인은 내가 이렇게빨리 해치우자 좀 놀 란 것 같았다. "당신은 내 책을 잘 읽지 않았군. 바르나 문명에서 8은 순환 의 숫자야. 알겠어? 이건 원통을 펼쳐놓은 것과 같아. 8번째 기 둥 다음에는 다시 첫번째 기둥이 오지. 이건 아주 간단한 수수 께끼야. 첫번째 기둥의 첫번째 홈,두번째 기둥의 두번째 홈... 이런식으로 8개 기둥으로 이루어진 원통을 나선형으로 타고 내 려오면 결국 마지막 홈과 마주치게 되지. 물론 아래에서 출발해 서 맨 위의 홈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니까. 결국 두 번째 기둥에서 이 나선은 끝나게 돼. 그건 위 문구의 두번째 단 어,또는 두번째 철자를 의미하지. 난 이런 걸 바르나 문명의 다 른 행성에서도 본 적이 있어. 우연히 그것과 이것이 방식이 같 아서 쉽게 푼 거지. 푸는 방법은 이것 이외에도 많이 있어." 그가 가로막지 않았다면 내 강의는 더 길어졌을 것이다. 그러 나 그는 등에 열선총을 들이대고 나를 계단으로 밀어넣었다. 너 무 세게 밀어 넘어질 뻔했지만 불평도 나오지 않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흥분하고 있었다. 바흐시나 행성의 위치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살아남은 극소수 의 바르나교 광신자들은 결코 자신들의 성지를 이교도들에게 공 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동료 몇이 순례를 떠나는 그들의 우주선을 미행하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대부분 도약 중에 놓쳐 버렸다. 그들 중 누구 하나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으니 나중에 물어볼 수도 었었다. 나는 이 악당이 어떻게 이 별의 위치를 알 아냈는 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트와스의 내실에 무엇 이 있는 지가 더 알고 싶었다. 바르나 종교 의식의 비밀은 지금 까지 단 한 번도 외부에 누설된 적이 없었다. 계단이 끝나고 앞에 철제 문이 나타났다. 역시 여덟 기둥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옆에 새겨진 기도문의 두번째 단어를 밀었 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그는 문을 걷어찼 다. 방은 키가 낮은 원통형이었고 모래 먼지로 가득차 있었다. 계 단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어두웠다. 채광창이 있기는 했으나 그 때와 같은 밤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랜턴의 광 도를 높였다. 방은 텅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도시를 지나오는 동안 수없이 보아왔던 부조하나 없었다. 내 손으로 두 뼘 높이의 벤치가 굴 렁쇠 모양으로 벽을 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좀 실망했다. 겨우 이런 방에 들어오려고 그 순례자들은 평생을 바쳤단 말인 가? 지구인도 잠시 어이가 없었던지 멍하니 랜턴의 그림자만 바라 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바닥에 엎드려 모래 먼지를 치우기 시작했다. 한 몇 분 동안 그러더니 그는 랜턴을 들고 일어나 껄 껄 웃었다. 바닥엔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다시 몸을 숙여 남은 모래를 걷어냈다.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 역시 도왔 다. 그의 옷과 내 날개가 모래투성이가 되면 될 수록 바닥의 문 양은 점점 뚜렷해졌다. 바닥의 무늬는 나선이었다. 소용돌이 모양의 검정색의 금속상 감선이 방 중앙을 중심으로 방둘레로 퍼져나갔다. 상감선 사이 에는 바르나 고대 알파벳 37개가 무작위적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건 나도 알아!"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 책에 서 읽었어! 일정한 기도문의 순서에 따라 알파벳을 누르면 비밀 은신처가 드러나는 거지!" 고고학자로서,고대건축 전문가로서 그에게 무언가 말을 해주 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젊은이,생각해봐. 여긴 은신처를 숨기기엔 벽이 너무 얇아. 자네가 가져갈 보물같은 것을 숨길 수는 없어. 이건 흙건 물이야. 그런 금고같은 건 만들 수도 없어." 그는 화를 버럭 냈다. "나는 보물 따위를 훔치러 온 것이 아니냐! 나는 신을 부르러 온 거야! 할멈같은 속물은 평생가도 이해 못할 거야! 결코 이해 못해! 밖에서는 그 알량한 과학이니 이성으로 우리 지구인들을 감금하고 바보짓만 시켜왔지만 여기서는 안돼! 여기까지 왔으니 난 이 행성의 신을 만나봐야겠어! 아마 지구에서 온 신들도 있 을 지 몰라! 신을 부르는 바르나 기도문이 뭐지?" "말해 줄 수 없어. 알겠어? 이교도들은 여기와서도 안되는 거 야. 이건 신성모독..." "하!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질까 겁이 나나? " "정말 그럴 지도 몰라." 지구인은 코웃음을 치며 주머니에서 휴대용 컴퓨터를 꺼내 켰 다. "그럴 줄 알고 난 나대로 준비를 해왔어. 기도문은 '파브스, 레 비트리스 임 두'야. 이건 피 철자부터 시작하지?" 그것은 '오소서,이제 그대에게 가나이다,'였다. 그는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발로 눌렀다. 그의 신발에 눌려 알파벳 글자가 하나씩 들어갈 때마다 덜컥 소리를 내면서 방 전 체가 흔들렸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천장에는 여기 와 서 수없이 보았던 천궁도가 그려져 있었다. 갑자기 겁이 났다. 난 드디어 이 방의 비밀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나의 몸은 벽 쪽 으로 달라붙었다. 발이 벤치 위로 올라갔다. "멈춰,이 바보야!" 내가 외쳤다. "닥쳐,할멈!" 그는 마지막 철자를 발로 뭉게며 외쳤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한 마지막 의미있는 말이었다. 마지막 철자가 들어가자마자 방바닥이 흔들리며 갈라지기 시 작했다. 지구인은 놀라 벽쪽으로 달려왔으나 그의 목숨을 건지 기엔 너무 늦은 행동이었다. 바닥은 시커먼 입을 벌리고 그를 집어 삼켰다. 벤치 아래 달린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경첩에 매달린 바닥 조각들이 벽에 쾅쾅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지구인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그의 낙하는 한없이 길었 으나 그의 비명은 중단되지 않았다. 비명은 그의 몸이 바닥의 다른 시체들 위에 떨어져 으스러진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계속되 었다. 그 바보는 몰랐던 것이다. 바흐시나의 매서운 기후를 보고도, 바흐시나의 도시를 뒤덮은 천궁도를 보고도,나선으로 끝없이 아 래로 떨어지는 신의 나선을 보고도 몰랐던 것이다. 바흐시나인 들은 몸의 수분을 말리고 곡물을 태우는 태양과 태양의 제국인 하늘을 저주했고,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주고 물과 양식을 공 급해주는 대지를 경배했다는 것을. 그들의 신은 행성의 중심에 위치한 부동의 존재이며,바흐시나의 모든 믿음있는 자들이 신에 게 보다 가까이 가려고 몸부림쳤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우리 가 올라간 반구는 단순히 입구에 지나지 않았고 진짜 트와스는 바르나교 광신자들이 열광적으로 몸을 던졌던 이 끝없는 수직 터널,바벨의 함정이었다는 것을. --------------------------------------------------듀나와 그 일당들이 보냅니다(이제 다 끝냈으니 옆에 펼쳐놓고 요긴하게 써먹었던 <아몬틸라도 술통>이나 다시 진지하게 읽어볼까나.)